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9. 월요일
창세기 13:1-18
- 가나안으로 돌아온 아브람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 아브람과 롯의 분가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소 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 재확인되는 약속의 땅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리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샐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르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
이 본문의 설교를 들을 때는 늘 아브람의 양보와 롯의 이기적인 선택을 생각한다.
그러나 롯이 선택한 땅은 눈에는 여호와 동산같고 애굽의 땅과 같이 좋아 보이는 곳이었지만,
롯이 거주한 소돔성 사람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며 큰 죄인들이었다고 기록한다.
아브람이 남은 땅 가나안은 산악지대요 살아가기에는 넉넉하지 못한 땅이었다.
아브람은 선택권을 롯에게 준 것에 실망했을까?
얄미운 롯, 지금까지 키워 주고 돌봐준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고 미워했을까?
양심있는 사람이었다면 삼촌이 자신에게 선택권을 주어도 삼촌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금은 실망하고 낙심한 아브람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가나안 약속의 땅을 재확인시켜 주신다.
서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시고 보이는 땅을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자자손손 그 땅을 영원히 주시겠다고 그리고 자손들을 띠끌같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아브람은 헤브론에 가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
감사의 고백이었을까? 믿음의 눈으로 장래를 바라보았을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의 표시였을까?
아마도 애굽에서 실수를 경험한 아브람이 성장한 믿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아브람은 애굽에서 나와 벧엘까지 올라간다.
가나안에 들어와 처음으로 단을 쌓았던 곳이다.
그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
부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애굽에서의 실수와 잘못을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회개의 고백을 담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야곱도 디나로 인하여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을 살해했을 때 가족들을 데리고 벧엘로 올라갔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가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돌단을 세웠던 곳이다.
아버지 아브람이나 아들 야곱이나 삶의 위기 앞에서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며 신앙을 회복하는 모습이다.
인생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첫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을 처음 인격적으로 만났던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브람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양보하는 신앙의 회복을 목격한다.
삶의 주도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깨달은 아브람의 모습이다.
실수와 실패가 패배로만 남아 있게 해서는 안 된다.
실수를 거울삼아 다시는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다.
실수를 통해 앞으로의 삶에 교훈과 깨달음을 얻어야만
실수와 실패의 그 쓰라림과 아픔이 헛되지 않고 유익이 될 수 있다.
아브람도 자신의 실수와 허물을 바라보면서 곱씹고 또 곱씹어 보았을 것이다.
위기의 극복은 인간의 잔꾀가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역사하심에 있음을 체험하였다.
삶의 다양한 문제들 앞에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따라가리라.
성령 하나님
유불리를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양보하는 미덕을 가지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나의 손해를 알면서도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당장의 이익과 편리와 안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믿고 신뢰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이 나의 주 되심과 구원자이심을 믿고 나의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내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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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 너머로 빛나는 믿음 ]
애굽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후 하나님을 향한 아브람의 믿음이 한층 성장합니다.
아브람은 조카 롯과 갈등이 생기자 롯에게 먼저 땅을 양보합니다.
(1-4절)
하나님은 실패를 덮으시고 새 출발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아브람은 애굽에서 거짓말 때문에 수치를 당했지만,
다시 머물렀던 제단 앞으로 돌아와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넘어짐을 끝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우리를 다시 불러 첫 자리에서 새로이 시작하게 하십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질문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며 회복되었듯이(요 21:15-17),
주님은 우리가 실패한 자리에도 은총의 장을 열어 주십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까?
(14-18절)
하나님은 절망의 순간에 소망을 일깨우시는 위로자이십니다.
롯과 헤어진 뒤 공허와 허탈감에 잠긴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눈을 들어 땅을 바라보게 하시며
처음 주셨던 약속을 다시 들려주십니다.
땅과 후손을 주시겠다는 말씀은
잊힌 꿈이 아니라 여전히 유효한 언약이었습니다(렘 29:11).
하나님의 약속이 변치 않음을 믿는 사람은 끝까지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5-13절)
실패의 경험이 더 큰 그릇을 만듭니다.
양 떼와 소 떼가 많아져 함께 거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브람은 조카 롯과의 화평을 택했습니다.
그는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는 말로 선택권을 양보합니다.
이는 애굽에서의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 덕이었습니다.
인간의 꾀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잠 16:9).
나는 실패를 통해 하나님을 배우고 있습니까?
