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4. 수요일
창세기 10 : 1-32
- 족보의 서문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 아벳의 후손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다라스요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 함의 후손
함의 후손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리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나두힘과 바두르심과 가슬루힘과 갑두림을 낳았더라.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나아갔더라.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 셈의 후손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를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이들은 셈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 족보의 결론
이들은 그백성들의 족보에 따르면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따라
나뉘고 흩어져 나아간 것인가?.
모세는 어떻게 이 족보의 많은 이름들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벨렉 이후 세상이 나뉘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바벨탑 사건 이전에도 언어가 나뉘어 있었던 것일까?
단지 노아로 시작된 3세대 만에 참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흩어져
각 열방의 기원을 이루어 갔다.
우리가 뿌리, 기원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할까?
족보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나뉘고 흩어지는 것은 하나됨과 반대 현상인데
오늘 본문은 나눔과 흩어짐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세 아들은 세겹줄이 되지 못하고 각각 나뉘어지고 흩어졌다.
흩어짐은 사람의 생각이고 판단이었지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흩어짐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구속의 역사를 펼쳐 가셨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에 대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눔과 흩어짐의 순기능도 생각해 본다.
성도들이 울산교회에서 울산신정교회로, 매곡교회로 나누고 흩어졌기에
죽어가던 교회가 회복되고 성장하는 역할을 감당했음도 무시할 수는 없다.
성령님
이 노아의 세 아들들의 족보를 주신 의미를 깨닫게 도와주소서.
나뉘고 흩어짐의 기록이 주는 영적 의미를 잘 깨닫게 지혜를 주소서.
오늘도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리스도 사랑 안에서 하나되는 일에 힘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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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방의 기원 ]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들은 각기 흩어져 여러 민족과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 흩어짐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이어 가셨습니다.
( 2-5절)
흩어진 자리에도 복음의 길을 예비하십니다.
야벳의 후손들은 지중해 연안과 북쪽, 바다 섬들로 흩어져 각기 민족과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겉보기엔 단순한 분산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흩어짐 속에 복음의 통로(헬라-로마 문명권)를 마련하고 계셨습니다.
훗날 복음이 땅끝까지 퍼져 나가도록 미리 준비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흩어진 자리, 이해되지 않는 이동과 변화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복음의 확장을 이루십니다.
(6-20절)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함의 자손으로 이어진 족보에는 애굽과 바벨, 니느웨와 같은 열방의 기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 땅의 도시와 제국은 사람의 권세와 욕망으로 세워졌지만,
성경은 그조차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나는 눈앞의 거대한 권세와 문화의 흐름에 휘둘리기보다,
그 너머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21-31절)
언약의 줄기를 이어 가십니다.
셈의 족보는 단순한 이름의 기록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흐르는 구원의 강줄기입니다.
믿음의 계보는 셈에서 아브라함으로, 아브라함에서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혼잡과 흩어짐이 거셀수록 더욱 분명한 언약의 길을 마련해 두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작은 순종과 믿음의 발걸음도 하나님 나라의 큰 역사 안에 연결되어,
내일의 구원을 틔우는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평범한 자리에서 드리는 나의 작은 순종이,
후대의 삶 속에 언약의 빛을 이어 가는 씨앗이 됨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하실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합니까?
(전체)
모든 민족은 한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고대의 신화들이 자기 민족의 신을 내세워 우월함을 주장했지만,
성경은 인류의 기원을 하나로 묶어, 누구도 다른 민족 위에 설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인종과 국경, 언어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형상, 그것이 인간의 참된 정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종이나 민족에 따른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제 삶의 작은 순종이 누군가에게 믿음의 길을 이어 주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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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뉘는 자들 ]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성경은 특별히 두 인물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함의 자손 중 니므롯과 가나안입니다.
