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21. 수요일
창세기 15:1-21
- 하나님의 약속과 아브람의 믿음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디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땅에 대한 약속과 언약 의식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된 숫양과
산비들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 자손의 미래와 언약 체결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하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라.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햇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가지 네 자손에게 주리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
엄청난 전쟁을 치른 후에 아브람은 두려워했다.
승리를 하였지만 다시 적들이 자신을 공격해 올 것이라는 두려움이었을까?
여호와는 방패가 되어 주시겠다고 한다.
땅과 자식이 없이 늙어가는 나그네 인생이 두려움으로 찾아왔을까?
여호와께서 상급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시자
자신의 자식이 없음에 상급이 무슨 소용이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자 하늘의 별들을 보이시고 햇불 언약으로 약속하신다.
땅과 후손에 대한 분명한 약속을 해 주신다.
아브람이 이 모든 언약을 여호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겨 주셨다.
바울의 말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지난 날들의 경험이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아브람의 신앙성장일기를 읽고 있는 기분이다.
작은 것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점점 믿음도 더 큰 믿음이 필요해 진다.
아브람이 기대한 땅은 어느 정도 였을까? 그의 후손의 숫자는 얼마나 되었을까?
주변 온 땅의 경계와 족속의 이름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여호와께서는 말씀만 하시지 않고 당대 언약의 방법으로 언약의 확실함을 보이셨다.
그리고 그 언약을 쌍방이 지키는것이 아니라 홀로 이루시고 성취하시겠겟다고 약속하신다.
주여
나에게도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던 믿음을 주소서.
당장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막막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구원의 하나님, 내 삶의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살게 하소서.
오늘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하나님이 나의 상급이심을 믿고 안심하고 마음 편하게 기쁘고 당당하게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 되심을, 구원자 되심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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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과 햇불 언약 ]
아브람은 후손과 땅이 없는 현실 앞에서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별빛 같은 약속과 햇불의 언약으로 그의 믿음을 굳게 세웁니다.
(1절)
하나님 자신을 상급으로 주십니다.
세상은 손에 쥔 성취를 상급이라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나의 상급임을 압니다.
그분이 함게하신다면 부족함도 실패도 우리를 위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로 우리의 상급이십니다.
(2-6절)
인간의 한계를 넘어 약속을 이루십니다.
후사가 없던 아브람은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 하지만,
하나님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며 하늘의 별을 보여 주십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가능성을 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계산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셔습니다.
우리도 상식과 합리라는 이름으로 불가능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한하는
'불의'를 행하지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7-8,12-16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아직 자식도 없는 아브람은 자기 후손이 어떻게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을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후손이 400년이라는 고난의 시간을 거친 후에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수행하면서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속도와 방식은 우리의 계산과 다릅니다.
신실하신 그분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9-11, 17절)
홀로 언약을 이루십니다.
아브람이 쪼개어 놓은 짐승 사이를,
하나님이 홀로 햇불과 연기 나는 화로의 모습으로 지나가십니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언약을 성취하신다는 장엄한 선언입니다.
이는 훗날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홀로 구원의 언약을 이루신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8-21절)
아브람의 후손에게 주실 땅의 정확한 경계와 지명을 말슴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막연하게 약속하시는 분이 아니라,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이루시는 분임을 보여 줍니다.
막막한 우리의 앞길도 하나님은 치밀하게 계획하시고 차질 없이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햇불처럼 다가오셔서 약속의 신실함을 다시 일깨워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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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을 만들어가시는 하나님 ]
찬송가 374장 나의 믿음 약할 때
믿음으로 아브람은 너무 큰 사고를 쳤습니다.
승리하여 돌아가는 네 왕들의 뒤를 기습하여, 포로와 전리품을 되찾아 왔습니다.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나중에 자기가 한 일을 돌아보니, 뒷감당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확정되었다고, 아무런 두려움이나 의심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큰 역사를 이루었다고 해서, 그 이후로도 항상 그런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믿음의 거장들도 때로 믿음이 약해지기도 하고, 의심의 어둠 속을 헤매기도 합니다.
