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미련이 가져오는 머뭇거림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1. 27. 07:03

2026.1.27. 화요일

창세기 19 : 12-23

 

- 심판의 경고와 사위들의 무시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 지체하는 롯과 구조하는 천사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 소알로 피신하는 롯의 가족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을 면하라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게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데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

새벽에 롯의 구출작전이 진행된다.

롯과 함게 구원할 명단과 그들이 피할 시간을 허락하신다.

멸망이 임하기 전에 의인들을 구원하시는 모습은 마지막 때도 그럴 것이다.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시지 않을 것이다. 

 

롯의 사위들은 구출작전을 농담으로 여긴다.

멀쩡한 날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콧방귀를 켰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노아의 방주 사건 때도 그랬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도 동일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롯의 말이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평상시 사위들에게 롯의 말의 권위와 신뢰감이 어떻했는지를 가름해 본다.

 

롯은 그동안 자신이 일구어 놓은 재산을 포기할 수가 없다.

어떻게 일구어 놓은 재산인데, 빈 손으로 가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재물에 대한 애착, 자식에 대한 애착, 자기 일에 대한 지나친 애착이 

항상 무슨 일을 결정할 때에 발목을 잡을 때가 많다.

머뭇거리고 주저하며 망설이게 만든다. 

나그네 인생길에서 세상에 집착하지 말자. 

세상 것들에 지나치게 애착을 갖지 말자.

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들일 뿐이다. 

 

산으로 피신하라고 하는데 성을 고집한다.

도시 문화에 익숙한 정착 생활에서 다시 장막, 유목민으로 살아가기가 싫었던 것일까?

도시, 세속 문화의 결정판, 온갖 죄악이 만연한 곳.

나 또한 이런 생활이 편하고 익숙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끝까지 미련을 떨쳐내지 못한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만다.

두고두고 후대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일 것이다.  

 

주님

하나님의 경고하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행동하기를 원합니다.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성령의 음성을 곧바로 알아 듣고 인도하심을 잘 따라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

세상에 지나친 미련을 두고 살지 않게 하소서.

나그네 인생, 언제 떠날 지 모르는 인생,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살게 하소서.

 

-------------------------------

[순종의 때, 은혜의 때 ]

 

하룻밤 사이에 소돔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미리 예비하시고 연약한 자의 두려움에 은혜로 응답하십니다.

 

(12-14절)

구원의 길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두 천사는 롯에게 속히 성을 떠나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롯의 사위들은 그 말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멸망이 문턱에 다다랐는데도 현실의 안락함에 눌려 말씀을 가벼이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재앙보다 구원의 길을 먼저 준비하십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멸망의 선고가 아니라 구원의 초대장입니다.

그 부르심이 명확한데도 여전히 유보하고 있는 결정이 있지 않습니가?

 

(18-21절)

우리의 두려움에 은혜로 응답하십니다.

롯은 산으로 피하라는 천사의 명령에 두려워 떱니다.

여전히 계산하며 주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작은 성 소알로 피할 길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보다 더 넓은 사랑으로 길을 내십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믿음이라도 붙들어 주시는 자비의 아버지이십니다.

 

(22절)

우리 믿음의 분량을 아시기에 스스로 멈추십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롯이 소알로 들어가기까지 "아무일도 행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전능하신 분이 스스로 자기 뜻을 무능하게 만드셨습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심판의 능력을 억제하신 것입니다.

열두 군단도 더 되는 천사를 불러 악인을 멸할 수 있음에도(마 26:53), 

십자가에 목 박히신 무력함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5-17절)

동틀 무렵 천사가 롯을 재촉하지만 롯은 머뭇거립니다.

하는 수 없이 천사가 그의 손을 붙잡아 성 밖으로 이끌어야 했습니다.

그는 악에 대한 미련 때문에 구원의 길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구원을 얻으려면 심판받을 악을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아직 미련을 두고 있는 악은 없습니까?

 

(23절)

롯이 소알에 들어가자 해가 떠오릅니다.

천사가 저녁에 도착해(1절)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모든 일이 단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구원은 언제나 긴박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머뭇거림은 사치입니다.

구원의 초대 앞에서 주춤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 은혜 안에 머물게 하시고, 지체 없이 악을 떠나 순종하게 하소서. 

 

=================

[ 오십 보 백 보 ]
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소돔성에는 의인 열 명이 없었습니다. 겨우 롯 한 명 있었을 뿐입니다. 

롯도 사실은 아브라함을 봐서 하나님께서 억지로 인정해 주신 의인일 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8:32절 이후에 한 번 더 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목구멍에서 맴도는 간구는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주여,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 의인 한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말 없는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 기도 이상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사실상 의인 한 명도 없는 소돔에서 

아브라함의 낯을 봐서, 의인 아브라함의 기도를 듣고, 롯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의인이라고 할 수 없는 롯을, 의인으로 셈하여 주셨습니다.

29절의 말씀이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롯은 소돔의 죄악에 잠식되어 그 심령이 상해버린 의인(벧후 2:8)이었습니다. 

소돔의 죄악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멸망을 선포하고는 지체없이 도망하라고 재촉할 때, 

롯은 머뭇거렸습니다. 지체했습니다. 

할 수 없이 천사들이 억지로 끌고 나왔는데, 

그것이 여호와께서 자비를 베푸신 것이라고 말씀이 증거합니다(16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자비를 받지 않기 원하십니다. 

억지로 끌려 나오는 자비, 억지로 끌려 하는 신앙생활, 

그것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자비의 결과이니 좋은 것 받았다고 좋아해야 할까요? 

억지로라도 신앙생활하면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을 것이니 괜찮은 것일까요?

롯이 받은 구원이 온전한 구원일까, 부끄러운 구원도 구원일까 생각해 봅니다. 

고린도전서 3:15절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는 말씀 때문에

불 가운데서의 구원, 부끄러운 구원이 있다고 많은 분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7:30-31]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예수님을 통해 믿을만한 증거를 주신 이후에는 

회개하지 않은 신앙, 세상과 교회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신앙, 

뜨뜻미지근한 신앙을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고전 3:15절은 교회를 세우는 사역자에 대해 

사역의 열매 없이 겨우 자신만 구원받는 경우를 경계하는 말씀이지 

성도의 일반적 구원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어진 17절(고전 3:17)에서 하나님께서 멸하실 것을 경고하는 것을 보면 

그마저도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에 불과한 듯합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는 말씀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롯에게서 이런 뜨뜻미지근한 신앙의 모습이 계속 나타납니다. 

산으로 곧장 도망하라는 명령에, 작은 성읍으로 가겠다고 말합니다. 

성읍 생활이 주는 편리함과 안락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산의 짐승보다 성읍의 죄인들이 더 무서운 존재임을 아직도 모릅니다.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와 롯은 사실 오십 보 백 보입니다. 

끌려 나온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회개에 이르지 못하면, 억지로 끌려다니는 신앙으로는, 

아직 구원받았다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주님, 

이런 위험한 지경에 우리가 머물러 있지 않도록 경고하여 주옵소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무엇이 생명인지 

아직도 분별 못 하는 우리의 무지함을 깨우쳐 주옵소서.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고쳐 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의로우신 간구에 소망을 둡니다. 

그 간구 때문에, 반복해서 긍휼을 베푸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온전한 회개에 이르도록 끌고 가 주시옵소서. 

 

아멘!

'2026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0) 2026.01.30
번영을 추구한 삶의 결말  (0) 2026.01.28
소돔성에서 의인으로 사는 길  (0) 2026.01.26
하나님의 정의와 긍휼 사이에서  (1) 2026.01.25
나그네 환대  (0) 202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