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9 월요일
요한복음 4장 1-14절
- 사마리아로 향하시는 예수님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께서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 사마리아에서 만난 여인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내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느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은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사역지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향하신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요한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푼다는 사실을 알았다.
괄호 안에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었다는 말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떠나셔야 했던 이유를 엳볼 수 있다.
당시에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기 위해 사마리아를 둘러 다녔는데
구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신다.
요한은 예수님의 의도성, 계획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예루살렘에서 수가 성에 이르자 더위에 지치고 목말라 우물 곁에 주저 앉으셨다.
마침 12시가 되었고 시장하자 제자들은 음식을 구하러 동네로 갔고
때마침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우물로 온다.
물이 화제가 되어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대화를 시작하신다.
목이 말라 물을 좀 달라 하는데 당시 관습을 구실 삼아 왜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 반문한다.
그러자 내가 누군지 아느냐? 하나님의 선물이고 생수를 주는 사람이다고 하신다.
그때 여인은 야곱이 지금까지 후손들이 사용해도 마르지 않은 깊은 우물을 주었는데
이보다 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우물을 줄 수 있다니 그러면 야곱보다 당신이 더 크냐고 묻는다.
이야기가 헛도는 느낌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을 줄 수 있고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고 하신다.
목마름. 육적인, 영적인 목마름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이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평생을 발버둥치다가 죽는다.
예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하신다.
아니 그 속에서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신다.
인간은 매일 이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살아간다.
이 목마름을 우리의 노력으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
이것을 인정하고 목마름을 해결해 주실 분, 그분을 의지해야 한다.
이 목마름을 해결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이 목마름을 영원토록 해결해주실 분이시다.
주님
당신만이 나그네 인생길에 만나는 갈급함과 목마름을 영원히 해결해주실 분임을 믿습니다.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주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겠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명수를 받아 누리며 살겠습니다.
성령이여 이 생수의 근원 되시고 공급자 되시는 주님을
영원히 의지하고 붙들며 살아가게 도와주소서.
--------------------------------
[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
3장의 니고데모와 대조되는 인물인 사마리아 여인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물을 길으러 온 이 여인에게
자신을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수'로 소개하십니다.
(5-10절)
먼저 다가와 말씀하시는 은혜로운 하나님이십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과거 북이스라엘의 후손으로,
정복한 지역 민족들을 통혼시키는 앗수르의 정책에 의해 민족적 순수성을 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이민족과 같이 부정하게 여겨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유대인인 예수님과 그 어떤 소통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에게 다가가 물을 달라고 말을 거셨습니다.
이어서 여인에게 생명의 물을 말씀하시며 구원의 길로 초대하셨습니다(10절).
우리도 바로 이 은혜의 초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15:16, 요일 4:10).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시고 대가 없이 사랑을 주신 분입니다.
(11-14절)
우리의 참된 만족과 평안이시며, 영생의 소망이십니다.
우물 물만 떠올린 사마리아 여인은,
물 길을 그릇도 없는 예수님이 생수를 주시겠다고 하자 의아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이 주는 물은 세상의 물과 달라
영혼의 갈증을 채우고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참으로 풍족하게 하시고 불안한 마음을 잠잠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수 있습니다(6:35, 14:27, 15:11).
주를 믿고 주께 나아가 주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생명의 샘물을 마셔야만
삶의 헛헛함이 충만하게 채워집니다.
(1-4절)
마음속에 있는 혐오의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유대 지방에서 갈릴리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멸시하고 꺼려 요단 동편으로 우회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부러 사마리아 길을 택하셔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장벽은 무엇입니까?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편견과 미움 때문에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로막는 일입니다.
값없는 사랑으로 막힌 담을 허물고 우리에게 오신 그리스도처럼(엡 2:14),
우리도 마음의 벽을 허물고 사람과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웃에게 영생의 샘물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
[ 말을 거시는 예수님 ]
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예수님이 유대를 떠나십니다. 시기로 배척을 받아 떠나십니다.
1절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들었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이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세례요한을 견제하던 그들이
이제는 더 큰 경계심과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십니다.
그렇게 떠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분노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배척받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의 한 동네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보통의 유대인들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갈 때 사마리아를 우회하여 둘러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셨습니다.
지름길이기 때문에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전에도 그리하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당연히 그리하신 것입니다.
더구나 이번에는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야 할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오랫동안 유대인들에게 배척받아 목말라하는 그들에게 생수를 주실 때가 된 것입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는 표현의 뜻이 이것입니다.
사마리아의 한 동네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특별히 한 여자에게 주목하십니다.
한 여인에게 접근하십니다. 물을 좀 달라고 하시며 그렇게 말을 거십니다.
퉁명스럽게 대하는 여자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진짜 의도를 알려주십니다.
사실은 그에게 생수를 주고 싶어서 말을 걸었다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을 주고 싶어서 야곱의 우물물 한 바가지를 달라고 했다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을 거시는 것은, 뭔가를 달라고 하시는 것은,
사실은 우리에게 긴급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무엇을 주시고 싶어서입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그리하셨고 사마리아 여자에게 그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침묵하시는 것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말을 거실 기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때가 되어 말을 거실 때 알아차려야 합니다.
내게 뭔가를 달라고 하실 때, 뭔가를 내 놓아보라고 하실 때 눈치채어야 합니다.
‘아, 하나님께서 내게 하실 말씀이 있구나! 하나님께서 내게 뭔가를 주고 싶으시구나!’
그것을 모르고 나는 우물가의 여인처럼 의심과 경계의 마음으로
예수님께 퉁명스럽게 대하고 있지 않은지요.
아니 사마리아 여인보다도 더 못되게, 아예 말도 섞지 않고 멀찌감치 도망가 버리지 않았는지요.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를 시켜 마지막 떡을 내놓으라고 하시는 하나님께
나는 너무 심하지 않으시냐고 화를 내며 돌아서 버리지 않았는지요.
“주님, 내게 뭘 더 내놓으라고 하지 마세요. 내게 주신 것도 없으면서 뭘 더 내놓으라고 하십니까?
이미 충분히 가져가셨습니다. 더 이상은 나도 못합니다.” 이러지 않았는지요...
사마리아 여인이 그랬던 것처럼 퉁명스럽게 대하긴 했지만
예수님을 아예 떠나버리지는 않은 것이 다행한 일입니다.
거리를 두었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예수님과 계속 대화한 여인처럼,
기도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비록 온전히 성실하지는 못하였지만
말씀을 듣는 자리에 아직 머물러 있는 것이 진짜 다행한 일입니다.
매일말씀묵상! 매일정시기도! 이것만은 버리지 말아야겠습니다.
예수님 떠나지만 않으면 여전히 희망이, 소망이 있으니까요.
아멘~!
'2026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적 양식 (0) | 2026.02.11 |
|---|---|
| 참된 예배란 ... (1) | 2026.02.10 |
| 믿음이란 ... (0) | 2026.02.08 |
|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 (0) | 2026.02.07 |
| 거듭남 (0) | 2026.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