분명한 믿음의 행위를 하였고,
많은 왕들 앞에서 하나님만이 나의 부와 강의 원천임을 고백한 아브람이지만
일시적으로 믿음이 약해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아브람,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하나님의 이 위로로도 아브람의 믿음이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을 두렵게 하는 현실의 요소들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네 왕들이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르고, 주위의 부족들도 아브라함을 경계의 눈초리로 보고 있습니다.
‘아브람, 경계해야 하겠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더니, 정말 대단한 힘을 가졌어.
저 힘으로 우리를 치면, 꼼짝없이 당할 수도 있겠어.’
이런 견제를 받게 된 가운데,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시겠다던 약속은 성취될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아들 하나도 주시지 않으셨던 겁니다.
아브람이 되묻습니다.
“내 집의 종으로 내 상속자를 삼아 주실 계획이십니까?”
하나님은 단호히 아니라고 하십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다.”
‘네 몸에서 날 자’는 단수입니다.
아브라함의 몸에서 난 자들 중 단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가까이는 이삭을 가리키는 말이고, 멀리로는 먼 훗날의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그를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단호한 말씀을 듣고 아브람의 믿음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아브람의 마음에 분명하게 되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눈으로, 몸으로 경험하지 않고도 믿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을, 말씀을 믿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십니다(요 20:29절).
그 믿음이 진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번 믿었다고 해서 믿음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고, 약해지거나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서 이 믿음을 계속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능력이나 기적으로가 아니라, 맹세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화시키십니다.
언약 체결식을 거행하십니다.
위엄과 권능으로 압도하시지 않습니다.
전능자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참으로 번거롭고 구차하게도, 아브람에게 피의 맹세를 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맹세를 아들의 목숨으로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하시고는 오래 기다리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애굽으로 내려갈 것과
사백년 후에 애굽에서 그들을 불러내어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기왕에 땅을 주실 것 같으면, 아브라함 당대에 주시면 더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겠다고,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야라쉬’하게 하려고=빼앗아 차지하게 하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내었다고,
말씀하셔놓고는 정작은 한 뼘의 땅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집 지을 땅도 없이 평생 장막에 살았습니다(히 11:9).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괜히 일찍 불러서는 병 주고 약 주며 힘들게 만드셨습니다.
기다림 가운데서 약속에 대한 믿음,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강화되길 기대하시는 거지요.
이삭을 주시는 것도 그냥 때 되어서 주시면 될 일인데,
20년이나 전에 약속을 하시고, 중간중간에 말로만 확인시켜 가면서 최대한(?) 천천히 주십니다.
보지 않고 믿는 믿음, 말씀만 듣고 믿는 믿음 길러주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이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 우리에게 용기와 소망을 줍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벌어지는 일, 대상이 존재하는 사건입니다.
더구나 이 쌍방 사건인, 믿음 사건의 주역이 언제나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너무나 우리를 안심시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믿는다’를 언제나 ‘아만’ 동사의 사역형으로 사용합니다.
아만 동사는 ‘견고하다. 확고하다. 확고하게 세우다’의 뜻을 가집니다.
하나님 안에 자신을 맡겨서 견고하게 세운다는 뜻입니다.
6절에 ‘여호와를 믿으니’의 ‘여호와’ 앞에 영어의 ‘in’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전치사 ‘브’가 사용되었습니다.
사역동사를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 시부터 시켜놓은 동작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모르게 되어지는 체질적인 동작의 상태’를 표현하는 동사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한국기독일보 신학 이단 칼럼 연재 기사, "연재(4) 십일조에 관한 원어적 의미", 2013-06-08 00:24:02).
이런 이해에 따르면 믿음 사건은 하나님이 믿게 만드셔서, 내가 믿는 사건입니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낳다'라는 동사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은 가인의 계보에 대해서는 ‘낳다’ 동사를 일반형<히브리어 동사 칼형>으로 사용하면서,
믿음의 계보(셈의 계보)에 대해서는 '낳다' 동사를 사역형으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낳게 만드셔서 낳았다는 의미입니다.
주님,
약속을 믿는 믿음, 보지 않고 믿는 믿음 길러주시기 위해 오래 기다리게 하시는 뜻 알겠습니다.
잘 기다리는 가운데 믿음이 단단해지게 하옵소서.
보고 믿는 믿음이 아닌, 듣고 믿는 믿음이 단단해지게 만드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단단해지게 만들기로 작정하셨으니 그렇게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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