독서 2

남은 자들을 위한 요한계시록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3. 5. 16:09

저자 : 스캇 맥나이트, 코디 매칫

출판사 : 성서유니온

 

저자 소개 : 스캇 맥나이트

선도적인 복음주의 신약학자이자 초기 기독교와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의 권위자다. 영국 노팅엄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노스파크 대학교 종교학과 칼 올슨 석좌교수를 거쳐 노던 신학교 신약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탁월한 강사이자 이야기꾼으로 여러 매체를 통해 성서학뿐 아니라 신앙과 사회적 이슈에 관한 윤리적 통찰을 나누고 있으며 세계성서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신약학회(Society for New Testament Studies) 회원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 번역된 저서로는 「성서학자가 신학자에게 바라는 다섯 가지」 「가이사의 나라 예수의 나라」(IVP), 「로마서 설교」 「거꾸로 읽는 로마서」(이상 비아토르), 「하나님 나라의 비밀」 「예수 왕의 복음」(이상 새물결플러스) 등이 있다.

또한 「IVP 성경비평주석 신약」(IVP)의 베드로후서와 유다서, NICNT 신약 주석 시리즈의 「빌레몬서」 「골로새서」(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여러 신약 주석의 집필에도 참여했다.

 

책소개
억측, 과장, 허위로 점철된 요한계시록 해석의 문제점을 폭로하면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이신 어린양을 따르는 제자가 되라고 도전하다!

요한계시록은 두 도시, 바벨론과 새 예루살렘이 벌이는 전투를 기록하고 있다. 마침내 바벨론은 패배하고 새 예루살렘이 

승리할 것이다. 이 놀라운 진실을 믿으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외딴 섬에 유배된 불온한 1세기 반체제 인사 요한의 입장에

서 보면, 강성한 제국 로마가 한낱 식민지인 예루살렘에게 패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당대를 향한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였으며, 오늘 우리 또한 불의한 세상에서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를 수 있는 놀라운 비전을 발견할 것이

다.

목차

들어가며: 1972년

1부 처음 만나는 요한계시록

1. 너무 많은 잡설들
2. 누구를 위해 기록되었는가?
3. 요한계시록과 상상력

2부 연극 요한계시록

4. 바벨론의 정체
5. 바벨론의 특징들
6. 용과 그를 따르는 짐승들
7. 어린양
8. 충성된 증인

3부 극적 내러티브의 특징

9. 드라마 요한계시록
10. 막간 단상
11. 3×7=완성
12. 종횡무진하는 예언자들
13. 하나님의 심판인가 징계인가?
14. 환상, 정의로운 세상을 약속하다
15. 새 예루살렘을 상상하며
16. 새 예루살렘,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

4부 바벨론에서 살아간다는 것

17. 일곱 교회로 파고든 바벨론
18. 바벨론에서 예배하라
19. 예배는 증언이다

5부 지금 필요한 불온한 제자도

20. 오늘의 바벨론을 분별하는 네 가지 표
21. 바벨론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22. 불의한 체제를 거부하는 제자 선언

부록
부록① 세대주의를 구성하는 일곱 세대
부록② 묵시란 무엇인가?
부록③ 적그리스도
부록④ 아마겟돈
부록⑤ 고대 신화들
부록⑥ 휴거의 짧은 역사
부록⑦ 휴거인가 부활인가?
부록⑧ 요한계시록은 판타지인가?
부록⑨ 천년왕국
부록⑩ 유토피아, 유크로니아, 진보주의
부록⑪ 요한계시록의 노래들
부록⑫ 진보주의의 진보

추천 주석서
추천 연구서
후기
 

책 속으로

요한계시록은 특정한 시간을 예측하는 신묘막측한 비서가 아니라 특정 시대를 넘어서는 신학이다. 장차 있을 일을 못 박은 예언서로 이 책이 둔갑하는 순간,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는 이 책에서 종적을 감춘다. 시대를 넘어 비극의 틀에 갇힌 역사와 그것의 반복적인 속성은 요한계시록이 그려 낸 바벨론을 끊임없이 현실로 소환한다. 그런데도 교황이 적그리스도이고 러시아나 유럽 연합은 곡과 마곡이며 국가 형태로 이스라엘이 거듭나리라는 예언을 남발한다. 이것은 우리 세계의 바벨론에 맞서 ‘분별력을 갖춘 제자’, ‘불의한 체제에 대항하는 제자’가 되라는 요한계시록의 요구를 묵살하는 짓이다.
--- 「1. 너무 많은 잡설들」 중에서

