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할례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1. 21. 21:50

2026, 1. 23.금요일

창세기 17: 1-27

 

- 아브람에게 주신 약속과 새 이름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게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할례 명령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표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거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표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 사래에게 주신 약속과 새 이름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르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 아브라함의 웃음과 이삭 출생 예고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이르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 할례 시행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표피를 베었으니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더라.

그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그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게 할례를 받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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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이름, 새 믿음 ]

 

하나님은 99세의 아브람과 89세의 사래에게 새 이름을 주시며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할례를 시행합니다.

 

(1-8, 15-16절)

언약을 새롭게 하시고 정체성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흔아홉 살의 아브람에게 나타나

스스로를 '전능한 하나님'이라 밝히시고 언약을 다시 확인하셨습니다.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에서 아브라함(많은 사람의 아버지)으로,

사래(나의 여주인)에서 사라(보편적 의미의 귀부인)로

바뀐 이름은 그들의 존재가 하나님의 약속으로 새로워졌음을 드러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약속을 주시며 이름을 불러 주실 때 

우리는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언약으로 존재가 규정되고 인생이 해석되는 사람입니다.

 

(9-14절)

언약의 표징을 통해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할례는 몸의 일부를 베어 냄으로

옛 본성과 세상과의 연합을 끊고 새로운 신분으로 구별됨을 드러내는 표징이었습니다.

몸에 새기는 고통은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 살겠다는 결단을 상징했습니다.

할례는 외적인 표시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순종을 요구하는 내적인 행위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표징은 성령의 인치심입니다. 

성령의 함께하심은 삶의 선택과 순종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이 믿음이 진실하려면, 때로는 '자신의 뜻을 베어 내는 결단'을 통과해야 합니다.

 

(17-22절)

인간의 불신을 언약의 성취로 바꾸십니다.

아브라함의 웃음은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 표현된 인간의 회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그가 웃는다)으로 지으셔서 불신의 웃음을 예고된 기쁨으로 바꾸십니다.

인간의 회의가 하나님의 성취를 드러내는 배경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안쓰러운 의심과 불신의 웃음도, 하나님은 경탄과 감사의 웃음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23-27절)

약속을 믿은 아브라함은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절)는 말씀에 순종하여 곧바로 할례를 행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보다 말씀을 더 현실로 받아들인 것,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도 눈앞의 막막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며, 

오늘 깨달은 신뢰를 지체하지 말고 삶으로 순종합시다.

 

하나님의 약속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믿음, 지체하지 않고 순종하는 믿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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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약과 마음의 할례 ]
찬송가 67장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단순히 복을 받는 것과 언약을 받는 것의 차이를

이스마엘과 이삭의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의 후손도 생육과 번성의 복을 약속 받았습니다(20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게 해 주겠다는 복의 약속을 받았습니다(16:10). 

이삭의 후손도 하늘의 별과 같이 셀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15:5).

차이는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는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그와 언약을 맺을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에게 대대로 영원히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언약이 무엇입니까? 언약은 단순한 약속이 아닙니다. 

무슨 복을 주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단순히 어떤 일을 이루어 주겠다는 확약이 아니고, 어떤 물건이나 선물을 주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그런 약속은 그 약속이 성취되고 나면 서로 다시 볼 일이 없게 됩니다. 

물론 거래로 인해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거래가 지속되지 않으면 관계는 끝납니다. 

그러나 언약은 지속되는 관계의 확정입니다.

언약은 고대 근동의 종주권 조약이나 중세 유럽의 봉신 계약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브리트’인데, 기본이 되는 내용은 관계에 대한 약속입니다. 

‘언약을 맺다’는 표현이 히브리어로 ‘카라트 브리트’인데 문자적으로 ‘언약을 자르다’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 보듯이 짐승을 쪼개어 놓고 언약을 맺은 데서 유래된 표현입니다. 

언약 관계를 파기하면 언약식에 사용된 짐승처럼 쪼개질 것을 맹세한다는 의미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할 것을 맹세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언약은 근원적인 관계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래서 언약은 일방이 주도하여 맺더라도, 일단 맺고 나면 쌍무적인 관계가 형성됩니다. 

관계에는 권리와 동시에 책임이 따릅니다. 

그래서 영원한 복을 약속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죽기까지 복종하는 완전한 믿음, 예수님의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인간과 근본적인 관계를 맺어 주시는 것이 언약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에 들어가게 해 주시는 것이 언약입니다. 

중요한 것은 복이 아니고 언약입니다. 

언약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고(4-5절), 

심히 번성하게 되며(6절), 많은 왕들을 배출하게 되는(6절)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당연히 따라오는 권리요 복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이니, 그 관계는 영원한 관계입니다. 

그러니 언약의 복은 영원한 복입니다. 

단순한 물질의 복이 아니고, 단회적인 선물의 복이 아니고, 관계의 복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녀들, 믿음의 백성들에게 주시려는 복이 

바로 이 언약의 복, 영원한 관계의 복, 영원한 생명의 복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영원히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영원히 하나님께 속한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영원히 하나님께 속한 존재가 되었다는, 

하나님은 영원히 아브라함을 자기에게 속한 존재로 지키신다는, 

관계의 약속이 확정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언약 속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도록 명하셨습니다. 

모든 남자가 대표로 할례를 받음으로써,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언약 하에 들어감을 확정하였습니다.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 포피를 자름으로써 행해졌습니다. 

기력의 상징이요, 생명의 상징인 생식기의 껍질을 자름으로써, 

그들의 모든 생명과 기력이 하나님께 복속됨을 확약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할례는 주권의 양도 의식이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의롭다, 완전하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한자의 모양으로 보면 양 아래에 복속되는 것이 '의'입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자기 부인'의 믿음이 '의'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본래 할례는 육체(자기)를 신뢰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치는 예식인데, 

그 형식만 강조한 결과 육체의 예법이 됨으로써 

거꾸로 육체를 신뢰하게 만드는 악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할례를 자랑하는 자들을 ‘개’라고, ‘행악자’라고 사정없이 매도해 버립니다(빌 3:2). 

육체의 신뢰할 만한 것들을 다 내려놓고 

오직 성령께 복종함으로 봉사하는 자가 

진짜 할례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빌 3:3).

복을 받는 것보다, 할례를 받는 것보다, 언약을 받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이스마엘은 복도 받았고 할례도 받았지만, 언약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마음의 할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할례가 언약에 필수적입니다. 

마음의 할례는 주권을 하나님께 양도하는 것입니다. 

짐승을 잡아 쪼개어 놓고 언약을 맺듯이, 

기력의 상징이요 생명의 상징인 생식기(의 포피)를 자르며 언약을 맺습니다. 

대대로 그렇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영원히 하나님께 복속되고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받는 언약 관계를 계승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는 자들만이 진정한 언약의 당사자입니다.

우리에게 마음의 할례를 주신 하나님, 

십자가 밑에 엎드려 모든 악의와 욕심이 성령의 생수에 다 잠겨 죽어 버리고 

오직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마음만 살아나게 하는 세례를 베풀어 주시는 

주 예수님과 주 성령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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