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믿음을 위한 전쟁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1. 20. 07:00

2026.1.20. 화요일

창세기 14:1-24

 

- 전쟁 중에 포로로 잡혀가는 롯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진을 쳤더니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르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맛서니라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 롯을 구출하는 아브람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팔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가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처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 멜기세덱의 축복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

고대 근동의 두 연합군의 큰 전쟁이 발발하였다.

그돌라오멜을 위시한 연합군이 거침없이 여러 지역을 무너뜨리고 전쟁 포로와 노획물을 가지고 돌아갔다.

조카 롯도 포로로 잡혀간 사실을 안 아브람은

자신의 사병들과 동맹한 마르레 형제들을 거느리고 야간 기습작전을 펼쳐

연합군을 무찌르고 모든 포로와 물품들과 노획물들을 가지고 돌아온다.

그 때 소돔왕과 살렘왕 멜기세덱이 나와 환영하고 축복한다.

 

아브람의 이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다섯 나라가 대항해도 패배하였는데, 주변 모든 나라들이 무너졌는데,

감히 소수의 병력으로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연합군을 추격할 엄두를 내었을까?

마므레 형제들은 이 무모한 전쟁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을까?

 

갑자기 살렘 왕 멜기세덱이 등장한다. 

그것도 승전한 왕의 귀환을 환영하듯 왕의 골짜기에서 아브람 일행을 맞이한다.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소개되는 그의 나라 살렘은 어디인가?

제사장답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타난다.

성찬에 나용되는 떡과 포도주를 떠올린다. 

그래서 신약에서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찬를 따르는 대제사장으로 소개하는 것인가?

유대교 전승에는 멜기세덱이 셈이라는 전승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야살의 책에는 아브람이 어린 시절 셈의 집에서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멜기세덱이 이 놀라운 전쟁의 승리 소식을 듣고 

떡과 포도주를 준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고

아브람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기도한다.

 

아브람의 전쟁 승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노획물의 십의 일을 바친다.

십일조의 근원이 된 이 행동은

전쟁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했음을 고백하는 겸손한 믿음의 모습이다. 

아브람의 믿음은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나온 믿음이다.

나의 형편과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의 행동이었다. 

 

소돔왕에게 모든 것을 돌려 준다.

아브람이 이 무모한 전쟁을 한 목적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조카 롯의 구출에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주여

생사화복이, 성공과 실패가, 승리와 패배가 다 주의 손에 달려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놀라운 전쟁의 결과는 숫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봅니다.

삶의 모든 문제들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고백합니다.

 

그 일에 아브람은 멋지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주여 저도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잘 훈련되어 때가 되며 필요한 곳에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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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를 안겨 주신 하나님 ]

 

가나안에 전쟁이 일어나 롯이 포로로 잡히자, 아브람은 그를 구해 큰 승리를 거둡니다.

멜기세덱이 축복 속에서 아브람은 그 승리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움이었음을 깨닫습니다.

 

(13-16절)

이웃을 위한 헌신에 승리를 더하십니다.

롯이 포로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주저하지 않고 자기 사병을 이끌고 추격에 나섭니다.

자신을 떠난 조카였지만, 혈육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아브람의 헌신을 도우셔서, 적진을 기습하여 롯과 재물을 모두 되찾게 하십니다.

이웃을 위한 수고는 손해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입니다.

 

(1-12절)

번영의 길에는 위험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롯은 풍요로움을 좇아 소돔을 택했지만, 그 선택은 전쟁과 포로라는 재앙으로 이어졌습니다.

탐욕은 처음에 아름다운 얼굴로 다가오지만, 그 끝은 허망합니다.

풍요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익이 곧 복"이라 속삭이지만,

믿음의 사람은 "의가 곧 평안"임을 압니다(사 32:17).

 

(17-20절)

참된 승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완성됩니다.

승리한 아브람 앞에 두 왕이 마주 섰습니다.

세상의 왕은 그에게 명예를 주려 했고,

하늘의 제사장 멜기세덱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기셨음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영광으로 충만하시지만, 우리를 도우심으로 스스로 영광을 취하십니다(시 50:15).

그러니 승리의 영광에 취하기보다,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21-24절)

하나님 백성의 명예는 세상의 이익보다 값집니다.

소돔왕은 아브람에게 전리품을 취하라 제안했지만,

그는 하나님께 맹세하며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이 전쟁이 이익을 위한 약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위한 싸움임을 세상 앞에 증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아브람이 전리품을 취했다면,

그가 쌓은 신앙의 명예는 한순간에 세속의 이익으로 퇴색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은 재물을 얻기 위해 믿음을 팔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욕심을 내려놓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명예롭게 살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세상의 이익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의 명예를 더 귀히 여기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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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몽둥이 ]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1-12) 

시날과 엘라살, 엘람, 고임이 위치한 곳은 유브라데강 유역으로서 후에 바벨론과 앗수르가 지배했던 곳입니다. 

일찍이 이곳을 차지했던 자는 함 족속인 구스의 아들 니므롯입니다(10:10,11절). 

니므롯의 후손들답게 이 지역의 네 왕들은 용사였던 것 같습니다. 

