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6. 화요일
창세기 3:14-24
- 하나님의 심판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 새 이름과 새 옷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에덴에서 추방된 사람
여호아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
인류의 죄의 시작을 기록하고 하나님이 이 죄를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보여 주셨다.
뱀에 대한 저주는 원시 언약이다.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탄, 죄를 멸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인간은 죄인의 몸으로 에덴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었다.
해산의 고통과 땀흘려 일해야 하는 수고의 징계를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게 하시고 돌이킴의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그의 안전과 구원은 짐승을 죽여 가죽옷을 입히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가능하다.
뱀과 다르게 영원히 멸하지 않으시고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갈 유한한 인생임을 강조하시면서
영생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구원도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가능하다 말씀하신다.
우리는 늘 착각한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인류가 당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힌다.
개인도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지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 노래하며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임을 선포한다.
성령님
오늘도 내가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임을 기억하게 도와 주소서.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나의 주가 되어 주시고 온전히 통치하여 주셔서
정결한 삶, 빛을 발하는 하루가 되도록 도와 주소서.
새벽 기도회에 들려주신 정결의 말씀처럼
내 안에 있는 부정한 것들, 죄된 것들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셔서
거룩함으로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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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하나님의 지혜를 거부하고 스스로 지혜롭기를 원했던 인간을
하나님은 수고와 고통에 처하게 하시고, 에덴에서 쫓아내십니다.
그러나 징벌 중에서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십니다.
(14-15절)
거짓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영원히 패배시키십니다.
하나님은 뱀에게 변명이나 해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으시고 즉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뱀은 굴욕적으로 패배를 당할 것이며,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가 짓밟힐 것입니다.
이 말씀은 훗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탄을 멸하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실 구원사건을 알리는 예시입니다.
거짓의 세력이 여전히 활개 치는 듯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신뢰합시다.
(16-21절)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되, 은혜를 거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죄의 대가로 인간의 고통과 수고가 발생하는 것을 허용하셨지만,
그들의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기 위해
짐승의 희생으로 만든 가죽옷을 손수 지어 입히셨습니다.
인간의 수치와 죄책을 덮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피 흘림의 대속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될 구원의 예표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옷(사 61:10)을 입히시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갈 3:27)로서 새 생명 가운데 살게 하십니다.
(전체)
죄의 결과는 모든 관계의 단절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두려움 속에 숨게 되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깨져 수치심을 느꼈으며,
인간관계가 무너져 서로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또한 인간의 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자연과의 관계도 깨어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절된 관계 속에서도 회복의 길을 여셨습니다.
말씀묵상은 바로 그 회복의 초청에 응답하는 시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바로 세우며 ,
예배자로, 돕는 자로, 청지기로 살아가는 기쁨을 회복합시다.
(20절)
아담이 아내의 이름을 '하와'(생명)라 부릅니다.
타락 후에도 하나님이 생명을 이어 가게 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아담은 하나님의 생명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죄의 현실 가운데서도 생명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바로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죄로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고, 심판 속에서도 구원의 길을 여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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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고하는 여자의 이름 '생명' ]
찬송가 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3장은 인간의 죄성을 보여주는 부분(1-13절)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14-24절, 하나님 편:독생자를 주심, 인간 편:겸비한 수고)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13절)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은 욕심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방향을 잘못 잡은 욕심, 이것이 죄성입니다.
죄의 원인은 마귀가 아닙니다. 마귀는 단지,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들쑤시고 부추길 뿐입니다.
죄는 기괴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도 나만의 영역을 가지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것은 결국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진실을 거부하는 반역으로 귀결됩니다.
죄는 삼두육비의 괴물이 아닙니다.
내 인생을 내가 결정하고 싶어하는 마음,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죄의 근원입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성향이 죄성입니다.
진화론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과학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진화론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화론을 포기하는 순간 자기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유인원의 후손이 되더라도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죄성입니다.