이들 때문에 함의 족보(6-20절)가 셈(21-31)과 야벳(2-5)의 족보를 합한 것과 같은 분량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은혜 언약을 멸시하는 계보의 대표 주자였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 가족들이 나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한 방주에서 살려내셨고, 한 방주에서 불러내셨는데,
자유를 얻은 그들은 그 자유로 나눔을 선택했습니다.
[전도서 7:29]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야벳의 자손이 그랬고(5절 ‘나뉘어서’), 함의 후손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18절 ‘흩어져 나아갔더라’. 20절 ‘각기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이스라엘의 조상인 셈 족속도 예외 없이 나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31절).
이 나눔이 현실화된 것은 셈의 후손 벨렉의 때입니다.
그때까지는 노아의 후손들이 형식적으로는 한데 모여 살면서
한 언어를 사용하는 한 종족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셈의 4대손 벨렉의 때에 이르러 온 세상이 나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25절).
10장의 마지막 결론이 이것입니다. ‘...나뉘었더라.’
그 나뉨의 원인 제공자 중 일등은
구스의 후손 중 홍수 이후 처음으로 용사의 이름을 얻은 니므롯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벨 건설의 주동자입니다.
시날 평지에 세워진, 그의 나라 이름이 바벨이었습니다(10절, 11:2).
먼 훗날 이 바벨의 이름을 따서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같은 시날 땅에 등장합니다.
이 바벨론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였습니다.
‘바벨’의 어원은 ‘발랄’이라는 동사입니다.
‘혼합하다. 혼란시키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혼합은 혼란으로 끝날 수밖에 없음을 가르쳐주는 단어입니다.
니므롯은 4장에 나오는 카인의 후예들과 닮은꼴의 사람입니다.
노아의 후손이 6:1-4절에 나오는 타락한 셋의 후예
곧 ‘타락한 하나님의 아들들’의 길을 따라간 결과로 나타난 자가 니므롯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여 네피림과 같은 용사를 낳고자 했습니다.
6장 4절을 히브리어 본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그때는 물론 그 후에도 땅에 네피림(거인족, 용사, 폭군)이 있었다.
이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가 자식을 낳았다.
그들은 유명한 사람으로서 대대로(언제나, 영원히) 용사가 되었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네피림들을 부러워하여 용사의 길을 추구하였다는 뜻입니다.
‘타락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좇아간 용사의 길, 네피림의 길을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후손 중 니므롯이 추구하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 만족하지 못할 만큼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용사, 사냥꾼, 모험가, 건설가, 왕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세상이 열광하는 영웅이었습니다.
가나안(함의 아들)의 후손은
구스(함의 또 다른 아들, 니므롯은 구스의 아들)의 후손과 경계를 이루어 살면서
니므롯의 문화를 동경하고 흉내 내었습니다.
해외무역을 개척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한 시돈이 가나안의 장자였습니다.
[이사야 23:2]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인들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해변 주민들아.
또한 소돔과 고모라가 가나안 족속의 거주지였습니다.
함의 다른 아들 미스라임의 후손인 블레셋은
가나안 족속의 지역에 살면서 네피림 문화를 이어갔습니다.
이들의 탁월함, 용맹스러움, 번영의 신학은 한 방주에서 나온 공동체를 분리하고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기보다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뭔가를 해내는 것에 가치를 두는,
니므롯 문화(네피림 문화, 카인의 문화, 용사 문화, 영웅주의)는
인간 사이의 경쟁과 싸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는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다스림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용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가롯 유다를 제외하고는 전원이 갈릴리 촌놈 출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영웅적인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이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단결시키는 듯하지만
영웅주의는 또 다른 영웅주의와 반드시 충돌하게 되어
결국은 극한 대립과 상대를 죽여 없애는 포학으로 귀결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까지 올라갑니다.
가인이 그러했고, 라멕이 그러했습니다.
주님,
우리를 겸손히 섬기는 지도자, 온유한 순종의 지도자로 만들어 주옵소서.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진정한 용사, 타밈의 용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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