가나안 땅의 다섯 왕들을 위시하여, 블레셋 지역의 거인 족속인 르바(르바임) 족속(5절), 

세일산의 호전적인 호리 족속(6절)까지 다 쳐부수는 용맹을 떨칩니다.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상대가 안 되는데, 왜 가나안의 다섯 왕들이 배반을 하고 마주 전쟁을 하게 되었을까요? 

물론 오판을 해서 그렇게 된 걸 겁니다. 

그런데 12절 말씀은 이 전쟁에 하나님께서 간접적으로 개입하고 계심을 귀띔합니다.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전쟁 기사의 결론이 12절입니다. 

이 사건에서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구절입니다. 

전쟁을 시작한 왕은 다섯 왕인데(8절), 

중간 과정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왕이 달아나고 있는 장면만 비춰줍니다(10절). 

그리고 전쟁 기사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 모든 왕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던 아브람의 조카 롯이 사로잡혀간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왕들의 전쟁일 뿐인데, 거기에 아브람의 조카 롯이 조명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롯이 부각되고 이어서 아브람이 개입될 것입니다. 

아브람의 개입은 곧 하나님이 이 전쟁에 개입하고 계심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통해 롯을 구출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인근 지역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은 전혀 해를 입지 않고 롯만 잡혀 간 것, 

그것도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것(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아브람이 롯을 구출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노리십니다.

첫째는 롯을 소돔과 고모라의 패역에서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에 빠져 들어간 것 때문에, 그것을 경고하기 위해서 이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용사 니므롯의 후손들이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몽둥이입니다. 

[이사야 10:5]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롯이 이 전쟁을 겪지 못했다면, 그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인의 삶을 계속 유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전쟁 이후에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떠났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이 전쟁이 

그가 소돔과 고모라의 음란한 문화에 휩쓸리지 않게 경고하는 역할은 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 2:7-8]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13-24) 

둘째, 하나님은 전쟁을 통해서 아브람의 믿음을 업그레이드하고 계십니다. 

용사 니므롯의 후예들을, 아브라함의 믿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몽둥이로 사용하십니다. 

13-24절의 이야기가 바로 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의를 굳게 잡은 하나님의 자녀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이 전쟁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가 얼마나 강한 자인지를 

아브람이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고백하게 하십니다.

애굽의 실패를 겪은 후, 아브람은 점점 믿음의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그의 세력이 커졌고 그의 재물이 많아졌지만, 

그것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이 그에게 일어났습니다. 

롯에게 물이 넉넉한 지역을 양보하는 모습은, 

그의 믿음이 이전(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갔던 시절(12:10))과 달라졌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이 놀라울 만큼 자랐음을 

우리에게, 온 세상에 자랑하고 확인시켜 주십니다.

다섯 왕을 쳐부순 네 왕의 군사력이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그런데 집에서 기른 사병들을 데리고 그들의 뒤를 쫓아갈 생각을 아브람이 하였습니다. 

당시 왕이라는 것이 중세 시대 봉건 영주 정도에 불과한 세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아브람이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아모리 족속의 도움을 받았다 할지라도, 

이는 목숨을 건 만용이었습니다.

롯은 사랑스러운 조카가 아닙니다. 괘씸한 조카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내도 바로의 위협 앞에서 포기하고 말았던 아브람이, 

의리 없는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아브람만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가신들도 함께 목숨을 겁니다.

물론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어찌 이런 무모한 짓을 꿈이나 꿀 수 있었겠습니까? 

애굽에서의 아브라함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믿음’입니다.

아브람과 함께한 318명은 아브람의 집에서 태어난 가신들입니다.

'길리고'라는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태어난'입니다.

고용된 자들이 아니고, 아브람의 집에서 태어나 아브람의 삶을 함께 겪었으며,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자라난 자들입니다.

아브람의 믿음을 보고 만지면서 전수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아브람의 뒤를 따라 나서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14절의 '훈련된'의 의미는 단순히 전투 훈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훈련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훈련된’은 히브리어 ‘하나크’에서 유래한 형용사입니다.

‘하나크’는 ‘훈련하다, 바치다, 봉헌하다’의 뜻을 가집니다.

무엇인가에 온전히 소속되도록 만드는 행위를 뜻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에 복속되도록 훈련된’의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가

14절의 ‘훈련된’입니다.

믿음의 전사들이었기에 이들은 강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내었습니다. 

아브람이 세운 놀라운 전과를 보면서 

가나안의 왕들은 그것이 아브람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롯과 빼앗겼던 재물을 되찾아오는 아브람을 영접한 왕들 중에 대표가 

살렘 왕이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아브람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품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대표 살렘 왕이 아브람을 축복하는 축사가 이를 분명히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은 가장 먼저 아브람 자신이 자신의 높음과 강함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너무나 분명히 인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아브람을 높이십니다. 

아브람을 아무리 높여도, 아브람이 결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침으로써, 전리품을 조금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부강이, 성도의 부강이, 교회의 부흥이, 환경이나 사람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믿음을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일으키신 또 하나의 목적이 이 고백을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이 확정되었습니다.

겁쟁이 아브라함이 너무나 달라진 것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믿음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에 못지 않은 비겁자이지만, 큰 믿음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몽둥이를 들어서라도 그렇게 해 주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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