소꼬리보다 닭머리가 낫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심이 죄의 출발점이 됩니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명하신 나무의 열매를 먹은 이유를 대는 것을 보면
이미 아담의 마음에 하나님의 주인 되심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음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듯하면서 교묘하게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아담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 대답에는 나는 주인이 아니니, 나는 결정권이 없으니 내게 책임 묻지 말라는 항의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게 여자를 붙여주셨고 그 여자가 일을 저질러 이렇게 된 것입니다.
내 책임 아닙니다. 내가 내 자의로 뭘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다 조종하고 간섭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래 놓고 이제와서 제게 책임을 물으십니까?’ 이런 항의가 들어 있습니다.
제가 너무 지나치게 해석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게는 아담의 대답이 그런 의미로 들립니다.
하와의 대답도 마찬가지입니다.
뱀이 꾀므로 먹었다는 대답에는, 그 뱀을 만드신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너무 무서워서 책임을 회피하는 대답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섭기만 했다면 벌벌 떨며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용서를 구하지 않고 단지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급급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뱀과 접촉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의구심, 반발심이 은연중 그들의 마음에 또아리를 튼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반발하는 이런 죄성은
인간이 뭔가를 이룩해 내고, 인간의 삶이 풍요로울 때 더욱 강하게 드러납니다.
에덴의 풍요와 여유 속에서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일에 골몰하게 되었습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에게는 더 많은 여유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죄는 더욱 세상에 관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파국이 닥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 진멸을 당한 것은 그 가운데 죄가 관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14-24절)
에덴의 풍요 속에서 죄의 길을 택한 인간을 하나님은 에덴에서 쫓아내십니다.
그리고 수고라는 징계의 조치를 하십니다.
해산의 수고와 땀흘려 생계를 유지하는 수고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아담,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수고라는 징계를 주신 것은
수고를 통해 뭔가를 이루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수고해서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그 쌓은 업적을 바탕으로 풍요를 누리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수고를 통해 인간의 피조물 됨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무슨 용을 써도 자신의 수고로는,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일 뿐인
인생의 허무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 전후에,
반복해서 훍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갈 존재임을 강조하시는 뜻이 이것입니다(19절 표준새번역 참조).
단지 오래 살게 되는 것이 인간에게 행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많은 물질과 많은 여유 시간이 행복의 충분 조건이 아닙니다.
회개와 겸비한 순종의 열매 없이 단지 오래 그리고 풍족하게 살게 되는 것은,
인간을 더욱 죄악에 깊이 빠지게 만듭니다.
죄악이 더욱 심화된 인간 세상은 점점 지옥을 닮아갈 뿐입니다.
진정한 생명, 풍성한 생명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셔야 하는 것이지,
스스로 따 먹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또다시 착각에 빠지게 될까 봐
하나님께서는 생명 나무의 길을 차단하시고,
먼저 수고를 통해 겸비함을 배우게 하십니다.
겸비한 마음으로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일시적으로는 생명 나무를 통해 생명 연장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옥에서 오래 사는 것이 무슨 행복이겠습니까?
멸망의 심판을 받은 자들은 모두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인데,
그 삶이 어찌 풍성한 생명의 삶이 되겠습니까?
겸비한 수고 가운데에서,
오직 여자의 후손이 오시기를 고대하며 자녀를 낳아가는 여자가,
진정한 생명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의 이름이 '생명'이 되었습니다(히브리어 ‘하와’는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딤전 2:15] 그러나 여자들(헬라어 본문에서는 여자들이 아닌 단수형 ‘여자’)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주님,
수고를 피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겸비한 마음으로 수고를 견디겠습니다.
지나친 안락과 여유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에 취하지 않겠습니다.
수고 가운데서 내가 흙임을 되새기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겠습니다.
수고 때문에, 수고의 끝에서, 더욱더 겸비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수고가 없는 곳에서도 다시는 엉뚱한 반역의 생각을 하지 않는 자로 확실히 세워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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