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마쿠스의 요한이 남긴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비잔틴기독교에서 성경책과 전례서 다음으로 많이 읽혔고 서방기독교에서도 인기를 누린 고전이다. 교단과 분파를 넘어 고전적 위치를 차지한 이 책은 금욕적인 삶과 영적인 삶의 성장을 추구하는 기독교 수도자들의 지침서로서 오랫동안 자리해 왔다. 이번에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상권과 하권으로 나누어 출간하였으며 상권에는 1단계부터 15단계를, 하권에는 16단계부터 30단계를 담았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는 수도사가 30개의 영적인 수련과 훈련과정을 통해 사다리의 꼭대기에 올라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요한은 야곱의 사닥다리 모티브를 차용했고, 그는 다리를 30개로 구상해 다양한 영성 훈련의 주제들로 하나씩 풀어나갔다. 즉, 수도사적 삶으로의 회심, 필요한 덕과 악에 대한 묘사들, 신비적인 하나 됨에 이르는 영적인 삶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30개의 주제로 탁월하게 담아내었다.
이 책은 영적인 삶에서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조언과 지침을 제공한다. 또한, 이 책은 인간의 본성을 심오하게 분석하고, 영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도전을 깊이 있게 고찰한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다양한 장애물을 더 깊이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요한이 지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개인들(수도사들)의 내적인 경험이다. 개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인 성장을 직접 알고 보고 맛보고 느끼는 개인적인 경험과 만남은 필수적이다. 그는 육체적 금욕주의가 아니라 마음의 겸손과 청결이 더 중요함을 강조했고, 그리스도인이 주도적으로 살아갈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질문에 대한 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도록, 그래서 신앙의 도약이 이루어지도록 의도한 것이다. 이 점은 많은 경우 너무 명확한 답을 정해 놓고 성도들을 그쪽으로 이끌어가는 오늘날의 교회에 좋은 시사점을 준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는 수도사가 30개의 영적인 수련과 훈련과정을 통해 사다리의 꼭대기에 올라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요한은 야곱의 사닥다리 모티브를 차용했고, 그는 다리를 30개로 구상해 다양한 영성 훈련의 주제들로 하나씩 풀어나갔다. 즉, 수도사적 삶으로의 회심, 필요한 덕과 악에 대한 묘사들, 신비적인 하나 됨에 이르는 영적인 삶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30개의 주제로 탁월하게 담아내었다.
이 책은 영적인 삶에서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조언과 지침을 제공한다. 또한, 이 책은 인간의 본성을 심오하게 분석하고, 영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도전을 깊이 있게 고찰한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다양한 장애물을 더 깊이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요한이 지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개인들(수도사들)의 내적인 경험이다. 개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인 성장을 직접 알고 보고 맛보고 느끼는 개인적인 경험과 만남은 필수적이다. 그는 육체적 금욕주의가 아니라 마음의 겸손과 청결이 더 중요함을 강조했고, 그리스도인이 주도적으로 살아갈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질문에 대한 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도록, 그래서 신앙의 도약이 이루어지도록 의도한 것이다. 이 점은 많은 경우 너무 명확한 답을 정해 놓고 성도들을 그쪽으로 이끌어가는 오늘날의 교회에 좋은 시사점을 준다.
