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시련 앞에서 나의 태도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1. 18. 06:33

2026.1.18. 주일

창세기 12장 10-20

 

- 위기를 자초하는 아브람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들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 위기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게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

가뭄과 기근에 살길을 찾아 애굽으로 내려가는 일은 잘못이 아니다.

이삭의 경우와 달리 하나님은 가타부타 말씀하지 않으셨다.

기근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가축들과 식속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의 결정을 탓할 수 없다.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아브람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바로에게 받은 선물들은 다 결혼 지참금과 같은 것들이다.

자신의 실수를 생각하고 후회하고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을까?

자신의 예측대로 일이 벌어지자 자신의 생명을 구했다고 안심했을까?

여호와께 아내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을까?

사래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애굽에서 쫓겨날 때 아브람은 사래에게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과했을까? 아내를 지키지 못한 남편으로서 자신을 자책했을까?

아니면 안도의 숨을 쉬고 빨리 애굽을 벗어날려고 서둘렀을까?

바로의 집에 내리는 재앙을 보면서 여호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자신의 행동들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여호와를 더 이해하고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갔을까?

 

일촉측발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왜 하나님은 이 일이 여기까지 진행되도록 방관하고 계시는 것인가? 기다리시는 것인가?

조금 더 일찍 개입하셔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면 얼마나 좋은가?

아브람에게 더 일찍 말씀하여 주시고 피할 길을 주시면 더 좋았을 것 아닌가?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했을까?

 

사건의 자초지종을 아는 우리는 아브람을 시험하시고 연단시키시는 것으로 알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 상황 속에서 있을 때 과연 나는 어떤 태도와 결정과 믿음을 지켜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사래를 누이라 하여 위기를 면하고자 함은 지극히 인간적인 꼼수이다.

어떤 상황에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과연 나에게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취하는 이런 얄팎한 삶의 모습들은 없었는가?

나 또한 위기 상황을 벗어나려고

거짓말, 핑게, 책임 전가, 인간적인 꼼수와 편법을 사용했음을 인정하고

부끄러운 지난 날들의 실수를 고백한다.  

 

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데 아브람이 취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적인 하나님의 개입하심과 일하심이었다.

바로 앞에 선 아브람은 얼마나 창피했겠는가,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을 것이다.

면목이 없어서 사래를 똑바로 처다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식속들에게도 무슨 말을 할 권위가 있었겠는가?

 

성령 하나님

위기 앞에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했던 순교자들을 떠올려 봅니다.

잠시 잠깐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과 잔꾀를 부리는 어리석음이 없게 도와주소서.

자신의 안전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게 도와주소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와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떤 위기가 닥쳐온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정직하게 바르게 믿음의 길을 올 곧게 걸어가는 삶 살아가게 하소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의지하며 믿고 따르며 살게 하소서.

하나님만이 나의 보호자 되시고 인도자 되심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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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를 기회로 ]

 

가나안에 기근이 들자 아브람은 양식을 얻기 위해 애굽로 갑니다.

아브람의 잘못된 결정으르 사래를 빼앗기지만,

하나님이 다시 사래를 아브람에게 돌려보내십니다.

 

(10절)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에게도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제단을 쌓고 주의 이름을 불렀던 아브람이었지만,

기근은 그를 피해 가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길이 곧 평탄한 길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환난을 통해 인내를 빚어내시고, 인내를 통해 소망을 세우십니다(롬 5:3-4) .

믿음의 사람에게 시련은 연단의 불길 속에서 소망을 단단히 붙잡으라는 부르심입니다.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12)는 권고를 

우리 현실에 적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7, 20절)

인간의 연약함으로 자초한 위기마저 구원의 기회로 바꾸십니다.

아브람의 거짓말로 사래가 바로의 궁으로 들어가고,

상황은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심으로 진실이 드러났고,

아브람은 사래와 재물까지 돌려받아 그 땅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실수조차 주님의 손에 담기면 새로운 길이 됩니다(창 50:20).

나의 허물과 지난날의 상처도 주께서 역전의 도구로 사용하심을 믿고 있습니까?

 

(11-16절)

두려움 속에서 꾀한 인간적 방책이 결국 더 큰 위기를 불러옵니다.

아브람은 사래를 누이라 속이며 위기를 모면하려 했지만, 그 계책 때문에 아내를 잃을 뻔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순간을 모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거짓은 결국  더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하나님만이 피난처이며 힘이신 것을 우리는 더욱 깊이 배워 가야 합니다(시 46:1-3).

