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방주에 들어가는 자만이 살 수 있다.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1. 9. 09:39

2026.1.9. 금요일

창세기 6:1-22

 

- 인류의 타락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겍도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 심판과 은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판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 의인 노아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해함이었더라.

 

- 방주 준비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게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고,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든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식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

하나님의 아들들, 사람의 딸들, 네피림은 아직도 이해가 어렵다.

남자가 여자의 아름다움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를 악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서 떠나버렸다. 

성령이 없으면 영적 죽음의 상태이다. 

더불어 인간의 연수를 정하셨다.

영적으로 죽은 유한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악한 세상을 그대로 두시지 않으시고 심판하시기로 계획하셨다.

그리고 노아에게 방주, 의인들을 구원할 구원의 통로를 만들게 하셨다.

노아 가족만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 많은 사람이 필요치 않았다.

심판 중에도 의인과 하나님의 피조물의 종족을 보존하시는 자비를 베푸신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 준행한다.

 

성령 하나님

죄는 영원히 그대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끝에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소서

인간의 죽음과 유한함과 한계를 기억하며 살기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도 있다는 사실도 명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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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판의 물결, 구원의 방주 ]

 

세상의 죄악은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지만,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은혜의 방주를 준비하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1-4절)

죄의 흐름을 방치하지 않고 경계를 세우십니다.

인류가 번성하던 때, 사람들은 욕망을 따라 배우자를 취하며 하나님의 뜻을 외면했습니다.

겉보기에는 풍요와 활력이 넘쳤으나, 그 안에는 타락과 욕망이 자리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날을 제한하시며 죄의 흐름을 멈추려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죄악 가운데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경계를 세우십니다.

그 경계 안에서 생명이 보존되고 질서가 유지됩니다.

욕망이 이끄는 대로 경계를 허물면 결국 삶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경계는 억압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울타리입니다.

 

(5-8절)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끝내 악으로 기울었을 때,

하나님은 깊이 슬퍼하시며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의 장막 아래에도 은혜의 빛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눈여겨보시고, 그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는 노아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과 자비였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심판하시지만,

인간의 실패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

우리를 먼저 붙든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도 우리를 살게 합니다.

 

(9-12절)

세상이 폭력과 부패로 가득한 때에도, 노아는 의롭게 살며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 절망의 시대에 새로운 역사를 여십니다.

오늘 우리가 작은 믿음으로 걷는 걸음이,

세상의 어움들 밝힐 새로운 불씨기 될 수 있습니다.

 

(13-22절)

하나님은 노아에게 다가올 심판과 구원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방주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은 순종의 상징이었습니다.

노아는 세상의 조롱을 무릅쓰고,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의 순종이 가족과 인류의 생명을 보존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감정의 열광이 아니라, 말씀을 붙들고 오래 견디는 순종의 땀방울입니다.

오늘 우리의 작은 순종이 미래의 구원을 존비하는 초석이 됩니다.

 

죄 많은 세상 속에서도 은혜를 의지하며, 끝까지 주와 동행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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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주에 들어가는 자가 의인 ]
찬송가 431장 주 안에 기쁨 있네

노아가 사는 세상은 부패하고 포학함이 극에 달한 세상이었습니다.

그 부패와 포학이 어떤 종류였는지 성경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을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

원인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나타나는 결과는 여러 가지 형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은 한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증상을 없애는 것으로는 바른 치료가 되지 못합니다. 

수많은 증상을 다 치료할 수도 없습니다. 

한 가지를 치료하면 두 가지 증상이 또 새롭게 나타날 뿐입니다.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여러 증상에 대한 바른 치료법입니다.

부패와 포학의 원인은 인간의 자존 망대입니다. 

고상하게 표현하면 ‘인본주의’입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데 골몰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는 교만입니다. 

카인 계열의 특징이었던 이 풍조가 

셋 계열의 사람들에게까지 전염되어 온 세상을 휩쓸었습니다. 