목차(상,하)
1단계 / 6
세상을 포기하는 것
2단계 / 21
초연(超然, detachment)에 대해서
3단계 / 28
유배, 또는 순례 여행에 관하여
초심자의 꿈에 관하여
4단계 / 40
복되고 기억할 만한 순종에 관하여
회개한 강도에 관하여
이시도어(Isidore)에 관하여
로렌스(Lawrence)에 관하여
회계에 관하여
압바시루스(Abbacyrus)에 대하여
마케도니우스(Macedonius) 수석 부제에 대하여
어떤 다른 형제에 대해서
성 메나스(Saint Menas)에 관하여
첫 번째 올무
두 번째 올무
성 아카시우스(Saint Acacius)에 관하여
요한 사바이테(John Sabbaite) 또는 안티오쿠스(Antiochus)에 관하여
5단계 / 106
거룩한 죄수들의 삶을 구성하는 근면과 참된 회개 그리고 감옥에 관하여
6단계 / 131
죽음을 기억하는 것
7단계 / 139
기쁨을 초래하는 애통
8단계 / 160
분노로부터의 자유와 온유에 관하여
9단계 / 171
부당한 일들에 대한 기억에 관하여
10단계 / 176
비방에 대하여
11단계 / 182
수다와 침묵
12단계 / 185
거짓말에 관하여
13단계 / 189
낙담에 관하여
14단계 / 194
탐식, 시끄러우면서도 사악한 주인-위(胃)
15단계 / 205
썩어질 사람들이 수고와 땀으로 얻는 썩지 않을 순결에 대하여
에필로그 / 238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처럼 되기를 열망한 시내산의 클리마쿠스의 요한
_김재현, 키아츠 원장
세상을 포기하는 것
2단계 / 21
초연(超然, detachment)에 대해서
3단계 / 28
유배, 또는 순례 여행에 관하여
초심자의 꿈에 관하여
4단계 / 40
복되고 기억할 만한 순종에 관하여
회개한 강도에 관하여
이시도어(Isidore)에 관하여
로렌스(Lawrence)에 관하여
회계에 관하여
압바시루스(Abbacyrus)에 대하여
마케도니우스(Macedonius) 수석 부제에 대하여
어떤 다른 형제에 대해서
성 메나스(Saint Menas)에 관하여
첫 번째 올무
두 번째 올무
성 아카시우스(Saint Acacius)에 관하여
요한 사바이테(John Sabbaite) 또는 안티오쿠스(Antiochus)에 관하여
5단계 / 106
거룩한 죄수들의 삶을 구성하는 근면과 참된 회개 그리고 감옥에 관하여
6단계 / 131
죽음을 기억하는 것
7단계 / 139
기쁨을 초래하는 애통
8단계 / 160
분노로부터의 자유와 온유에 관하여
9단계 / 171
부당한 일들에 대한 기억에 관하여
10단계 / 176
비방에 대하여
11단계 / 182
수다와 침묵
12단계 / 185
거짓말에 관하여
13단계 / 189
낙담에 관하여
14단계 / 194
탐식, 시끄러우면서도 사악한 주인-위(胃)
15단계 / 205
썩어질 사람들이 수고와 땀으로 얻는 썩지 않을 순결에 대하여
에필로그 / 238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처럼 되기를 열망한 시내산의 클리마쿠스의 요한
_김재현, 키아츠 원장
16단계 / 6
돈에 대한 사랑, 또는 탐욕에 대하여
17단계 / 9
가난에 관하여
18단계 / 13
무감각이란 육체가 죽기 전에 영혼이 죽고, 마음도 죽는 것입니다
19단계 / 18
잠과 기도와 시편을 노래하는데 관하여
20단계 / 21
육체적 철야와 영적 철야를 얻기 위해 철야를 사용하는 방법과 수행하는 방법
21단계 / 26
남자답지 못하고 천박한 비겁함
22단계 / 29
여러 형태의 허영
23단계 / 41
미친 교만과 신성모독에 관하여
언급하기도 힘든 하나님을 모독하는 생각들에 관하여
24단계: 단순함 / 56
본성이 아니라 습관에서 오는 온유함과 단순함과 성실함에 관하여. 그리고 악의에 관하여
25단계 / 63
정욕을 파괴하는 숭고한 겸손에 관하여. 겸손은 영적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26단계: 분별 / 85
생각과 정욕과 덕의 분별에 대하여
숙련된 분별에 대하여
이전의 모든 단계에 대한 간략한 요약
27단계 / 153
몸과 영혼의 거룩한 독거
독거의 다양한 측면과 그것을 구별하는 방법
28단계: 기도 / 181
거룩하고 복된 기도에 대하여. 덕의 어머니, 기도할 때의 심신의 자세에 대하여
29단계 / 198
지상 천국, 또는 신과 같은 무정욕과 완전함, 그리고 일반적 부활 이전의 영혼의 부활에 관하여
30단계: 삼위일체 / 204
덕들 중에서 지고한 삼위일체를 함께 연결하는 것에 관하여
요약과 권면 / 213
에필로그 / 238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처럼 되기를 열망한 시내산의 클리마쿠스의 요한
_김재현, 키아츠 원장
돈에 대한 사랑, 또는 탐욕에 대하여
17단계 / 9
가난에 관하여
18단계 / 13
무감각이란 육체가 죽기 전에 영혼이 죽고, 마음도 죽는 것입니다
19단계 / 18
잠과 기도와 시편을 노래하는데 관하여
20단계 / 21
육체적 철야와 영적 철야를 얻기 위해 철야를 사용하는 방법과 수행하는 방법
21단계 / 26
남자답지 못하고 천박한 비겁함
22단계 / 29
여러 형태의 허영
23단계 / 41
미친 교만과 신성모독에 관하여
언급하기도 힘든 하나님을 모독하는 생각들에 관하여
24단계: 단순함 / 56
본성이 아니라 습관에서 오는 온유함과 단순함과 성실함에 관하여. 그리고 악의에 관하여