내게 닥친 불안 앞에서 얄팍한 꾀를 선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며 진실하게 문제를 직면하고 있습니까?

 

(18-19절)

신자의 잘못된 행실은 세상으로부터 책망을 받습니다.

바로는 아브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세 번이나 따져 묻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답지 못한 행동이 도리어 세상 사람의 탄식을 불러낸 것입니다.

빛과 소금으로 부름받은 성도는 그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마 5:16).

혹 내 삶의 모습은 "그리스도인이 어찌 저럴 수가 있는가?"라는 탄식을 낳지 않습니까?

 

위기를 기회로 바꾸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시련 앞에서 더욱 담대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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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람이 받은 복 ]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아브람을 부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크게 두 가지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이 직접 받을 복이 한 가지이고(12:2), 

다른 한 가지는 아브람으로 인해 그의 주위 사람이 받을 복(12:3)입니다. 

두 번째 복의 약속에는 복의 약속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저주의 약속이 붙어 있습니다.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두 가지 복이 다른 듯하지만, 사실은 같은 복입니다. 

큰 민족을 이룬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만 많은 민족을 뜻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민족, 크게 여김을 받는 민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름을 창대하게 하는 복과 연관되어 있는 복입니다.

그런데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하게 되는 복이 

구체적으로 어떤 복인지, 그것이 어떻게 복이 되는지를 

두 번째 복의 약속이 가르쳐 줍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복이 어떤 복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약속하신 복은, 

아브람이 큰 민족을 이루고, 또 아브람의 이름이 창대하게 되는 방법으로서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심에 있어서 

결과 못지않게 과정 곧 방법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그 방법과 과정이 결과로서 얻어진 복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결과물 곧 천국과 영생을 어떻게 얻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의 길을 바로 따라가지 않으면, 

아무리 천국과 영생을 얻어도 그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복은 참된 행복의 복, 풍성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복을 얻는 과정에 대한 약속을 두 번째 복의 약속으로 주셔서, 

아브람이 참으로 행복한 복덩이가 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물론 자신이 아주 강대하고 부요한 자가 됨으로써 

아브람은 창대한 이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강대함은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최소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불안한 복, 불행(?)한 복을 아브람에게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누리지 못하는 복, 이웃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받지 못하는 복은 참된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하게 되는 가운데, 

모든 이웃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계십니다. 

아브람의 신실하지 못함에 관계없이 하나님은 자기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복을 약속하신 것은, 

아브람의 믿음이 크고 온전함을 확인한 다음에 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가 될성부른 떡잎임을 확인한 다음에 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작은 아브람을 불러서 큰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렇게 무조건적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일지라도 

믿음으로 시작하기만 하면 끝까지 책임지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편애하십니다. 

기근이 조금 들었다고 믿음 없이 애굽으로 쪼르르 내려간 아브람, 

거기에다 사래 때문에 해꼬지 당할 것이 겁이 나서 거짓말까지 하는 아브람을 야단치지 않으십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사래를 데려간 애굽의 바로만 애꿎게 혼을 내십니다. 

그 옆에 있다가 날벼락을 만난 바로 집의 사람들은 정말 억울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좀 불공평하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바로는 강대한 나라의 왕이면서도 감히 이런 하나님께 반발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시기에 그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하실 권한이 있으십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된 것이 복입니다. 

아브람이 받은 복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람의 후손으로 받게 될 복이 바로 이 복입니다.

믿음이 없어 복을 못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기 때문에 복을 못 받습니다

아브람은 거절하지 않고 복을 받으러 일단 나갔기에 풍성한 생명의 복을 받았습니다. 

창대하게 되는 가운데 모든 사람에게 박수를 받는 복이 아브람이 받은 복이었습니다.

이 복은 믿음이 연약한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허락된 복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없는 나를 믿음 있게 만들어 복을 넘치도록 주는 분이십니다.

지금도 나에게 복을 더 주시기 위해 믿음의 훈련을 시키시는 아버지 하나님, 

저를 복된 자녀로 세우기로 작정하셨으니, 반드시 복의 사람이 될 것을 믿습니다. 

아브람에게 베푸신 인애를 저와 우리 가족, 교회에도 베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브람 옆에만 있어도 복을 받게 하셨으니 

아브람보다 더 나은 믿음의 선봉장이신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가, 우리 교회가, 반드시 복을 받게 될 줄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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