모든 인간의 삶의 목표는 네피림, 용사가 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용사가 되면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다고, 

예쁜 마누라도 얻을 수 있고, 좋은 직장과 명성도 저절로 들어온다고 믿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공부하자. 마누라가 바뀐다.’ 집사, 장로, 목사의 자녀들이 

이런 구호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공부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셋 계열의 사람들이 카인 계열이 이루어 놓은 문화와 문명, 자기 계발의 삶을 부러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스펙들을 부러워하였습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지요. 셋 계열이 카인 계열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셋 계열의 사람들이 더 이상 아이를 낳아가는 일에,

유일한 가치를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삶을 포기하였습니다.

‘예수만’ 믿는 자에서 ‘예수도’ 믿는 자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자에서, 그리스도를 악세서리로 삼는 자로 변질되었습니다.

인간의 자존 망대를 치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해법은 방주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도록 온세상을 물바다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방주 안으로 순순히 들어가는 자가 의인입니다. 그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모두가 잘남을 추구하고, 모두가 자기 잘남을 내세우는 이 시대에 노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노아를 의롭다, 완전하다고 인정하십니다.

노아의 완전함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는 ‘타밈’입니다. 

타맘’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타맘은 전혀 반대되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완성하다, 완수하다, 끝나다. 실패하다. 건강하다. 손상되지 않다. 소모하다. 파괴하다.’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타맘의 이런 복합적인 의미는 타맘의 완전함이 어떤 완전함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완전히 깨져서 완성되는 것이 타맘의 완전함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깨져서 다시 세워져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겸비함의 자세가

‘타밈’에 들어 있는 완전함의 비밀입니다.

노아의 완전함은 자신을 계발하여 최고의 상태로 올려놓은 완전함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는 겸비한 순종의 태도, 즉 믿음을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가 얻게 되는 완전함입니다.

이런 자만이 방주에 들어갑니다. 들어갈 수 있고, 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는 방주인데, 

'타밈'을 갖지 못한 자는 도저히 방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의 마음이 한사코 방주에 들어가기를 거부합니다.

방주는 히브리어로 ‘테바’인데, 이 ‘테바’가 출애굽기에도 등장합니다. 

모세를 넣었던 갈대 상자가 바로 ‘테바’입니다(출2:3,5). 

직육면체 상자 모양이었습니다. 

직육면체의 상자를 생각하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게 즉각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성막, 성전입니다. 방주->성전->그리스도로 이미지가 연결됩니다.

그렇습니다. 방주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방주 곧 그리스도께 소속이 된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부인된 자들만이 그리스도 안에 소속을 정하고, 거기에 붙어 있습니다. 

자기가 부인 되지 않은 자들에게 이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수직적으로 그리스도에게 복속되고 복종하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수평적으로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이 됨을 의미합니다. 

쉬운 표현으로 ‘한 배를 탔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라는 한 방주, 한 배를 탄 사람들입니다. 

성격이 다른 것, 신분이 다른 것, 성별이 다른 것, 정치 성향이 다른 것을 이유로 나누지 않습니다. 

한 배 탔으니, 미우나 고우나 같이 살고 어울립니다.

남의 눈에 티를 보고 비판하기보다, 먼저 자기 눈의 들보를 봅니다.

그래서 형제의 잘못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연약한 자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오직 방주 안에 있어야만 살 수 있음을 인정하여, 

죽어라고 방주에 붙어 있는 자가 의인입니다. 

그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

깨어짐, 낮아짐의 자리가 완전한 자리인 줄 알고 믿음으로 완전을 향해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만 바라보는 믿음 갖게 하옵소서.

자기 계발과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멋있는(?) 자리를 경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가 한배를 탔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 한배 안에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명심하겠습니다.

나와 맞지 않는 형제, 성격이 너무 이상한 형제가 있다 하더라도 결코 방주를 떠나지 않고 붙어 있겠습니다.

용사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주 안에 붙어 있는 것이 목표인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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