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거듭남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2. 6. 07:03

2026.2.6.금요일

요한복음 3장 1-15절

 

-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 거듭나야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으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 들리신 인자를 믿음으로 얻는 영생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니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보는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요한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어떤 표적을 행하셨는지 기록하지 않았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표적들을 보고 밤에 예수를 찾아 온다.

니고데모의 말을 들어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만 일어날 수 있는 표적들이었다고 한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시간을 밤으로 설정한다.

어둠에 속한 자가 빛으로 나아오는 것을 상징하듯,

물론 니고데모가 주변 시선을 의식하여

남들의 시선을 피해 밤 시간에 찾아온 것이지만 말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말씀하시며

세 번이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라고 강조하신다.

'진실로'는 아멘이라는 의미가 있고, 아멘은 남의 이야기가 끝날 때 동의한다는 뜻이지만

주님은 먼저 자기 말을 확증하시며 말씀하시고 두 번씩 강조하시고, 세 번이나 말씀하신다.

요한이 좋아하는 게마트리아, 2는 증인의 수요, 3은 완전수 아니던가

즉 예수님은 내 말이 맞다. 확증한다고 강조하셨다는 것을

요한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거듭남.

이성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주제이다.

육적, 물리적 사고에 갇힌 자들이 영적인 해석과 이해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결코 거듭남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님을 가리킨다.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셔야만 가능한 일이다.

요한은 물과 피로, 물과 성령으로, 말씀과 성령, 예수님과 성령의 사역을 강조한다.

거듭남 없이 하나님의 나라 이야기가 믿어지지 않는다.

거듭남은 육적인 사망과 영적인 부활의 증거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가 영적인 일을 이해할 수 없다.

영적으로 부활해서 다시 살아나야 이해할 수 있다.

영적인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에게 주어진다.

곧 거듭난 자들이다. 

 

죽어야만 사는 신비, 십자가의 신비

내가 죽어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게 되고 

그것이 영적인 부활이다. 

평생에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붙들고 살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이 하나님의 말씀들이 이해가 되고 믿어지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로 합당한 삶을 살게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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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빛을 찾아온 니고데모 ]

 

밤에 속한 니고데모가 빛이신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 3-6절)

거듭(히. 아노쎈, '위로부터') 태어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는 것을 하나님 나라 상속의 조건으로 확신했던 니고데모에게는 충격적인 개념입니다.

유대인으로의 출산 말고 두 번째 출산을 겪어야 하느냐고 반문할 정도입니다.

예수님은 혈통(육)으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 개념을 부정하시고,

하늘로부터 출생한 사람들,

'물 곧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세워 가는 새 이스라엘을 말씀하십니다.

그곳은 니고데모 같은 유대인들이 자격 없다고 생각하던 이들도 

성령으로 죄 씻음을 받고 다시 태어나 주인공이 되는 천국입니다.

 

(7-8절)

성령이 바람과 같다고 하십니다.

바람과 성령은 같은 단어입니다(헬. 프뉴마).

바람은 그 기원과 실체를 몰라도 부는 소리와 닿는 느낌으로 그 실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존재 역시 인간의 모든 설명과 이해를 무력하게 하는 하나님의 주권과 신비에 속했지만,

성령으로 난 이들의 삶의 모습으로 성령의 실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성령의 존재를 증명하는 거듭난 사람입니까?

 

(13-15절)

'하늘에서 내려온 자'이신 예수님은 광야의 놋뱀처럼(민 21:4-9) 십자가에 못 박혀 들리실 것입니다.

광야의 놋뱀이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제공하신 구원의 길이듯,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죄와 사망에 갇힌 백성에게 하나님이 주신 영생의 길입니다.

니고데모의 질문인 '사람이 어떻게 거듭나는가?'에 대한 답은

결국 '십자가에서 들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주어진 새 삶을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여생으로 바치는 자에게

영생이 주어질 것입니다.

십자가에 내 삶을 거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1-2절)

니고데모는 그저 이목을 피하려고 '밤'에 왔을 수 있지만,

요한복음에서 '밤'은 영적 어둠을 의미합니다(9:4, 11:10, 13:30).

어둠에 속한 니고데모가 빛이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빛으로 나아온 어둠은 훗날 예수님을 옹호하고(7:50-51) 따르는 (19: 39) 사람이 됩니다.

빛은 연약하고 답답한 사람을 설득하고 다독이며 빚어 가십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거듭난 삶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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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믿음의 유일한 근거 ]
찬송가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표적을 소개한 후에

성전 청결 사건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거듭남, 곧 성령세례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살아나는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거듭나지’로 번역된 헬라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위로부터 나지’입니다. 