상상력은 눌린 자, 낙망한 자, 방랑자, 갈망하는 자도 위로한다. 요한계시록에서 범람하는 숱한 상징과 이미지들을 오감으로 체험한다면, 아무리 더딜지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절망이 가득히 내린 설원 한가운데를 저벅저벅 걸어갈 것이다.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더욱 굳건히 신뢰할 것이다. 어떤 독재자나 폭군이 와서 삶의 자리를 짓밟아도 우리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판타지나 픽션의 세계와 꽤 비슷하다 할지라도 판타지나 픽션이라고 못박을 수는 없다. 그러한 상상력에 힘입어 요한은 나아감과 멈춤, 새로운 나아감과 더 많은 멈춤으로 가득 찬 텍스트를 생산했다. 요한은 자신의 묵시록을 통한 여정에서 상상력을 자극하여 우리를 불의한 체제에 저항하는 제자로 형성시킨다.
--- 「3. 요한계시록과 상상력」 중에서

거듭 강조하지만, 요한계시록을 읽는 수많은 방법 중에서 사자가 어린양임을 모르는 경우는 없지만 어린양이 이 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무심코 지나치곤 한다. 그런 해석 방식을 따르면 어린양이란 아마겟돈의 요란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서 칼을 움켜쥔 채 승리한 사자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기독론은 이 일이 ‘언제 일어날지, 어디서 일어날지, 누가 적그리스도가 될지’를 두고 억측하기 십상이다. 그렇게 요한계시록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만다. 이 사자는 (우리가 곧 보겠지만) 선혈이 낭자한 전장에서 칼 대신 비폭력의 무기,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는 어린양이다.
--- 「7. 어린양」 중에서

세 번에 달하는 일곱 심판을 이해하려면, 공의를 세우고 하나님의 행위를 요청하며 정의를 확립해 달라는 기도로 이 모든 심판을 품어야 한다. 이 심판은 보복을 도모하지 않으며, ‘샤덴프로이데’(타인의 불행에 기쁨을 느끼는 마음)를 부추기지도 않는다. 승리주의나 식민주의와도 무관하다. 결코 그런 일에 동참할 수 없다. 불의가 제아무리 참람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참화를 끝내 바로잡으신다. 세 번의 일곱 심판은 순차적으로 일어날 처절한 보복의 연대기가 아니다. 세 심판은 따로 돌아간다. 하지만 필요할 때마다 한목소리가 되어 이렇게 외친다. 하나님께서 공의를 세우사 바벨론의 악은 소멸되고, 새 예루살렘은 분명한 현실이 될 것이라고.
--- 「11. 3x7=완성」 중에서

이 모든 것은 오늘날 우리네 삶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으로 이끈다. “우리의 신앙은 국가 및 국가권력과 너무나 긴밀하지 않은가?” 기독교 국가주의는 4세기부터 교회를 감염시켰다. 로마라는 국가와 교회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오랜 세월 골칫거리가 되었다. 이제 교회가 정부나 국가, 군의 관할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상숭배와 다를 게 없는 뒤섞임 속에서 제국의 상징은 국가주의와 종교의 상징으로 변모하고, 종교적 국가주의는 그리스도를 한낱 자기 권력의 수하로 두려 한다. 우상숭배자들은 국가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기꺼이 종교를 이용할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교회에 국기가 스스럼없이 나부끼고 있지 않은가? 제자로 훈련받아 어린양을 따르는 사람들은 국가주의의 망령을 분별하고,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제자로서 그 망령에 저항한다. 요한도 옳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 「17. 일곱 교회로 파고든 바벨론」 중에서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에서 어린양의 편에 설 것을 요구한다. 이 책을 잘 읽으려면 ‘하나님의 정치’(theo-politics)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즉, 요한계시록은 한결같이 제자도의 공공성을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요한계시록은 자신이 창조한 이 세상을 하나님이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계시’하면서, 용과 야수들과 바벨론을 분별하는 법을 함께 보여 준다. 사회 참여에 나선다면서 하나님을 사적인 삶의 언저리에 남겨 둔다면 요한계시록을 현실에서 구현하지 못한다. 이 책은 하나님의 정치만이 유일한 정치라고 말한다. 엘리자베스 피오렌자가 거듭 일깨워 주듯이, 요한계시록은 “정의를 부르짖는 사회정치적 상황 속에 직접 속해 있을 때만 우리에게 적절한 신학적-윤리적 답을 내어 줄 것이다.”
--- 「22. 불의한 체제를 거부하는 제자 선언」 중에서
 