25단계 / 63
정욕을 파괴하는 숭고한 겸손에 관하여. 겸손은 영적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26단계: 분별 / 85
생각과 정욕과 덕의 분별에 대하여
숙련된 분별에 대하여
이전의 모든 단계에 대한 간략한 요약
27단계 / 153
몸과 영혼의 거룩한 독거
독거의 다양한 측면과 그것을 구별하는 방법
28단계: 기도 / 181
거룩하고 복된 기도에 대하여. 덕의 어머니, 기도할 때의 심신의 자세에 대하여
29단계 / 198
지상 천국, 또는 신과 같은 무정욕과 완전함, 그리고 일반적 부활 이전의 영혼의 부활에 관하여
30단계: 삼위일체 / 204
덕들 중에서 지고한 삼위일체를 함께 연결하는 것에 관하여
요약과 권면 / 213
에필로그 / 238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처럼 되기를 열망한 시내산의 클리마쿠스의 요한
_김재현, 키아츠 원장
책 속으로
1단계
세상을 포기하는 것
4. 그리스도인은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입니다. 그는 거룩하신 삼위일체를 바르고 흠 없이 믿습니다. 하나님의 친구는 자연스럽고 죄가 없는 모든 것과 교제하며 살아가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선행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절제하는 사람은 시련과 올무와 세상의 잡음 속에서도 모든 것을 초월하신 분처럼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수도사는 자신이 세속적이고 더럽혀진 육신에 불과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영적인 천사들의 지위와 신분에 이르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격려합니다. 수도사는 시간과 장소와 문제를 막론하고 계명과 하나님의 말씀에만 매달립니다.
수도사는 자신의 존재와 항상 씨름하며, 자신의 감각을 확실하게 감시합니다. 수도사는 육신을 거룩하게 하고, 혀를 정결하게 하며, 마음을 계몽합니다. 수도사는 자나 깨나 죽음을 끊임없이 기억함으로 고통을 받는 영혼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물러나는 방법은 물질적인 상급을 받는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미워하고, 본성을 초월한 것을 얻기 위해 본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5. 사람들이 이 생에 속한 것들을 자발적으로 멀리하는 이유는 장차 임할 나라를 위해서, 또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목적이 없었더라면, 세상을 부정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경주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이 경주에 참여한 사람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6. 죄의 짐을 떨쳐 버리기 위해 세상을 등진 사람은 성 밖에 있는 무덤들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완악한 바위(즉, 맹목과 둔감함)를 그의 마음에서 치워 주심으로 정신을 자유롭게 해 주셔서, 나사로, 즉 우리의 생각을 죄의 결박에서 풀어주시며, 자신을 섬기는 천사들에게 그를 정욕에서 풀어주어 무정욕 안으로 들어가게 하라고 명하시기 전까지는 불타는 듯이 뜨거운 눈물과 소리 없는 마음의 신음을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7. 애굽을 탈출하여 바로에게서 도망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 즉 그분에게서 보내심을 받는 모세와 같은 중보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행함과 관상 사이에 서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인도를 따라 죄의 바다를 건너 정욕의 아말렉(출애굽기 17장 참조)을 물리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는 했지만, 지도자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애굽에서 도망친 사람들에게는 모세가 있었지만, 소돔에서 탈출한 사람들에게는 천사가 인도자로 있었습니다. 전자는 의사의 보살핌으로 영혼의 정욕을 치유받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후자는 가련한 더러운 몸을 벗어 버리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천사 또는 그와 비슷한 존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썩어가는 상처를 치료해줄 매우 숙련된 의사가 필요합니다.