3절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자 

그 말을 받아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네가 나를 하나님께로부터 즉 하나님 나라로부터 온 선생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뭔가를 알고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위로부터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는 것인데...’ 이런 의미입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 위로부터 나는 것이라고 다시 설명하십니다. 

늙은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느냐고 니고데모가 물었고, 

예수님은 그에 대답하셨습니다. 

위로부터 나는 것은 늙은 사람이 젊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과정이며 

이는 성령세례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말을 통합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성령세례입니다. 

성령세례는 단순히 성령으로 능력을 받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일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았지만 세례를 받지 못하였다면 

위로부터의 거듭남, 구원과는 무관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 다시 살아난 듯한,

 마치 새 생명을 얻은 듯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 없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는 자기 부인의 세례 없이, 

성령의 능력만 받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과정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믿는 자에게 임하신 그리스도의 영을 힘입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위로부터 나는 것 곧 거듭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새 생명으로 사는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엉뚱한 길을 걷는지 모릅니다. 

복음을 믿는다 하면서, 부활의 복음만 믿습니다. 능력의 복음만 믿습니다. 

십자가의 복음, 자기 부인의 복음을 따르지 않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에게 부활의 복음은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자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갈 6:14). 

물론 ‘자동으로’라는 표현은 엄밀하게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노력과 열심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오직 성령께서 이루어가시는 일이라는 의미에서 ‘자동으로’입니다. 

자기 부인의 믿음이 확실한 자에게는 

반드시 성령께서 임하셔서 

부활의 새 생명, 새 영의 생명을 만들어내십니다.

십자가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여 

위로부터의 새생명, 영생을 얻게 하는지 그 과정을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십니다. 

땅의 일, 땅의 생명도 잘 모르는 자들이 

하늘의 생명 현상을 이해할 수 있을 턱이 없다고 하십니다(12절).

그러나 그 생명을 보게 되면 

그것이 위로부터의 생명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예수님에게서 나타나는 것을 볼 때(14절),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 복음의 길을 따라올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15절). 

과연 예수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만져 본 사도들이 

위로부터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었을 때, 

그들은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로마의 일개 군병이 무서워 도망가서 숨어 있던 그들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당당하게 믿음을 고백했습니다(행 4:6-20). 

육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던지는 순교의 믿음을 발휘했습니다.

생명이 무엇인지,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 현대의학으로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인지 아닌지, 그것이 생명체인지 무생물인지는 어린아이라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생명작용을 보고, 생명작용의 결과를 보고, 그것이 생명인지 아닌지 아는 것처럼 

위로부터 난 생명의 사람인지 아닌지도 성령의 역사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8절). 

비록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8절).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믿음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무에서 유가 창조되며, 언제 어떻게 시간이 시작되고 끝이 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일들임에도, 

우리 눈에 빤히 보이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들임에도 그렇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에 관한 것을 어떻게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일, 영원에 관한 것, 성령의 깊은 것은 인간의 이해력으로 납득 되지 않습니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상상도 되지 않는다고, 무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께서 그 이해 불가한 하늘의 사건들을 

이 땅으로 가져와서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2, 11, 13절).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부활의 생명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몰라도(8절) 

십자가에 들리신 예수님께 분명히 그 생명 있음을 확인했으면 

이제 예수님 믿어야 합니다(14-15절).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 결론은 이것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영원한 생명에 관한 것은

이해할 수도 없고, 그 과정을 온전히 인식할 수조차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위로부터 오신 분,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유일하게 예수님만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으로서, 또한 하늘에 올라간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도들이 목숨을 걸고 증언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고 

부활의 생명, 영원한 생명, 하늘로부터의 생명이 실재함을 확인하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영생을 이해하고, 구원을 이해하며, 

천국이 어떤 곳인지 충분히 납득하게 되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유일한 근거는 예수님이십니다. 

이 땅에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보고 하나님을, 영생을, 천국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위로부터 오신 분,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붙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붙들고 예수님의 길 따라가면, 이 위로부터의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위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는 것은,

그 길을, 그 원리를 이해하고 깨달아서 스스로 찾아감으로써가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붙어서 따라감으로써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얻는 구원입니다.

이 믿음의 첫걸음은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죽은 자 곧 영원한 생명에서 끊어진 자임을 인정하며 

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주실 유일한 분에게 나의 전부를 의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어떤 인간도 영생의 부활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무덤에서 살아난 나사로도 결국 다시 죽었습니다. 

유일하게 영생의 부활을 우리에게 확증해주신 그분과 함께 죽으면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 줄로 믿습니다. 

유일하게 하늘의 생명을 우리에게 확증해 주신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죽는 것은 우리 일(믿음)이요,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일(은혜)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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