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5. 목요일
창세기 11:1-9
- 바벨탑 건축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 언어의 혼잡과 흩어짐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
오늘은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도시를 건설하는 이야기이다.
인간의 타락은 도시를 세우면서부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 흩어져 땅에 충만해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들의 생각대로 도시를 건설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한다.
바벨
바벨론의 옛 이름이 되었다.
인간 권력과 힘의 상징, 타락하고 죄악된 세상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지금도 자신만의 바벨탑을 쌓으려고 발버둥친다.
전 세계가 도시화의 거센 물결 속에 쓸려가고 있다.
도시화가 선진국, 성공, 행복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너도 나도 도시로, 도시로 불나방처럼 몰려든다
목숨 건 생존의 경쟁이 살벌하게 난무하는 하루 하루를 살아낸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실현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환경을 만들어 간다.
질서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
오늘도 반복의 연속인 하루를 살아가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도록 도와주소서.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주 되심을 인정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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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춘 탑, 열린 길 ]
사람들이 탑을 쌓아 이름을 높이려 하나,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그들을 흩으심으로 교만을 꺾으십니다.
(5-7절)
인간의 모든 계획을 세밀히 살피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사람들이 탑을 쌓아 '올리며' 힘을 모을 때,
하나님은 '내려오사' 그들의 행위를 보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크고 작은 시도조차 그분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은 스스로 주도한다고 여기지만,
결국 모든 계획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드러나고 심판받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내려오셔서'
우리의 드러내지 않은 마음의 동기와 은밀한 방식까지 꿰뚫어 보십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드러난 존재임을 기억하며,
사람의 시선이 아닌 주님의 눈길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8-9절)
교만을 흩으시되, 그 흩어짐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여십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의 언어를 흩으신 것은 파괴가 아니라,
끝없는 자기 숭배를 멈추게 하시는 제동이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온 땅에 흩어져 번성하라는
창조 명령을 다시 이루시는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계획은 무너져도,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 열립니다.
막힘과 흩어짐을 그저 좌절의 이유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시는 새로운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1-4절)
사람들은 언어와 힘을 모아 탑을 세우며 자기 이름을 높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연합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교만을 향한 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 높이 오르려는 성과주의, 더 많은 주목을 좇는 SNS문화, 더 큰 업적을 남기려는 경쟁의 자리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내 이름' 을 세우는 탑을 쌓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연합은 흩어짐으로 끝나고, 교만 위에 세운 성취도 이내 무너집니다.
오늘 내 계획과 성취를 통해 내 이름을 드러내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분의 영광을 따르고 있습니까?
(9절)
스스로 드높이려던 이름 '바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자랑할 때, 그것이 우리의 바벨이 될 수 있습니다.
욕망의 탑을 허물고 주의 이름을 높이는 길에 제 삶을 드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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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하나 됨을 위한 깨뜨림 ]
찬송가 98장 예수님 오소서
진짜 문제는 바벨 건설의 주역인 니므롯이 아니었습니다.
이 니므롯에 의해, 가나안의 후손에 의해,
은혜 언약의 계승자인 셈 족속과 야벳 족속까지
나뉨의 문화에 휩쓸려 들어갔다는 것이 진짜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문화를 동경하고 부러워하고 거기에 동참했다는 것에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니므롯이 세운 바벨탑 공사에 셈과 야벳의 후손들, 하나님의 백성들이 동참한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그 꼴을 못 보십니다. 그래서 깨뜨리십니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유지되어온 악한 습성을 바꾸는 방법은,
깨뜨리고 다시 만드는 것입니다.
바벨탑은 단순히 탑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탑이 너무나 웅장하고 커서, 하나님의 위엄을 위협할(?) 정도였던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바벨탑에 깃든 인간들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 속에 담긴 영웅주의와 거대주의, 거인 숭배 사상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바벨탑을 심판하러 내려오셔서
바벨탑을 부수지 않으시고 인간들을 깨뜨려 버리십니다.
바벨탑이 문제였다면 탑을 부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탑을 깨뜨리시지 않고,
바벨탑을 짓는 인간들을 흩으심으로써 바벨탑을 심판하십니다.
그들의 거짓된 하나 됨, 하나님 없는 하나 됨, 하나님께 대항하는 하나 됨을 깨뜨리십니다.
그들의 이 하나 됨은 진정한 하나 됨이 아닙니다.
사실 그들은 이미 ‘자기’를 추구하는 존재로 나뉘어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나뉘어 있었기에 결코 온전한 하나 됨을 이룰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하나 됨은 단지 하나님과 대항하기 위한 하나 됨입니다.
즉 그들은 ‘자기’를 추구하기 위해,
각기 자기 마음대로 사는 꿈을 확실히 실현하기 위해
하나님에게 대항하기로 하였습니다.
각기 ‘자기’를 추구하는 확실한 나눔을 위해 하나님께 한 가지로 대항하였습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살기를 원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대항하기 위해 뭉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였습니다.
거기에 셋 계열이 끌려 들어갔습니다.
카인 계열에 대해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셋 계열에 의해 정복되고 회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남겨두십니다.
그러나 셋 계열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간섭하십니다.
‘너희들은 섞이면 안 돼! 너희들은 나뉘는 자들과 하나가 되면 안 돼!
너희들은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정복해야 할 자로 내가 택한, 내 자녀야.
그러니 내가 간섭할 거야!’
셋 계열을 구원해 내기 위해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에 직접 개입하십니다.
내려오십니다. 강림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역사하실 수가 없어서 물리적으로 가까이 내려오셔야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뭔가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계시,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의 예표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원은, 자기를 주장하는 죄로부터의 구원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비로소 성취됨을 예표하는 강림입니다.
강림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깨뜨리고 흩으셔서 가난한 자로 만드심으로써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것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핵심 사역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확인하고자 하였을 때 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1:4-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 말씀에서 강조 포인트는
‘보며, 걸으며, 깨끗함을 받으며, 살아나며, 전파된다’가 아니라
‘맹인이, 못 걷는 사람이, 나병환자가, 죽은 자가, 가난한 자에게’입니다.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눅 12: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우리의 메시아께서는 인간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가난함과 죄인 됨을 깨닫게 만들어,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려고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분 스스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가난한 자의 삶을 사시면서 우리를 설득하셨습니다.
그리고 카인의 후예와는 다른 문화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의 자리, 교회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깨뜨려진 것이 은혜입니다.
깨져야 온전한 형상으로 새롭게 세워질 수 있기에, 깨진 것이 은혜입니다.
깨지기를 끝내 거부하면, 새롭게 세워질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깨지는 자리에, 믿음으로 십자가의 길에,
주님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주님 !
흩으시고 깨뜨리신 것이 은혜임을 믿습니다.
진짜 하나 됨을 위하여 가짜 하나 됨을 깨뜨리시고 끝장내시는,
하나님의 온전케 하시는 ‘타밈’의 은혜를 더욱 바라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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