(10, 13절)
영적 분별을 잃은 선택은 결국 파멸을 불러옵니다.
롯은 눈에 보기 좋은 요단 들을 택헸으나, 그 땅은 죄악으로 가득한 소돔의 경계였습니다.
풍요로움은 눈을 현혹시키지만,
믿음은 눈앞의 유익보다 보이지 않는 영원을 바라보게 합니다(고후 4:18).
눈은 마음의 창입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내가 걸어갈 길을 결정합니다.
오늘 내가 내리는 결정은
단지 '유익을 좇는 눈'의 선택입니까, '믿음으로 바라보는 눈'의 선택입니까?
눈앞의 유익이 아니라 영원한 약속을 바라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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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예방 주사 ]
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계속 남방으로 옮겨가게 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서면서 '어,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가나안 중부의 세겜이라는 동네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곳에 가나안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12:6).
아브람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을 재확인해 주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
지금 당장 땅을 주신다는 약속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이 약속에 힘을 얻어, 가나안 땅에 머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아래의 벧엘 근처로 이동하여,
벧엘과 아이 두 마을의 사이에서 눈치껏 자리를 잡으려 했습니다.
한데 그것이 만만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원주민들이 적은 곳으로 피해서 가다 보니 점점 남방으로 가게 되었고,
기근이 심해지면서 결국 애굽에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애굽에 내려가서 창피를 톡톡히 당한 아브람이 다시 원위치했습니다.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러 전과 똑같이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런데 이전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이전에는 슬금슬금 남방으로 옮겨갔었는데(12:9절), 이제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애굽에서 겪은 일로 말미암아,
아브람은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자신은 가나안 땅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번의 문제는 지난번과 달리 오히려 너무 풍족한 것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원인은, 기근을 당해 내려간 아브람이 되돌아올 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해져 돌아온 것에 있었습니다.
풍부한 가축과 종자로 인해 롯과 아브라함이 거주할 공간이 비좁게 되었습니다.
조카 롯에게는 기근 중에도 풍부해진 재산이 기분 좋은 일일지 모르겠지만,
아브람에게는 참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아내를 팔아서 얻은 재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볼 때마다 낯이 뜨거워지는 재물이었습니다.
아내 사래의 눈총 때문에 언제나 뒤통수가 따가웠을 아브람은
부유하게 된 것 때문에 결코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부끄러운 재물은,
아브람이 물질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하는 장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람은 부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롯에게 경제적으로 유리한 지역을 기꺼이 양보합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은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서 약속을 주십니다.
보이는 땅을 그와 자손에게 영원히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자손들이 영원히 사는 땅입니다.
단순히 지리적인 가나안 땅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 거지요.
재물이 우상이 된 이 세상에서
아브람은 오직 하나님이 나의 기업임을 고백하는 삶을 살기로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마므레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또다시 제단을 쌓는 것으로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함의 자손 중에서도 가장 타락한 자들이 사는 가나안 땅에
계속 머물게 만드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땅과 물질의 복을 주실 것이라면,
당장에 가나안 족속을 쳐부수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해 주셨을 것입니다.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은 먼 훗날의 일로 약속하시면서도
정작 지금 그곳에 머물게 하시는 이유는,
죄악된 세상을 이겨내는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애굽을 더이상 부러워하지 않고,
맘몬 우상에 물든 세상 풍조를 확실히 이기는 면역력을 길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가나안 땅을 참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사래의 일로 아브람은 재물에 대한 예방 주사를 맞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성도의 훈련장입니다.
세상에서의 실패는, 실수는,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맞게 하시는 예방 주사입니다.
이 세상은 성도가 그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 입원한 종합병원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 앞으로 누릴 모든 것이
우리의 영원한 남편이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대속으로 얻어진 것임을 확인한 성도는
그 모든 영광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 권세로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팔아 얻은 재물을 자랑할 수 없었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나라를 소유할 성도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예방주사를 맞히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항상 죄인임을 되새기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해집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다 상속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에 탄복할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1:22-24]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주님, 작은 수치를 통하여 큰 부끄러움을 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봅니다.
작은 실패를 통해 큰 것에서 성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안배에 감사드립니다.
일시적인 낮아짐을 통해 영원히 높아지는 복을 누리게 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훈련에서 꾸중을 많이 듣는 것이 실전에서 칭찬을 받는 밑거름이 될 것을 믿습니다.
십자가를 붙드는 자기 부인이 영원한 생명이 될 것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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