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5. 월요일
창세기 3:1-13
- 처음 사람들의 죄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도;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 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을 줄을 알고 무확과나무 잎을 치마로 삼았더라
- 죄인을 찾으시는 하나님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도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네가 벗었느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려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게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
우리는 말을 전할 때 상대방의 말을 더하거나 빼거나 할 때가 많다.
자기 생각을 더하여 전달할 때가 많다.
정직하고 고지곳대로 말하지 않고 비틀거나 빗대어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왜 간교한 뱀을 창조하셨을까?
하나님은 우리가 먹을 수 없는 나무를 구지 창조하셨을까?
그 생명나무와 선악과는 어떻게 생겼을까?
왜 생명나무가 아닌 선악과를 유혹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하와는 뱀의 한 번의 유혹에 이렇게 쉽게 넘어가고 말았을까?
아담은 하와가 건네 준 선악과에 대하여 무슨 과일인지 왜 한 번 쯤 물어보지 않았을까?
선악과가 왜 부끄러운 감정을 갖게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죄를 지으면 왜 숨는 것일까?
그리고 잘못을 저지르면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려 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들어온 것일까?
하나님의 주 되심과, 순종과 불순종의 잣대로 삼으신 의미를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투정 섞인 불평을 하고 싶다.
선하게 창조하신 인간에게 이런 죄와 습성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 안타깝다.
사람이 다시 새창조를 덧입어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거듭남이 얼마나 힘든가?
인간으로는 불가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대속이 필요했다.
성령님
내 안에 있는 죄의 본성들이 나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시고
늘 내주하시는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온전히 주님께 드려지는 마음, 생각, 삶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는
새롭게 거듭날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주의 은혜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면서 살게 도와 주소서.
사소한 작은 일에서부터 죄에 자신을 내어 맡기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운전을 할 때도, 말을 건넬 때에도, 대화할 때도, 무슨 일을 하든지
올 해는 '천천히', '경청하는', '기다리는' 훈련을 더 많이 하고 싶다.
실수를 줄이고, 죄를 덜 짓기 위해서 날마다 말씀 앞에 자신을 더 노출 시키고
기도의 자리에 더 열심히 무릎을 끓고 살아가자.
나는 흙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고 흙으로 돌아갈 유한한 존재임을 잊지 말자.
나는 항상 죄의 본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연약한 존재임을 잊지 말자.
날마다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한다.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또 구한다.
그 은혜만이 나를 살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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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
인류의 첫 부부가 간교한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맺어 주신 모든 관게를 어그려뜨렸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멀어진 사람을 찾아와 말을 건네십니다.
(8-9절)
하나님은 죄로 멀어진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바람이 부는 동산을 거니시며 사람을 찾으시고,
수면 위를 부드럽게 덮으시는 성령(바람)의 모습으로(창 12장) 사람을 찾아다니십니다.
지금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까지 찾아다니는 목자처럼(눅 15:4)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를 찾아오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시며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교제하는 자리로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성경묵상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과 함께 길을 걷는 시간입니다.
(9-13절)
질문을 통해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어디 있느냐?". "누가 네게 알렸느냐?", "네가 먹었느냐?",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본래 우리를 부르시고 세우신 '부름의 자리'가 어디인지 생각나게 하는 질문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으로 말을 거시며 대화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성경을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물음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물음에 응답하는 것이 회개와 회복의 시작입니다.
(1절)
뱀은 가장 '간교한' 피조물이었습니다.
'간교하다'(히. 아룸)란 단어는 2:25의 '벌거벗다'(히,. 아롬)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이는 뱀이 인간의 연약함을 이용했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이 사랑과 진실함으로 한 몸을 이룰 때는 연약함이 서로 돕게 하지만,
죄의 유혹에 빠지면 그 연약함이 서로 해치는 빌미가 됩니다..
약함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약함을 악용하는 태도, 곧 간교함이 죄입니다.