8. 육신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모든 것을 포기하는 초기 단계에 폭력(마태복음 11:12 참고)과 끊임없는 고통이 운명적으로 따르게 됩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슬픔을 통하여 우리의 쾌락을 사랑하는 성향과 무정한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거룩함으로 채워질 때까지 지속됩니다. 이것은 정말로 힘든 일입니다. 특히 부주의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푸줏간 주위에서 냄새를 맡고 소란을 피우는 개와 같이 우리의 정신은 단순함을 통하여 분노로부터 해방되고 거룩함과 인도하심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직 연약하고 정욕으로 가득 차 있지만, 용기를 가지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서 우리의 무력함과 연약함을 확신 있게 고백합시다. 우리가 끊임없이 깊은 겸손으로 내려가기만 한다면, 우리는 받을 자격이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9. 이처럼 쉬우면서도, 놀랍고 거칠고 고통스러운 경주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천상의 불이 그들 안에 거하기를 진정으로 기대한다면 불 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각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살피고, 고통의 빵을 먹고 눈물의 잔을 마심으로 심판에 이르지 않게 하십시오.
10. 이러한 경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견고한 터를 내리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멸시하며, 모든 것을 비웃고, 모든 것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순결과 금욕과 절제는 삼중으로 된 좋은 기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어린아이는 실제 어린아이들을 모범으로 삼아 이러한 덕들을 가지고 시작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악한 것과 속이는 것이 전혀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이나 식탐, 불타오르는 정욕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라는데 비례하여 더 많은 음식을 섭취할수록, 그들의 타고난 정욕도 증가하게 됩니다.
11 . 씨름선수가 경기 초반에 게으름을 피워 패배가 임박했다는 증거를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은 가증스럽고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견고하게 시작합시다. 그것은 나중에 나태해지는 때가 임할 때 확실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담대하고 열심 있는 영혼은 처음에 가졌던 열정을 기억하고 박차를 가하게 되며, 그 결과로 새로운 날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포기하는 것
4. 그리스도인은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입니다. 그는 거룩하신 삼위일체를 바르고 흠 없이 믿습니다. 하나님의 친구는 자연스럽고 죄가 없는 모든 것과 교제하며 살아가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선행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절제하는 사람은 시련과 올무와 세상의 잡음 속에서도 모든 것을 초월하신 분처럼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수도사는 자신이 세속적이고 더럽혀진 육신에 불과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영적인 천사들의 지위와 신분에 이르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격려합니다. 수도사는 시간과 장소와 문제를 막론하고 계명과 하나님의 말씀에만 매달립니다.
수도사는 자신의 존재와 항상 씨름하며, 자신의 감각을 확실하게 감시합니다. 수도사는 육신을 거룩하게 하고, 혀를 정결하게 하며, 마음을 계몽합니다. 수도사는 자나 깨나 죽음을 끊임없이 기억함으로 고통을 받는 영혼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물러나는 방법은 물질적인 상급을 받는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미워하고, 본성을 초월한 것을 얻기 위해 본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5. 사람들이 이 생에 속한 것들을 자발적으로 멀리하는 이유는 장차 임할 나라를 위해서, 또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목적이 없었더라면, 세상을 부정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경주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이 경주에 참여한 사람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6. 죄의 짐을 떨쳐 버리기 위해 세상을 등진 사람은 성 밖에 있는 무덤들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완악한 바위(즉, 맹목과 둔감함)를 그의 마음에서 치워 주심으로 정신을 자유롭게 해 주셔서, 나사로, 즉 우리의 생각을 죄의 결박에서 풀어주시며, 자신을 섬기는 천사들에게 그를 정욕에서 풀어주어 무정욕 안으로 들어가게 하라고 명하시기 전까지는 불타는 듯이 뜨거운 눈물과 소리 없는 마음의 신음을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7. 애굽을 탈출하여 바로에게서 도망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 즉 그분에게서 보내심을 받는 모세와 같은 중보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행함과 관상 사이에 서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인도를 따라 죄의 바다를 건너 정욕의 아말렉(출애굽기 17장 참조)을 물리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는 했지만, 지도자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애굽에서 도망친 사람들에게는 모세가 있었지만, 소돔에서 탈출한 사람들에게는 천사가 인도자로 있었습니다. 전자는 의사의 보살핌으로 영혼의 정욕을 치유받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후자는 가련한 더러운 몸을 벗어 버리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천사 또는 그와 비슷한 존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썩어가는 상처를 치료해줄 매우 숙련된 의사가 필요합니다.