 

추천평

적그리스도와 천년왕국을 두고 억측을 남발하는 책이 아니라면 도대체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스캇 맥나이트와 코디 매칫은 교회, 특히 복음주의 진영을 향해 요한계시록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은 불의한 체제에 대항하는 제자도를 요구한다. 도전적이면서도 목회적인 이 책은 오늘날 교회와 세상이 직면한 새로운 바벨론이라는 세력을 분별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필독서가 분명하다.
- 마이클 고먼 (세인트메리 대학원대학교 성서신학 석좌교수,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새물결플러스) 저자)

 

성경에서 가장 당혹스러우면서도 희망이 서려 있는 본문을 다룬 너무나 흥미롭고 흡인력 높은 책이다. 어떻게 하면 바벨론에 거주하면서도 바벨론에 저항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집이요 창조의 목적인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면서도 세상에서 의롭게 행동할 수 있을까? 요한계시록은 그 길을 가르쳐 준다.
- 미로슬라브 볼프 (예일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예일 신앙과문화연구소 소장, 『배제와 포용』(IVP) 저자)

 

마침내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의 혼란스러운 아름다움, 그 신비를 이해하게 되었다. 맥나이트와 매칫은 억측과 과장, 허위로 점철된 해석들을 폭로하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 곧 어린양의 길에 대한 참된 예언을 풀어 준다. 요한계시록 읽기는 불의한 체제에 맞서는 제자들인 하나님의 백성을 집결시키는 나팔 소리다. 우리는 오만과 탐욕, 착취와 군사력으로 구축된 오늘의 바벨론에서 공적인 제자도를 지켜야 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궁극적으로 요한계시록의 진정한 중심, 즉 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어린양께 드리는 경배에 초점을 맞춘다.
- 린 코힉 (휴스턴 신학교 신약학 석좌교수, 『NICNT 에베소서』(부흥과개혁사) 저자)

 

탁월하고도 거침없는 속도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려운 책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복음주의자들은 어쩌다가 자신의 신학적 기반을 상실했는가? 어쩌다가 그들 자신이 싸워야 할 괴물이 되었는가? 그 진실을 이 책은 명확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불의한 체제를 거부하는 제자가 되라고 용기를 불어넣는다. 우리는 이제 용의 수하에서 나와 어린양의 편에 서야 한다. 저자들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 미몽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선사한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요한계시록에 관한 책 중에서 가장 강렬한 해석을 제공한다. 덕분에 우리는 기괴한 예언과 통속 소설에서 벗어나 복음의 진리로 되돌아갈 수 있다. 필독을 권한다.
- 베스 앨리슨 바 (베일러 대학교 역사학 교수, 『처치 걸: ‘성경적 여성’을 형성한 역사 속 결정적 장면들』(IVP) 저자)

 

 

 

요한계시록 강의를 앞두고 이 책을 읽었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지식들이 크게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는 유익한 점도 있었지만,

단순히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서서

체제를 거부하는 제자로서의 삶, 즉 용의 수하에 있는 바벨론의 실체를 확인하고 저항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이 밀려온다.

복음주의면 무조건 안전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정치와 야합한 실체를 보게 된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복음주의자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도 대통령 탄핵에 반대 의견으로 나선 전광훈 목사를 중심으로 한 세력,

세계로 교회 손현보목사를 중심으로 한 종교 세력들의 움직임 속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구별해내고 주의해야 한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물질(황금) 만능주의, 상업주의적 자본주의, 자기중심적 개인주의, 행복을 추구하는 쾌락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상대주의, 과학 만능주의, 인본주의,세속주의, 세속 문화, 복,  ....

정말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바벨론임을 확인하는 4가지 지표( 오만, 경제적 착취, 군국주의, 억압)을 기억하자.

다시 시간을 내어 천천히 읽어야겠다. 

 

'독서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1) 2023.09.21
사람을 얻는 지혜  (0) 2023.09.20
인생수업  (0) 2023.09.20
구원 그 이후  (0) 2023.09.14
[모든 삶은 흐른다]를 읽고  (1) 202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