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Royal spiritual family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1. 16. 07:09

2026. 1.16. 금요일

창세기 11:10-30

 

- 셈에서 아브람까지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사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베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세를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데라는 칠십 세에 아르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 데라의 아들 아브람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

셈의 족보를 보면 점점 수명이 짧아진다.

셈은 몇대 손까지 보았을까? 계산해보지 않았지만 아브람도 보지 않았을까 싶다.

많은 조상들 중에 아브람만 자식이 없었다고 기록한다.

저자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믿음의 조상들의 계보를 보면서 L 선생이 기도하면서 늘 언급하는 단어가 생각난다.

Royal spiritual family

그저 그런 믿음이 아니라 단단하고 강한 믿음, 온전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부끄러운 믿음이 아니라 자랑스런 믿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믿음의 삶을 살아내는 가족들, 후손들 되기를 기도한다.

오늘 아침 나로부터 시작되는 믿음의 계보가 셈의 계보처럼 되기를 기도한다.

 

성령 하나님

나의 믿음이 자자손손 이어지게 하옵소서.

나와 우리 가족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한 몫을 감당하게 하소서.

내가 그런 훌륭한 믿음의 시작을 하게 연단시켜 주시고 유산으로 물려주게 하옵소서. 

 

--------------------------------

[ 약속을 여는 부르심 ]

 

셈에서 아브람까지 이어지는 계보는 평범한 이름들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불가능한 자리에서 새 미래를 여시는 부르심을 드러냅니다.

 

(10절)

심판 속에서도 회복의 길을 준비하십니다.

홍수는 인류의 끝이 아니라 새 출발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셈의 계보를 다시 잇게 하심은,

죄로 무너진 인류 속에서도 구원의 통로를 이어 가시려는 하나님 의지를 드러냅니다.

심판은 멸망으로 닫힌 문이 아니라 회복으로 이어지는 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제거하고 의를 심기 위해 일시적인 아픔을 주십니다.

그러나 이는 도로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시어( 호 6:1) 영원한 기쁨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포석입니다.

우리 삶에도 뜻밖의 막힘과 단절이 찾아오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새로운 이야기의 서막으로 삼으십니다.

 

(11-26절)

평범한 이름들을 통해 비범한 일을 이루십니다.

셈의 자손들의 이야기는 반복적이고 단조롭습니다.

특별한 업적이나 눈부신 문명을 보이지 않고, '낳고 지내며 낳았다'는 기록만 이어집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단조로운 계보가 아브람을 낳고, 다윗을 낳고, 결국 메시아로 이어집니다(참조 창 3:15).

우리의 평범한 삶의 흐름이 하나님 안에서 구원의 강줄기가 됩니다.

오늘 우리의 일상은 주님의 역사 속에서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일상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구원의 서사가 됩니다.

 

(27-28절)

우리의 과거를 문제 삼지 않으시고 새로운 약속으로 부르십니다.

데라의 가문은 우상의 도시 우르에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수 24:2)

아브람 또한 그 문화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과거를 추궁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약속의 길로 불러내셨습니다(행 7:2-3).

부르심은 자격에 걸맞은 보상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오늘 우리도 과거의 무게에 눌려 머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사히 응답하여 약속의 내일을 걸어가야 합니다.

 

( 29-30절)

하나님의 역사는 불가능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사래의 불임 앞에서 이야기가 멈추는 듯 보였으나, 그 멈춤은 하나님의 시작이었습니다.

인간의 가능성이 닫히는 순간, 하나님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믿음은 지금의 고난을 넘어서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오늘 나의 불모지는 어디입니까?

그 자리가 하나님이 기적을 삼으실 밭입니다.

 

새 길을 여시는 주님을 믿고, 불가능의 자리에서 피어날 약속을 바라보게 하소서.

 

===========

[ 기다리는 믿음 훈련 ]
찬송가 392장 주여 어린 사슴이

홍수 후에 수명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느끼는 가운데,

믿음의 조상들은 서둘러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던 것 같습니다.

홍수 이전 시대, 수명이 넉넉했을 때와는 달리

거의 모두가 40이 되기 전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족보에 나오는 아들을 반드시 첫아들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홍수 후에 자녀를 낳는 시기가 평균적으로 빨라졌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딸을 첫 자녀로 낳은 자들도 있었을 텐데,

40이 되기 전에 다들 아들을 보았으니

그만큼 자녀 낳는 일에 열심을 다했다는 뜻입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 구속받은 백성의 계보를 이어가는 일,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들에게 맡기신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한,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이것이었습니다.

이 가치 있는 일을 남들은 잘도 해내는데, 남들은 아이를 쑥쑥 잘만 낳아 기르는데, 

유독 아이 낳는 일에 재주가 없는 조상들이 눈에 띕니다. 

셈이 그러했고, 데라가 약간 그랬고, 아브라함이 꽤 그러했습니다. 

노아는 가장 그러했습니다. 

이들은 믿음의 계보 산맥에서 모두 큰 봉우리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들에게는 첫아들을 늦게 얻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습니다(5:32). 

셈은 백세에 믿음의 첫 후손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도 똑같이 100세에 믿음의 후손 이삭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70세에 첫아들을 낳았습니다. 

데라는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갈대아 우르를 믿음으로 떠나는 첫 출발을 해낸 믿음의 세미 조상쯤 되는 인물입니다.

이들이 자녀를 낳는 일에 무관심해서였을까요? 

그래서 결혼도 늦게 하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이 낳는 일보다는 

다른 더 급한 문제에 골몰했던 것일까요? 

이 시대의 젊은이들처럼, 

직장에서 안정된 위치를 확보하고 집을 마련하며 자동차를 장만하는 일을 먼저 하였던 것일까요?

그랬을 리가 없습니다. 당세의 의인으로 인정받은 노아였습니다. 

그의 첫째 아들로 여겨지는 셈이 그랬을 리가 없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그러했을 리가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이 그랬을 리는 더욱 만무합니다. 

셈은 아버지 노아와 함께 방주를 짓는 일에 동참했던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날 때 이미,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히 11:8). 

그의 믿음이 아버지 데라의 삶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중간에 하란에 주저앉아 잠시 중단되었지만,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처음 받아 순종한 사람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데라였습니다(11:31).

그런데 왜 이들은 한결같이 자녀를 어렵게 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들이 첫아들을 늦게 얻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의 믿음을 단련시키기 위해 허락한 일이었다고 여겨집니다. 

노아의 경우 홍수 심판 앞에서 살아남으려면 거룩함과 의로움을 지켜내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비웃는 가운데 방주를 지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단단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새로운 인류의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셈에게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믿음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사래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신 이유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보며 기다리는 믿음을 

아브람과 사래에게 훈련시킨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의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은 보여주십니다. 

믿음은 형통하게 해 주시고 기도에 착착 응답해 주시는 것으로도 생겨나고 자라지만, 

진짜 강한 믿음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 자란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주님, 

내게 계속 남아 있는 문제들,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통해 

나의 믿음을 강하게 만드실 것을 기대합니다. 

빨리 해결해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는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래 기다리는 가운데, 더욱 단단한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문제 해결보다 믿음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2026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  (1) 2026.01.17
셈의 족보  (1) 2026.01.16
바벨, 바벨론이 되다  (0) 2026.01.15
나눔과 흩어짐  (2) 2026.01.14
덮음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방심은 금물  (1) 2026.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