8. 육신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모든 것을 포기하는 초기 단계에 폭력(마태복음 11:12 참고)과 끊임없는 고통이 운명적으로 따르게 됩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슬픔을 통하여 우리의 쾌락을 사랑하는 성향과 무정한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거룩함으로 채워질 때까지 지속됩니다. 이것은 정말로 힘든 일입니다. 특히 부주의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푸줏간 주위에서 냄새를 맡고 소란을 피우는 개와 같이 우리의 정신은 단순함을 통하여 분노로부터 해방되고 거룩함과 인도하심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직 연약하고 정욕으로 가득 차 있지만, 용기를 가지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서 우리의 무력함과 연약함을 확신 있게 고백합시다. 우리가 끊임없이 깊은 겸손으로 내려가기만 한다면, 우리는 받을 자격이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9. 이처럼 쉬우면서도, 놀랍고 거칠고 고통스러운 경주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천상의 불이 그들 안에 거하기를 진정으로 기대한다면 불 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각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살피고, 고통의 빵을 먹고 눈물의 잔을 마심으로 심판에 이르지 않게 하십시오.
10. 이러한 경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견고한 터를 내리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멸시하며, 모든 것을 비웃고, 모든 것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순결과 금욕과 절제는 삼중으로 된 좋은 기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어린아이는 실제 어린아이들을 모범으로 삼아 이러한 덕들을 가지고 시작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악한 것과 속이는 것이 전혀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이나 식탐, 불타오르는 정욕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라는데 비례하여 더 많은 음식을 섭취할수록, 그들의 타고난 정욕도 증가하게 됩니다.
11 . 씨름선수가 경기 초반에 게으름을 피워 패배가 임박했다는 증거를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은 가증스럽고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견고하게 시작합시다. 그것은 나중에 나태해지는 때가 임할 때 확실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담대하고 열심 있는 영혼은 처음에 가졌던 열정을 기억하고 박차를 가하게 되며, 그 결과로 새로운 날개를 얻게 될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30단계: 삼위일체
1.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제까지 언급한 모든 것을 결합하고 확고하게 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다루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13).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라고 일컬어지시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 4:8 참조).
2. 나는 믿음을 광선으로, 소망은 빛으로, 사랑은 원으로 봅니다. 전체적으로 세 가지 모두
가 하나의 광채와 광휘를 이룹니다.
3. 믿음은 만물을 만들고, 창조할 수 있습니다. 신적 자비가 소망을 둘러싸고 있으며, 실망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사랑은 넘어지지 않고, 중도에 멈추지 않으며, 복된 황홀감을 경험함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을 쉬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4. 신적 사랑에 관해서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며, 부주의한 사람들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5. 천사들은 사랑에 관해서 말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조차도, 자기들이 계몽을 받는 정도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6.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따라서 사랑을 정의하고자 하는 사람은 흐린 눈으로 바다의 모래를 세려는 것과 같습니다.
7. 사랑은 그 본질상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가능한 만큼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 활동에 있어서 사랑은 인간의 영혼이 취한 상태입니다. 사랑은 그 독특한 특성을 따라, 믿음의 샘이요, 인내의 심연이요, 겸손의 바다입니다.
8. 사랑은 악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사랑에 반대되는 모든 생각을 추방합니다(고린도전서 13:5).
9. 사랑과 무정욕과 양자 됨은 그 명칭으로만 구분됩니다. 빛과 불과 불꽃이 결합하여 하나의 힘을 형성합니다. 사랑과 무정욕과 양자 됨도 마찬가지입니다.
10. 사랑이 줄어들면, 두려움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사랑이 충만하거나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입니다.
11 . 인간의 삶에서 빌린 이미지로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경외와 관심과 열심과 섬김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잘못 된 일이 아닙니다. 황홀한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자기 연인을 사랑하는 것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시험을 받는 사람이 재판관을 두려워하는 것 같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주인을 잘 섬기는 종이 그 주인에게 열심을 나타내듯이 하나님께 열심을 나타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시기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잠자지 않고 지켜보는 남편처럼 덕을 시기하게 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종들이 왕 앞에 서는 것 같이 주님 앞에 서서 기도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12. 어머니 가슴에 안긴 아기가 어머니에게 매달리는 것조차도 사랑의 아들이 항상 주님께 매달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13.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항상 상상 속에 간직하고 부드럽게 포옹합니다. 그런 사람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강한 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눕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본성과 영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은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본성이 요구하기 때문에 잠을 자지만, 내 마음은 풍성한 사랑 안에 깨어 있습니다”(아가서 5:2 참조).
14. 존경하는 형제여, 당신은 사슴(영혼)이 뱀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영혼은 화살에 맞은 것처럼 사랑의 불로 타오르기 때문에 주님을 사모하여 실신합니다.
15. 굶주림의 효과는 모호하고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갈증의 효과는 강렬하며, 모든 사람에게 분명합니다. 갈증은 타오르는 열기를 나타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시편 43:2)한다고 말합니다.
