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침례 요한의 증언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2. 2. 07:02

2026.2.2. 월요일

요한복음 1 : 19-34

 

- 요한의 부인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내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아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 요한의 자기 소개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 요한의 예수님 소개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아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 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 예수님을 전한 요한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

요한의 어떤 행동을 보고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을 보냈을까?

제사장과 레위인은 율법과 선지서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아닌가?

그리스도? 엘리야? 모세가 말하던 그 선지자?

다 메시아와 연관된 인물들 아닌가?

 

요한의 행동 중에 세례가 있었다.

그들이 묻는다. 그리스도도 아니면서 왜 세례를 베푸느냐고 추궁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만이 세례를 배풀 수 있다고 생각했었던 것인가?

 

요한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교만하지도, 자랑하지도 않는다. 

겸손하게 그들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대답할 뿐이다. 

 

자신의 사명을 똑바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가 무엇대문에 세례를 주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누구를 기다려야 하는지.

성령에 충만한 요한은 예수님을 알아 본다. 

그를 세상에 소개한다. 그것이 그의 사명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예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다.

요한의 증언은 예수님을 세상 지고 가는 어린 양,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한다.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의 입을 빌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님

침례를 받았던 대학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게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부활하였습니다.  

이제 갈 2:20의 말씀처럼 내 안에 당신이 사십니다.

그 믿음 신실하게 지켜 살아가도록 은혜 베풀어 주소서.

 

----------------------------------

[ 예수는 말씀, 요한은 소리 ]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며, 주의 길을 예비하는 '소리'일 뿐이라고 합니다.

예수께 세례를 베풀면서 그분이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아라고 소개합니다.

 

(25-26, 32-34절)

물세례의 실체이십니다. 

요단강 세례는 하나님이 명하신 일로,

요한이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 머무는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 세상에 소개하는 무대입니다.

무엇보다 요한은 물에 흠뻑 젖는 이미지를 통해,

장차 오실 예수님이 회개하는 이를 성령으로 흠벅 적실 것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요한이 물세례로 예고한 것을 예수님이 실현하셨습니다.

우리도 묵은 죄의 습성을 씻고 주님과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회개의 강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성령의 강에 깊이 잠겨야 합니다.

 

(29-30절)

'지고 가는'(헬. 아이로)에는 '짊어진'과 '제거하는'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진 대속의 어린양인 동시에,

세상 죄를 제거하고 정복하는 승리의 어린양(계 17:14) 이십니다.

내게도 '나아오셔서' 기꺼이 지고 가겠다고 말씀하시는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19-21, 27절)

세례 요한의 회개운동은

유대인 사이에서 로마의 압제로부터의 구원을 준비하는 일로 회자되었고,

자연히 요한을 메시아로 기대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네가 누구냐?" 하는 물음에 "아니라"는 말로 답합니다.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선지자(모세, 신 18:15)도 아니라고 합니다.

엘리야(말 3:1, 4:5, 마 11:14) 라고는 인정할 만도 한데, 

그마저도 거절하며 철저히 자신을 낮춥니다.

예수님의 신발을 벗겨 드리는 시중을 드는 것도 감당 못할 만큼 작고 하잘것없다고 고백하며,

주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을 잠시도 견디지 못합니다.

나를 부르신 자리, 내게 주신 은사, 내게 맡긴 사명 외에는 '아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인정하는 자리에 있개 될 것입니다.

예수를 드러내기 위해 나를 감추는 것이 증인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22-24절)

요한은 자신을 '소리'라고 합니다.

소리의 역할은 참 그리스도를 똑똑히 증거하고 자신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 역사가 빠르고 충만하게 임하도록,

각 사람의 마음에 있는 죄의 방해물을 제거하여 주의 길을 곧게 하는 데 쓰임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 담은 '소리'가 되어 주님 오실 길을 잘 예비하게 하소서.

 

=====================

[ 메시야의 핵심 사역, 세례 ]
찬송가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요한의 이름 앞에 꼭 붙어 다니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세례’입니다. ‘세례 요한’, 

이는 빛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며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던 요한의 사역 핵심이 세례에 있음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유대인들이 요한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네가 누구냐? 그리스도냐? 엘리야냐? 그 선지자냐?” 

