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가나 혼인잔치의 포도주 표적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2. 4. 06:56

2026.2.4. 수요일

요한복음 2장 1-12절

 

- 혼인 잔치에 참석하신 하나님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의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집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가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서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

가나(갈릴리에서 13km북쪽)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표적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로 다 알큼 유명한 사건이다.

 

성경은 예수님의 첫 표적으로 기록하고 공생애의 사역의 시작을 알린다.

저자는 표적의 시작을,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을

왜 결혼 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일로 설정하였을까?

 

이 표적에서 주는 영적 의미들이 많다.

첫 표적이 잔치집에서 시작된다.

잔치는 기쁨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땅에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빛이 어둠에 비추이는 것이 기쁨이고,

진짜 참 기쁨, 천국 잔치의 기쁨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신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생화학적 변화가 일어난 이 사건은 사람이 거듭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십자가에서 보혈이 영적 부활과 영생을 가져옴을 연상케 한다.

 

현재형 하나님나라에서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다.

현재형 하나님나라에서의 누림은 구속 후 구원의 기쁨이다.

미래형 하나님나라에서 포도주는 부활체로서 미래형 하나님나라에의 입성과 영생이다.

미래형 하나님나라에서의 기쁨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영생을 누리는 기쁨이다.

 

저자는 숫자를 좋아한다.

사흘째 되던 날은 세 번의 이튿날을 언급한 후 사흘째 날을 언급하는데 안식일이다. 

항아리 (75-110L, 어떤 곳은 40L로 소개) 여섯도 게마트리아의 불완전한수 6을 상징한다.

비어있는 돌항아리 여섯은 유대인들의 영적 상태를 상징한다.

완전수 일곱번째 항아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재림의 예수를 상징하며 재림의 그날에 나타나실 것이다.

 

왜 가족들과 제자들과 함게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을까?

어머니 마리아에게는 아지 ㄱ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시더니 

종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게 하시고 다 채워지자 이제는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지시하심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보여 주시면서 자신을 믿도록 의도하신 것일까?

 

주님

이 주님의 표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하도록 깨달음을 주소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하셨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 십자가의 보혈과 말씀으로 온전히 거듭나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잔치의 기쁨, 구원의 감격으로 충만한 삶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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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인 잔치의 표적 ]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위기에 처한 잔치에 기쁨을 회복시키십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보여 주는 그림언어입니다.

 

(1절)

세 번의 '이튿날'(1:29,35,43)이지난 '사흘째'는 7일째를 말합니다.

'태초에'로 시작한 창세기에서는 7일째 되던 날에 창조가 완성되고 안식이 임했습니다. 

'태초에'로 시작한 요한복음에서는 7일째 되는 날에

예수님이 어둠에 갇힌 세상에 빛을 가져다주는 창조주의 잔치의 기쁨을 회복시키십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공허한 잔치를 성령으로 충만한 천국 잔치로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2-4절)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때'는 십자가의 때입니다.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은

십자가에 달리실 창조주로서만 관여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어머니의 요청을 해결해야 하는 장남으로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눈앞의 혼례의 문제가 아닌

죄와 죽음이라는 실존의 문제에 처한 '여인' 앞의 그리스도로서 ,

자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임할 구원의 잔치가

얼마나 풍성할지를 소망케 하기 위해 

혼인 잔치를 자신의 표적( 11절)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7-10절)

옛 언약의 시대가 가고 새 언약의 시대가 도래함을 보이십니다.

수치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잔치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에 쓰이는 '여섯'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잔치를 회복시킬 수 없었습니다.

완전수 '일곱'에 미치지 못하는 이 '여섯' 개의 돌항아리는,

형식만 강요할 뿐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킬 수 없는 무기력한 유대교의 실상을 폭로합니다. 

예수님은 이 쓸모없는 항이라를 한 통에 100리터의 극상품 포도주가 담긴 항아리로 바꾸셔서,

지나칠 정도로 풍성한 새 언약 시대의 기쁨을 맛보여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기쁨이자,

죄와 사망의 세상에서 생명을 일구며 사는 우리의 잔치입니다.

 

(11절)

표적을 보고 제자들이 믿습니다.

하지만 항아리에 물을 채운 하인들, 새 포도주를 맛보았던 하객들은

표적에 담긴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기적이 부족해서 못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불신이 경이로운 기적과 신비를 진부한 일상으로 바꿔저린 것입니다.

 

주님과의 풍성한 교제를 통해 저를 변화시켜서 잃었던 기쁨을 회복시켜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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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비하게 순종하는 자에게 약하신 예수님 ]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일곱 표적 중 첫 번째 표적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표적은 앞선 사건, 곧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난 사건 발생일로부터 사흘째 되던 날에 일어났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제3일’은 예수님의 부활의 날을 가리키는 익숙한 표현이었습니다. 

요한 사도는 제3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날에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특별한 사건이 있을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1:50절에서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하신 대로 

나다나엘을 포함한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첫 번째 표적은 다른 표적과 좀 다른 면이 있습니다. 

표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닌, 예수님이 하나님이심과 메시야이심을 나타내는 기적을 말합니다. 

이 면에서는 오늘의 표적도 다른 표적들과 같습니다. 

다만 이 가나 혼인 잔치의 표적은 

예수님께서 소극적, 수동적으로 행하신 표적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표적과 다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를 예수님과 상의하였을 때, 

예수님은 "그것이 우리에게(문자적으로는 '나와 당신께') 무슨 문제가 됩니까?"라고 답하였습니다. 

이어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어머니의 부탁을 완곡히 거절하신 대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이 조금 서운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내색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을 해결하여 주실 것을 기대하며 조용히 기다립니다. 

그러면서 하인들에게 다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든 시키면 그대로 순종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예수님을 어린 시절부터 유의하여 보아왔던 마리아가 예수님의 약점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순종하는 자에게 약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본래 이 기적을 행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기적을 통해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예수님을 바르게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될 사람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순종할 준비가 된, 겸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잔칫집의 종들, 그리고 갈릴리 출신 제자들이었습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9절).’라는 진술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 기적을 드러내어 행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영광을 알아본 사람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소수이지만 참된 순종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자기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말씀을 번복(?)하시기까지 하면서 

자기 영광을 나타내 주십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시며

간청을 거절하셨던 예수님께서

결국은 그 여인의 간청을 들어주셨던 상황과 비슷한 장면입니다(마 15장, 막 7장).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기계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죄인의 회개와 순종이 있을 때는 기꺼이 변경(?)되기도 하는 인격적인 뜻입니다(출 32:12, 14; 시 106:45, 렘 18:8, 욜 2:13, 암 7:6, 욘 3:10, 4:2).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뜻을 바꾸실 채비를 해 놓으시고는, 

우리의 반응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말씀이네요.

온전한 순종의 자세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기까지(?) 하시면서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정말 귀하게 여기십니다. 

황당해도, 이해되지 않아도, 죽을 것 같아도 “예~”하는 순종 말입니다. 

순종이 너무나 귀하기에 

때가 아님에도, 때를 변경해서라도, 순종하는 자들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주님, 

때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들을 접할 때도 겸손히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갖기 원합니다. 

예수님 따라다니면서 이 믿음 가지게 된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오랜 시간 같이 있으면서 이 믿음 갖게 된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따지지 않고 순종하는 겸비한 믿음 가지기 원합니다. 

계속 주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계속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 쉬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많이 보고 많이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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