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30. 금요일
창세기 21 : 1-21
- 이삭의 출생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음으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이스마엘의 조롱과 사라의 분노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 아브라함의 근심과 하나님의 지시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 하갈과 이스마엘의 방황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불덤불 아래에 두고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 하나님의 응답과 보호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하나님이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
...............................
이삭의 출생은 사라에게, 아브라함에게, 주변 모든 사람에게 웃음을 주었다.
한 인간의 출생이 모두에게 기쁨이 되었다.
나 또한 이렇게 주변에 기쁨이 되는 사람이기를 소망해 본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례를 행한다.
언약을 기억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이다.
아브라함도 이제 말씀에 순종하는 삶, 성숙한 믿음에 이른 것이다.
뭐라해도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은 말씀대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이삭의 젖 떼는 것을 기념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다.
이스마엘이 시기와 질투가 발동되었다.
자신에게는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라의 말을 비추어보면
이스마엘이 이삭을 단순히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장자이니 자신이 기업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일까?
결국 분수를 모르는 착각은 집에서 쫓겨남을 당했다.
사람은 자고로 자신의 어떠함을 알아야 한다. 분수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실수하지 않는다.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다. 흙으로 돌아갈 피조물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앞에서 늘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야 한다.
구원의 가치, 소중함, 그무엇보다도 값지고 귀한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고민하고 번민하며 잠 못 이루는 아브라함에게 해결책을 제시하신다.
고통스럽더라도 자식을 내 보내야 했다.
어떤 아비가 가슴 아프고 힘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업자득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한 자신의 실수의 댓가이다.
하갈에게 지어준 것이 떡과 물 한 부대가 전부이다.
훗날 서자들을 보내던 때와는 너무나 비교되는 모습이다.
사라 때문이었을까? 너무나 매몰차다. 가서 죽으라는 것 같다.
왜 그랬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아브라함의마음도 결코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돌보셨다.
하갈은 처음 사라를 피하여 도망 나왔을 때 만나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부르며 울부짖었을까?
어린 이스마엘이지만 목마름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울부짖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절박한 자들의 기도와 울음과 울부짖음을 들으신다.
그리고 속히 응답하시며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약속하신 대로 아스마엘도 광야에서 생존과 가정을 일구게 해 주셨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우리의 모든 것을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는 하나님
오늘도 저의 삶을 보호해 주시고 선하게 인도해 주소서.
주님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짐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 되기를 기도합니다.
---------------------------------------
[ 웃음과 근심 ]
하나님은 말씀대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을 안겨 주셔서 참으로 웃게 하십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시지만 이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십니다.
(1-2절)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
아브라함과 사라도 믿지 못한 일을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십니다.
하나님을 우리 생각으로 제한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역사가 됩니다.
(5-7절)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 짓던 헛웃음(17:17, 18:12)을
아들을 안은 감격과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셨습니다.
사라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이 역사를 듣고 믿는 모든 사람을 활짝 웃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에게 진정한 웃음을 되찾아 주시는 은혜입니다.
(8-12절)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낳은 이삭만을 아브라함의 씨로, 언약을 이어 갈 상속자로 인정하십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방법으로 얻었기에
언약의 자손으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언약 성취의 웃음(이삭)을 조롱의 웃음(놀림)으로 대하는 이스마엘의 모습은,
그가 언약에 속한 자가 아님을 드러냅니다.
언약의 계승자가 되는 일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결정하시고 독자적으로 이루십니다.
(13-21절)
이스마엘을 언약의 자손으로 인정하지 않으셨지만,
그의 소리를 들으시고 광야에서 돌보셨으며,
그가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이전의 약속을 반복하십니다(16:10).
언약 백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스마엘이 제외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서 배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이방인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엡 2:11-19, 딤전 2:4).
이 계획을 이루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고, 모든 인류를 은혜로 보살피고 계십니다.
(3-4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들의 이름을 이삭으로 짓고(17:19),
이삭이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햇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말씀대로의 순종으로 드러납니다.
말씀대로 이루셔서, 우리에게 참된 웃음을 안겨 것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게 하소서.
=================
[ 언약의 자녀와 육신의 자녀 ]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1-7절) 이삭은 언약의 자녀였습니다.
1~4절에 ‘말씀하신 대로’ ‘명령하신 대로’라는 표현이 4번이나 나옵니다.
3절에 생략되었지만, 이삭이라는 이름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17:19) 붙인 것입니다.
(8-21절) 반면 이스마엘은 육신을 따라 난 자녀입니다.
그는 아내를 '애굽' 땅에서 얻었습니다.
육신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어야 하는 율법의 사람에게 걸맞은 아내입니다.
언약의 자녀와 육신의 자녀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이 공존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아깝고 아쉽고 미련이 많이 남지만, 눈물을 머금고 내쫓아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와 하갈 사이에서 참 많이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매우 근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단호합니다.
이스마엘은 내가 돌볼 테니 하갈을 내보내라고 하십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단호함이,
그에 따라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단둘만 나가게 한 것이, 너무 비정해 보입니다.
사라를 설득하여, 25장 6절에서 서자들에게 한 것처럼
재산을 떼 주고 멀리 이주하게 할 수는 없었을까요?
경제적으로 아브라함에게 그만한 여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 사라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사라의 요구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떡과 물 한 가죽부대만 메워서 내쫓았습니다.
그는 이스마엘을 지켜 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어떻게 놀렸는지,
그 놀림의 내용과 정도가 어떠했는지 우리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라의 반응이 과한 것인지, 당연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라가 왜 이렇게 속이 좁고 인정머리가 없지? 예수 믿는 사람들 속 좁은 것하고 똑같네...?’
단순한 놀림에 불과했다면 오늘 본문을 대하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도덕적인 삶보다는 영적인 삶에 1차적인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사라의 대응이 과했는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언약의 자녀와 육신의 자녀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육신의 문제가 영적인 삶에 장애 요소가 되지 않도록 단호하게 끊어내라고 하십니다.
둘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하십니다.
이스마엘의 육신적인 문제는 하나님이 알아서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언약의 자녀로 사는 것에 1차적인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자녀에 대한 염려까지도, 부모에 대한 걱정조차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속 좁고 정 없어 보일지라도 ...
주님,
두렵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여
육신의 문제를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언약의 자녀 됨을 담대히 믿고 육신의 염려를 떼어버리게 하옵소서.
아멘!
'2026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은혜 위의 은혜 (1) | 2026.02.01 |
|---|---|
|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의 삶 (0) | 2026.01.31 |
| 번영을 추구한 삶의 결말 (0) | 2026.01.28 |
| 미련이 가져오는 머뭇거림 (0) | 2026.01.27 |
| 소돔성에서 의인으로 사는 길 (0) | 2026.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