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하나님의 정의와 긍휼 사이에서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1. 25. 07:27

2026.1.25. 주일

창세기 18: 16-23

 

- 아브라함을 향한 계획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 소돔 방문 목적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 정의를 호소하는 아브라함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게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나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 아브라함의 중재 기도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니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내 주여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신 이유를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택하여 불러내셨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하게 하시려고 부르셨다고 말씀하셨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내가 사는 이유, 택함 받은 이유를 망각하고 살 때가 너무 많다.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의미는 이 부르심의 이유를 늘 기억하면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내려오신 일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심인가? 소돔을 멸하려 하심인가?

소돔을 가는 도중에 아브라함을 방문한 것인가?

누가 하나님께 소돔의 죄악에 대하여 부르짖었을까? 

하나님이 들으신 그 부르짖음은 누구의 부르짖음일까?

그렇다면 소돔에 의인이 있어야 당연한 것 아닐까?

소돔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심판을 받고 멸망 당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와 대화하면서 정의를 논한다.

의인과 악인이 함게 같이 취급을 받고 함께 멸당을 당하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자 하나님이 의인 오십 명을 제안하신다.

소돔 성의 인구가 얼마였을까?

아브라함이 생각해봐도 의인 오십 명이 없을 것 같았던 모양이다

소돔 성에 거하는 조카 롯이 가족들을 생각하며 6번에 걸친 타협이 이루어진다.

마지노선 열 명에서 하나님은 떠나셨고 아브라함도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하다면 그 소수의 의인들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소돔과 고모라는 불과 유황으로 멸망 당했다

단지 롯과 아내와 두 딸만 탈출할 수 있었다.  

이들만이 구원을 받은 의인인가?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정의를 보여 주심인가?

 

결국 하나님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지 않으면 멸망을 당하고

지켜 행하는 자는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주신 것이리라.

하나님의 심판에서 의인은 악인들과 함께 멸망 당하지 않고 구원함을 받는 하나님의 정의를 경험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하시고, 이해하도록 시례를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마음을, 계획을 알게 해 주시는 하나님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과 대화 중에 소돔이 얼마나 부패하였고 좌악에 물들어 있었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의인 열 명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을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와 긍휼 사이에서 우리가 살아갈 모습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정의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여 하나님의 긍휼에 기댈 수밖에 없음을 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해결책을 주셨다.

오늘도 그 은혜로 살아간다.

 

주님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불러 주신 하나님의 계획을 잊어버리지 않고 늘 기억하며,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 가게 도와 주소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늘 깨닫도록 성령께서 지혜를 주옵소서.

날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이해하며 품고 지켜 행하며 살게 하소서 

오늘 당회에도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결정을 하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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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

 

하나님은 소돔의 죄를 심판하시기 전, 아브라함에게 그 뜻을 알리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을 신뢰하며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의인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16-19절)

소돔으로 향하시며, 아브라함에게 계획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단지 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나눌 만큼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세상에 정의와 공의를 행하러 하셨습니다.

신앙의 성숙은 단지 복을 누리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뜻에 동참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마음을 나눌 벗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벗은 그분의 뜻을 함께 품은 사람입니다.

 

(20-22절)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관영함을 들으시고, 그 실상을 친히 감찰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앞에는 감추어진 것이 없습니다(히 4:13).

우리의 생각과 말, 걸음과 길이 모두 하나님 앞에 드러납니다(시 139:2-4).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은 외식보다 진실을, 형식보다 정직을 선택합니다.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인식하며 살고 있습니까?

 

(27-33절)

공의로우시기에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의 끈질긴 간구 끝에,

하나님은 "의인 열 명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고 응답하십니다.

그분의 판단은 언제나 정의롭고, 그분의 마음은 언제나 긍휼로 기울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구별하여 보호하시며, 악과 함께 사라지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공의를 믿는 사람은 세상 한가운데서도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의인은 심판의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생명입니다.

 

(23-26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나아가 묻습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의 질문은 도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를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에 희망을 두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잘 아는 데서 오는 담대함입니다.

세상을 위한 우리의 기도 또한 이런 믿음의 확신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부정적인 현실에 침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신뢰하며 담대히 간구합니다. 

 

세상을 정죄하기보다 긍휼히 여기게 하시고,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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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의 친구가 되기 원하시는 하나님 ]
찬송가 135장 어저께나 오늘이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친구처럼 여겨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고 의논하겠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계획을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기를, 이해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인애를 충분히 깨달아 알기를 원하셔서 그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셔서 그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창조주요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친구로 삼아 주시다니요.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이 큰 은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엉뚱한 것에 눈이 돌아가 있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이상의 복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복에는 관심이 없고 

당장 손안의 사탕을 움켜쥐기에 급급한 모습이 우리 삶에서 너무 자주 드러납니다.

아쉬운 쪽에서 우물을 파는 것인가요? 

그렇네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을 찾아오시고, 아브라함에게 친구 하자고 손을 내미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탁월한 비책을 기대하셔서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기를 원하셔서 그렇게 하십니다.

사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는 일보다 

그 일을 아브라함과 의논하는 일이 하나님께는 더 중요한 일입니다. 

아브라함과 이 일을 의논하는 가운데, 

아브라함이 그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일이 하나님께는 훨씬 중요한 일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는 이야기(19:23-29)는 간단히 언급되고, 

그것에 대해 아브라함과 미리 의논하고(18:16-33) 

롯에게 당부하는(19:12-22) 이야기가 훨씬 길게 언급된 것이 그 증거입니다. 

심판 전에 일어난 해프닝(19:1-11)도

롯에게, 아브라함에게, 우리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악이 극에 달했음을 설득시켜 주는 사건입니다.

처음에 아브라함은 소돔을 멸망시키시는 하나님의 처사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오래 참으셨는지, 

소돔 고모라가 얼마나 패역한 곳인지를 깨닫게 된 아브라함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복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해하며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는 것, 

말씀을 묵상하면서 얻게 되는 가장 큰 유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은 말씀에 복종하게 되는 것보다 더 큰 가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작정, 무조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종의 복종이 아니라 아들의 순종, 친구로서의 동행을 원하십니다.

한 쪽만 상대방을 잘 알아서는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잘 아십니다. 

우리에게 관심도 많으십니다. 

창세전부터 우리를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 남은 조건은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고 하나님과 자주 만나기 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잘 알 수 있게 됩니까? 

어떻게 하나님께 관심을 표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야기를 많이, 자주 들으면 됩니다. 

우리와 친구가 되고 싶으신 하나님, 우리의 사랑이 고프신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호세아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이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시며 

데이트 장소에 어김없이 나타나시는데, 우리는 수시로 펑크를 냅니다. 

우리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힘써 알기 원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복은 받기 원하고 돈을 많이 벌게 해 주기를 빌지만,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시간 내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가 문제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 하나님을 대접하는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즐거워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여섯 번이나 조건을 바꾸며 요청하는 기도를 끝까지 다 들어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대화하는 시간을 즐거워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한 마디라도 더 이야기하고 싶으셔서 그의 요청을 끝까지 다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아브라함과 친구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내고, 하나님의 이야기를 좀더 많이 듣고,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되고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며 마침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받을 가장 큰 복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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