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믿음이란 ...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2. 8. 06:59

2026.2.8. 주일

요한복음 3장 22-36절

 

- 흥하는 예수님과 쇠하는 요한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 들러리의 기쁨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도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

이야기는 계속 하늘로부터 오신 이에 대하여 계속된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고

그는 위에서 친히 보고 들은 것을 말하시고

만물 위에 계시매 

성령을 한량없이 주신다고 말한다.

아버지께서 이 아들을 사랑해서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고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그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는 영생 대신 진노가 머물러 있다고 한다.

 

저자는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하여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하늘로부터 오신 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며 성령으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이시고

그를 믿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다.

 

세례 요한의 입을 통해 자신은 자신의 사역을 다했으니 쇠하여야 하고

이제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펼쳐져야 하기에 흥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은 신랑 들러리의 기쁨에 만족하고, 사역 완수에 감사해하는 겸손한 모습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유명 은퇴목사들의 작금의 행태를 보면 너무나 비교가 된다.

나 또한 세례요한처럼 장로직을 은퇴할 때 조용히 내려놓을 것이다.

 

주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하고 만물을 다스리셔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이 아들을 믿어 영생에 이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모든 민족, 모든 족속, 모든 열방이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세례 요한의 겸손을 닮아 욕심과 야망에 눈 멀지 않고 미련 갖지 않고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에게 맡겨진 사역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행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겸손하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예배하는 주일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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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나라의 조연 ]

 

세례자 요한은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을 증언하고 그분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31-36절은 왜 그리스도가 흥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면서 3장을 요약합니다.

 

(31-34절)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참되신 분으로 인정하면서 예수님을 증언을 무시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한 뜻이십니다.

위로부터 오셔서 만물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한량없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신 예수님 말씀을 못 알아듣는 것은

땅에 속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진정한 복은

세상의 찬사와 영광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35-36절)

예수님만이 온 세상을 다스릴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은 왕이시기에,

그분을 믿고 순종하는 삶만이 영생의 길입니다.

'믿음'과 '순종'이 동의어처럼 쓰이고, 

지속을 나타내는 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믿음과 순종을 지속하는 삶 자체가 이미 영생이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이미 진노 아래 있는 삶입니다.

 

(24-28절)

요한이 옥에 갇혀 참수당하지 않고 살아있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주연이신 그리스도를 빛내는 조연으로 살 때만 그의 삶은 의미 있습니다.

그 역할이 끝났다고 부귀영화가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종교 권력의 혜택에서 멀리 떨어진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한 그를 기다리는 것은

편안한 노후가 아닌, 투옥과 참수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세례 요한의 삶을 헛되다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그를 부르신 하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27-27절)

요한은 자기 한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사역했고, 주신 만큼 사역했고, 주신 때까지 사역하다 

이제 끝났다고 고백합니다.

중요한 일인지를 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 일을 허락하셨는지, 능력을 주실 일인지 묻는 것입니다.

 

( 29-30절)

친구의 기쁨이 신랑의 기쁨에서 나오듯,

요한도 제자들과 추종자들을 잃은 서운함과 슬픔보다

순결한 백성을 보고 기뻐하시는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이 주인공 되시는 것,

우리에게도 삶의 이유이자 목표여야 합니다.

 

주님이 저로 인해 기뻐하시는 것이 제 삶과 기쁨의 이유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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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 요한이 가르친 믿음(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 ]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납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예수님께로 가서 세례받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때문에 

요한의 제자들이 마음이 상했습니다. 

세례요한이 바르게 가르쳐(27-30절) 이 갈등을 잘 해결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세례요한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요한(1:40)은 

그의 옛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배운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의와 품위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품위 없는 행동이라고 질책하며 그들을 다독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신과 비교할 수 없는 분, 하늘에서 오신 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자신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으니, 

예수님을 자신과 비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일축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고백을 베드로보다 훨씬 먼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1:49절에 나오는 나다나엘입니다. 

그러나 고백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실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장 먼저 믿고 증언한 사람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1:34).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처음 본 순간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이 믿음은 곧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됩니다(33절).

아무리 선지자들을 보내어 말씀하여도, 

아무리 기적을 일으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어도, 

인간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최후에 동원하신 방법이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3:16). 

이 아들을 보고도, 이 아들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진노가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입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을 계속 듣는 것의 목적은, 

단순히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은 순종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어쩌면 그 반대가 더 맞는 말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36절)를 영어로는 believe in Jesus 라고 씁니다. 

헬라어에서는 더 분명하게 ‘피스튜오 에이스’라는 표현을 씁니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을 맡기는 것’을 ‘믿는다’라고 표현합니다.

믿음(belief-in)은 그때그때 사안별로 예수님께 순종하는 

일시적인 마음 자세나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은 근본적인 ‘자기 부인’을 통해, 

예수님께 자신의 전인격을 복속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신분과 인격의 변화에까지 이르는 관계 확정입니다. 

예수님은 만물 위에 계시고 자신은 땅에 속하였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가까이 나오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로 여전히 남아 있으면서 

예수님을 더 존경하고 예수님께 우선적으로 순종하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온전한 믿음의 상태가 아닙니다. 

믿음은 세례요한의 제자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믿음(belief-in)은 예수님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의탁 관계, 복속 관계입니다. 

예수님 밖에 있으면서, 예수님을 지지하고 존경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대한 성인이나 스승 정도로 여기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뜻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믿게(to believe-in)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belief-in)에는 당연히 복속과 의탁이 포함됩니다.

주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만물 위에 하늘에 계신 분이십니다. 

땅에 속한 우리를 하늘로 끌어 올리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께 내 영혼을 온전히 의탁하오니 

하나님 나라(하늘)로 끌어 올리시어 하늘의 생명으로 채워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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