16.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때, 우리는 확실하고 완전히 변화되어 즐겁고 유쾌하고, 평온함을 느낍니다. 하물며, 주님께서 보이지 않게 임하셔서 순수한 영혼 안에 거하실 때, 주님의 얼굴을 보는 기쁨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17. 영혼의 내적 확신이 더러움을 말살하고 삼켜버릴 때, 두려워하십시오. 이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판단을 두려워하나이다”(시편 119:120).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아가 4:9).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시편 28:7). 그러므로, 전인(全人)이 하나님의 사랑과 혼합되면, 그 사람의 육신의 외모까지도 자신의 영혼의 광채를 나타내는 거울과 같아집니다.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영광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던 것과 같습니다.
(후략)
1.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제까지 언급한 모든 것을 결합하고 확고하게 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다루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13).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라고 일컬어지시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 4:8 참조).
2. 나는 믿음을 광선으로, 소망은 빛으로, 사랑은 원으로 봅니다. 전체적으로 세 가지 모두
가 하나의 광채와 광휘를 이룹니다.
3. 믿음은 만물을 만들고, 창조할 수 있습니다. 신적 자비가 소망을 둘러싸고 있으며, 실망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사랑은 넘어지지 않고, 중도에 멈추지 않으며, 복된 황홀감을 경험함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을 쉬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4. 신적 사랑에 관해서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며, 부주의한 사람들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5. 천사들은 사랑에 관해서 말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조차도, 자기들이 계몽을 받는 정도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6.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따라서 사랑을 정의하고자 하는 사람은 흐린 눈으로 바다의 모래를 세려는 것과 같습니다.
7. 사랑은 그 본질상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가능한 만큼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 활동에 있어서 사랑은 인간의 영혼이 취한 상태입니다. 사랑은 그 독특한 특성을 따라, 믿음의 샘이요, 인내의 심연이요, 겸손의 바다입니다.
8. 사랑은 악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사랑에 반대되는 모든 생각을 추방합니다(고린도전서 13:5).
9. 사랑과 무정욕과 양자 됨은 그 명칭으로만 구분됩니다. 빛과 불과 불꽃이 결합하여 하나의 힘을 형성합니다. 사랑과 무정욕과 양자 됨도 마찬가지입니다.
10. 사랑이 줄어들면, 두려움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사랑이 충만하거나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입니다.
11 . 인간의 삶에서 빌린 이미지로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경외와 관심과 열심과 섬김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잘못 된 일이 아닙니다. 황홀한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자기 연인을 사랑하는 것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시험을 받는 사람이 재판관을 두려워하는 것 같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주인을 잘 섬기는 종이 그 주인에게 열심을 나타내듯이 하나님께 열심을 나타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시기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잠자지 않고 지켜보는 남편처럼 덕을 시기하게 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종들이 왕 앞에 서는 것 같이 주님 앞에 서서 기도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12. 어머니 가슴에 안긴 아기가 어머니에게 매달리는 것조차도 사랑의 아들이 항상 주님께 매달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13.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항상 상상 속에 간직하고 부드럽게 포옹합니다. 그런 사람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강한 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눕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본성과 영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은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본성이 요구하기 때문에 잠을 자지만, 내 마음은 풍성한 사랑 안에 깨어 있습니다”(아가서 5:2 참조).
14. 존경하는 형제여, 당신은 사슴(영혼)이 뱀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영혼은 화살에 맞은 것처럼 사랑의 불로 타오르기 때문에 주님을 사모하여 실신합니다.
15. 굶주림의 효과는 모호하고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갈증의 효과는 강렬하며, 모든 사람에게 분명합니다. 갈증은 타오르는 열기를 나타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시편 43:2)한다고 말합니다.
16.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때, 우리는 확실하고 완전히 변화되어 즐겁고 유쾌하고, 평온함을 느낍니다. 하물며, 주님께서 보이지 않게 임하셔서 순수한 영혼 안에 거하실 때, 주님의 얼굴을 보는 기쁨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17. 영혼의 내적 확신이 더러움을 말살하고 삼켜버릴 때, 두려워하십시오. 이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판단을 두려워하나이다”(시편 119:120).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아가 4:9).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시편 28:7). 그러므로, 전인(全人)이 하나님의 사랑과 혼합되면, 그 사람의 육신의 외모까지도 자신의 영혼의 광채를 나타내는 거울과 같아집니다.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영광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던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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