이런 질문들을 한 것은 요한이 베푸는 세례에 대해 시비를 걸기 위해서였습니다.

네가 그리스도도 아닌데 왜 세례를 베푸느냐고 물었을 때, 요한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내 뒤에 진짜 세례, 성령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실 것이다(막 1:8).

  나는 진짜 세례를 베푸실 그분을 증거하기 위해,

  그분의 길을 준비하라고 외치기 위해, 물세례를 베풀고 있을 뿐이다.”

유대인들의 물음 중에 담긴 뜻을 해석해 보면, 

‘세례’는 메시야의 핵심 사역입니다. 

세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세례가 무엇이길래 메시야의 핵심 사역으로 여겨진 것일까요?

‘세례’의 한자 뜻 때문에 많은 분들이 세례를 단순히 ‘씻는 예식’ 정도로 오해를 합니다. 

본래 ‘세례를 베풀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밥티조’인데, ‘밥토’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밥토’는 ‘물에 잠그다. 흐르는 물로 완전히 덮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라는 용어보다는 ‘침례’라는 용어가 ‘밥티조’의 본래 뜻을 더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하에서 ‘세례’를 ‘침례’로 바꾸어 사용합니다).

‘세례’ 곧 ‘침례’는 구약 ‘할례’의 신약적 예식입니다. 

골로새서에서는 침례를 ‘할례’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골 2:11-12] 11.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할례는 생식기 포피를 잘라내어 속살을 드러내는 예식이었습니다. 

잘라냄에 죽음의 의미가 들어있고, 

속살을 드러냄에 새생명이 일어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바울 사도가 홍해 사건을 침례 사건으로 설명한 것과 그 의미가 상통하고 있습니다. 

[고전10:1-2] 1.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할례와 침례는 죽고 다시 사는 구원의 표였습니다. 

단순히 죽는 것도 아니고, 죽음 없이 생명만 받는 것도 아닙니다. 

홍해에서 수장된 바로의 군대는 침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홍해에서 올라온 이스라엘만이 침례를 받았다고 인정되었습니다.

침례의 1차적 의미는 물로 덮는 것입니다. 물에 잠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물로 덮는 것의 의미가, 

단순히 덮어서 가리거나 죽이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고 베드로 사도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벧전 3:20-21] 20. ...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단순히 제하여 버림(할례의 포피 제거)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새롭게 사는 것(속살을 드러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이 새롭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골 2:12절의 의미와 같습니다.

이 일에 물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하십니다. 

홍수 때에 방주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온 세상, 옛 세상이 물에 잠겼습니다. 침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 물로 말미암아 노아의 가족은 방주 안에서 옛 세상과 분리되어 하늘을 향해 떠올라 있습니다. 

물이 우리 옛사람을 덮어버리고, 새사람만 남겨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에베소서 5:26절(‘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말씀 안에서 물의 씻음으로’ 깨끗하게)은 

이 물을 말씀과 연결시킵니다. 

성령 침례는 바로 말씀 침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물이 우리 심령을 가득 채워 옛사람을 덮어버리고, 

성령께서 그 수면 위에 운행(창 1:2)하시어 

새사람을 창조하시는 사역, 이것이 성령 침례입니다.

세례 요한은 물 침례를 통하여 

진정한 침례, 말씀으로 새창조의 사역을 일으키시는 성령 침례를 바라보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 침례를 주실,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리실 메시아를 기다리게 한 것입니다.

주 성령님, 말씀으로 침례를 온전히 이루시옵소서.  

나의 욕심, 정욕이 말씀 안에 완전히 푹 잠겨서 조금도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옵소서. 

온전히 선한 양심만 그 말씀 위에 새 영으로 떠오르게 하옵소서. 

 

아멘!

'2026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나 혼인잔치의 포도주 표적  (1) 2026.02.04
와서 보라 !  (1) 2026.02.03
은혜 위의 은혜  (1) 2026.02.01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의 삶  (0) 2026.01.31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0) 2026.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