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소돔성에서 의인으로 사는 길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1. 26. 07:09

2026.1.26. 월요일

창세기 19 :1-11

 

- 두 천사를 대접하는 롯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 소돔 사람들의 악행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 롯의 만류에도 멈추지 않는 악행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데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좋을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일도 저지르지 말라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 롯을 보호하는 천사들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

롯은 저녁 무렵 왜 성문에 앉아 있었을까?

나그네로 소돔성에 들어와 성문에 앉을 정도면

세속 문화에 관심과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고 열심을 가졌다는 반증이다.

 

두 천사를 어떻게 알아봤을까? 

다른 평범한 나그네라도 이렇게 간청하여 집에 들이고 대접하였을까?

아브라함처럼 나그네를 대접하고 보호하는 마음이 롯에게도 있었다.

아브라함에게 배운 것일까?

 

소돔 사람들은 어떻게 두 나그네를 특별한 인물로 알아 봤을까?

왜 자신들을 심판하는 법관이 되려 하려는가 하며 따지는 것일까?

본문의 상관하리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고전적으로는 상관하리라는 말을 성관계라고 해석하는데, 노소라고는 말에 좀 해석이 궁색해 보인다.

나그네 둘이 여자처럼 보였다는 말인가? 아니면 동성간의 성관계를 말하는 것일까?

아무튼 소돔성의 성적 타락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롯은 나그네를 보호하려고 어떻게 처녀인 자신의 딸들을 희생물로 내놓을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자식보다 나그네를 중시하는 롯의 자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이런 롯을 의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롯에게도 오랜 생활 소돔에 거주하면서 소돔의 악에 물들어 뒤틀린 가치관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천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에브라임에 살던 어느 제사장의 첩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본문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풀리지 않는 궁금증들이다.

모든 것을 소돔 사람들의 악으로 설명하기에는 그래도 궁금증이 남는다.

 

주여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구별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언론 매체와 SNS를 접하며 들려오는 이야기들에서 나를 지키게 도와주소서.

진리를 모른 채 비진리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두 나그네를 천사로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주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길 걸어가게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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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악의 도시에서 ]

 

롯은 두 천사를 극진히 환대하지만, 소돔 사람들은 그들을 헤치려 몰려듭니다.

롯의 선한 의지가 폭력과 악에 눌릴 때, 심판의 때가 임박했음이 들러납니다.

 

(9-11절)

짐승처럼 욕망에 이끌려 살던 자들의 눈을 어둡게 하십니다.

소돔 사람들은 이미 마음의 빛을 잃었고,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입니다.

어둠은 단번에 닥치는 재앙이 아니라,

욕망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심으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롬 1:26-27).

하나님의 심판은 욕망이 더 이상 절제되지 않는 자리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

( 1-3a절 )

롯은 낯선 나그네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지 않도록 간곡히 청하여 집으로 맞이합니다.

무법한 도시의 위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위험에 처한 이웃을 보호하는 롯은 의인이었습니다.

내 눈은 위기에 처한 이웃을 발견하며, 내 손발은 그를 위해 기꺼이 움직입니까?

 

(1, 3b,9절)

롯은 소돔의 핵심층에 끼려고 주요 인사들과 성문에 앉아 있었지만,

그들에게 여전히 나그네로 취급받습니다..

롯이 천사에게 대접한 음식도 아브라함에 대접한 음식에 비하면 소박합니다.

풍요를 좇아 소돔으로 왔으나 형편이 아브라함보다 못한 것입니다.

성공을 추구했던 그의 초라한 형편은,

진정한 복이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4-5절)

소돔 사람들은 욕정에 사로잡혀 외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려 합니다.

탐욕과 쾌락의 지배를 받는 사회는 결국 인간다움을 잃고 악을 정당화합니다.

우리 세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물질의 반영과 쾌락의 자유를 미명으로 삼아, 양심이 마비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탐욕을 분별하지 못하면 사회 전체가 무너집니다.

 

(6-8절)

롯은 소돔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그들이 때로 몰려와 하려는 일이 '악행'임을 알고 만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은 손님을 지키려고 두 딸을 내어 주겠다는 어리석은 제안을 합니다.

무법한 자들 속에서 괴로워하면서도(벧후 2:7), 어느새 그들의 가치관에 물든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악한 세상을 떠날 수 없더라도, 영혼과 양심은 말씀에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번영에 눈 멀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악에 물들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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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의 정체성 ]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소돔의 죄악상을 확인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소돔에 내려가십니다(18:21).

하나님께서 몰라서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직접 행차하신(?) 것도 아닙니다.

사자인 천사를 보내어 확인하는 절차를 취하십니다.

사실은 롯에게,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악을 코 앞에 들이대고 확인시켜 주지 않으면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인간이 죄악에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자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렀을 때, 롯은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성문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롯이 소돔성에서 유력한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9절에서 롯에게 시비를 거는 무뢰배들이 하는 말처럼 그는 재판관의 지위를 얻은 듯합니다. 

소돔성에서 세상적으로 볼 때 소위 출세를 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롯은 하나님의 사자의 특별함을 알아보는 안목도 있었습니다. 

상당한 정도의 경건성도 롯에게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은 점점 소돔성의 죄악에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롯이 소돔성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거꾸로 소돔이 롯의 눈을 어둡게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소돔성을 향하여 롯은 어떤 경건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지난번 포로 사건으로 1차 경고를 받았음에도 

소돔을 벗어날 생각을 하고 있지 않고 있는 것은 

그가 소돔의 죄악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자기 딴에는 자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소돔성이 아무리 악해도, 그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지켜나갈 자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소돔성을 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롯의 판단 착오였습니다.

성도는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세상과 동화되는 것은 더더욱 안 됩니다. 

성도는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빛이 되라’고 명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미 소금이요 빛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지 않았다면,

반드시 짠맛을 내어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들고, 

세상에 맛을 내는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5:13-14]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만약에 세상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세상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미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롯은 소돔에서 어떤 경건의 영향력도 가지지 못하였음이 비류들과의 실랑이에서 폭로되었습니다. 

롯은 세상에 빛과 소금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변질되어가는 중이었습니다.

첫 출발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동기가 틀렸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려는 목적이 아니라, 

세상이 추구하는 것을 동일하게 얻고 싶어 세상을 가까이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성도는 결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임금은 우리보다 훨씬 힘세고 지능적이며 술수에 능합니다. 

세상과 적당히 가까이하면서, 세상과 사이좋게 벗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순결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길은 아브라함과 함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믿음의 길을 단호하게 걸어왔던 의인 롯도 실패한 길입니다. 

[야고보서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주님, 

내가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며 안심하지 말라는 경고를 새겨듣겠습니다. 

세상에 경건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미 맛을 잃어가고 있는 소금이라는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세상을 만만히 보지 않고, 경건의 연습에 더 정신 차려 임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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