(2-7절)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과장하고 왜곡하여,
하나님의 큰 은혜를 감추고 작은 제한만 보이게 만듭니다.
이로써 하나님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심습니다.
죄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음에 만족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처럼 되라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필요 없을 만큼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순간
도리이어 자신의 수치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진정한 지혜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기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겸손히 주를 찾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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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고하는 여자의 이름 '생명' ]
찬송가 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창세기 3:1-24>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표준새번역 :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때까지,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은 욕심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방향을 잘못 잡은 욕심, 이것이 죄성입니다.
죄의 원인은 마귀가 아닙니다.
마귀는 단지,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들쑤시고 부추길 뿐입니다.
죄는 기괴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도 나만의 영역을 가지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것은 결국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진실을 거부하는 반역으로 귀결됩니다.
죄는 삼두육비의 괴물이 아닙니다.
내 인생을 내가 결정하고 싶어하는 마음,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죄의 근원입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성향이 죄성입니다.
진화론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과학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진화론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화론을 포기하는 순간 자기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유인원의 후손이 되더라도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죄성입니다.
소꼬리보다 닭머리가 낫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심이 죄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런 죄성은 인간이 뭔가를 이룩해 내고, 인간의 삶이 풍요로울 때 더욱 강하게 드러납니다.
에덴의 풍요와 여유 속에서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일에 골몰하게 되었습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에게는 더 많은 여유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죄는 더욱 세상에 관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파국이 닥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 진멸을 당한 것은 그 가운데 죄가 관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덴의 풍요 속에서 죄의 길을 택한 인간을 하나님은 에덴에서 쫓아내십니다.
그리고 수고라는 징계의 조치를 하십니다.
해산의 수고와 땀흘려 생계를 유지하는 수고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아담,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수고라는 징계를 주신 것은, 수고를 통해 뭔가를 이루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수고해서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그 쌓은 업적을 바탕으로 풍요를 누리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수고를 통해 인간의 피조물 됨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무슨 용을 써도 자신의 수고로는,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일 뿐인
인생의 허무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 전후에,
반복해서 훍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갈 존재임을 강조하시는 뜻이 이것입니다(19절 표준새번역 참조).
단지 오래 살게 되는 것이 인간에게 행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많은 물질과 많은 여유 시간이 행복의 충분 조건이 아닙니다.
회개와 겸비한 순종의 열매 없이 단지 오래 그리고 풍족하게 살게 되는 것은,
인간을 더욱 죄악에 깊이 빠지게 만듭니다.
죄악이 더욱 심화된 인간 세상은 점점 지옥을 닮아갈 뿐입니다.
진정한 생명, 풍성한 생명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셔야 하는 것이지,
스스로 따 먹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또다시 착각에 빠지게 될까 봐
하나님께서는 생명 나무의 길을 차단하시고,
먼저 수고를 통해 겸비함을 배우게 하십니다.
겸비한 마음으로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일시적으로는 생명 나무를 통해 생명 연장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옥에서 오래 사는 것이 무슨 행복이겠습니까?
멸망의 심판을 받은 자들은 모두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인데,
그 삶이 어찌 풍성한 생명의 삶이 되겠습니까?
겸비한 수고 가운데에서,
오직 여자의 후손이 오시기를 고대하며 자녀를 낳아가는 여자가,
진정한 생명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의 이름이 '생명'이 되었습니다(히브리어 ‘하와’는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딤전 2:15] 그러나 여자들(헬라어 본문에서는 여자들이 아닌 단수형 ‘여자’)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주님, 수고를 피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겸비한 마음으로 수고를 견디겠습니다.
지나친 안락과 여유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에 취하지 않겠습니다.
수고 가운데서 내가 흙임을 되새기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겠습니다.
수고 때문에, 수고의 끝에서, 더욱더 겸비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수고가 없는 곳에서도 다시는 엉뚱한 반역의 생각을 하지 않는 자로 확실히 세워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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