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11. 목요일
요한복음 4장 27-42절
- 제자들이 돌아옴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 사마리아 여인의 증언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 예수님의 양식과 추수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노라
- 사마리아 사람들의 믿음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게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
여자는 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들어 갔을까?
그녀는 진정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을까?
그 감격에 동네 사람들을 부르러 간 것인가?
아마도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그리스도라 믿었던 것이리라.
목마른 영혼에 생수를 주시자 마신 여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지는 은혜를 누리게 된 것이리라
예수님은 자신의 양식이
자기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은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시는 일이다.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일이다.
이 일이 양식처럼 중요하고 꼭 행하여야 할 일이다.
나는 이 일에 얼마나 참여하고 중요도를 인식하고 있는가?
사마리아인들이 여자의 전하는 말로 막연하게 예수님을 믿었다면
이틀 동안 예수님이 전해 주시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성경 다른 곳에는 예수님이 이틀 동안 한 곳에 유하시며 말씀을 전하셨다는 기록이 없다.
유대인과 상종하지 못하여 전혀 복음을 듣지 못하는 그들에게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는다.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그들이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예수님으로부터 이렇게
많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이며 그들의 복이다.
남이 전해준 말이 아니라 내가 직접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말씀을 들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해야 한다.
주님
날마다 새벽 이 시간에 주님을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이 만남이 주님을 직접 만나는 날까지 계속되게 하여 주소서.
주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나의 믿음이 더 견고해지게 하소서.
주님 영혼 구원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닮아 오늘도 복음 전하는 자로 살겠습니다.
주님의 양식이 나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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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수할 때가 되었도다 ]
여인이 동네로 들어간 후,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자신의 양식임을 밝히시고
영적인 추수의 때가 이미 이르렀음을 가르치십니다.
(28-30, 39-42절)
우리의 전도를 열매 맺게 하십니다.
여인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홀로 우물가를 찾을 만큼 공동체에서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곧바로 마을로 들어가 예수님을 담대히 증언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여인의 마음을 변화시키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셨다면
마을 사람들 또한 여인의 증언만을 듣고 유대인인 예수께 나아올 수도,
그분을 '세상의 구주'로 고백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전도의 도구는 은혜로 변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전도의 열매는 인간의 설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마음을 여시고 역사하시는 결과입니다(참조 행 16:14, 고전 3:7).
(31-34절)
제자들이 음식을 권하자,
주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복음을 전하러 달려간 간 바로 그때,
예수님은 이미 영적 양식으로 만족하셨습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이 생명의 길로 돌아오는 기쁨이 주님의 배부름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 사명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돈이나 인정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서 오는 기쁨이 우리의 생명력이 되어야 합니다.
(27절)
제자들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기면서도 묻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사마리아 사람을 가까이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외면한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님의 분명한 말씀과 역사를 부러 못 본 체하지 않습니까?
(35-38절)
지금이 바로 추수할 때입니다.
제자들은 "추수 때가 이르려면 시간이 남았다"고 여겼지만,
예수님은 눈앞의 사마리아를 가리키며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 말씀하십니다.
복음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열매 맺는 생명력입니다.
여인의 한마디로 마을에 구원이 다다랐듯,
우리의 작은 순종이 하나님의 큰 수확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복음의 일꾼은 때를 재지 않고, 씨를 뿌리고 추수를 기뻐하는 사람입니다(딤 후 4:2).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오늘도 복음의 일꾼으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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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밖의 수확 ]
찬송가 496장 새벽부터 우리
제자들은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거쳐서 행로를 잡을 때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 의도가 있으셔서 그렇게 하신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도 따져 묻지 않습니다.
갈급한 영혼을 찾으신 예수님의 전도는 효과 만점이었습니다.
참 예배의 길을 가르쳐준 예수님이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셨을 때,
사마리아 여자는 즉각 믿음에 이르렀습니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달려갈 정도로 즉각적인 반응이 그녀에게 나타났습니다.
마을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자기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증언합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겪은 오랫동안의 가난과 고초는 ‘믿음’이라는 선물로 보상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 상하고 메말라 있어서 아무런 결실의 소망이 없어 보이는 곳이
오히려 풍성한 결실을 가장 잘 준비하고 있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적어도 믿음의 농사에 있어서는 그렇습니다.
믿음은 애통과 가난을 먹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추수할 때가 아직 멀었다고 이야기하고,
여기는 추수할 곳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저기를 봐라.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곡식들이 바로 저기에 있지 않느냐?”
사마리아 사람들을 보시며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말라비틀어진 그 곡식들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은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하십니다.
구약시대로부터 무수한 선지자들에 의해 뿌려진 말씀의 씨가,
마치 버려진 듯했던 씨가,
결실하여 추수를 하게 되는 감격스러운 현장에
지금 주님은 서 계시는 것이며
그것을 뿌린 자들과 함께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으로 배고픔을 잊은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상한 심령의 소유자들,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알곡(?)들이 몰려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배척받고,
고향 갈릴리에서도 배척받는 예수님을
사마리아의 알곡(?)들이 가장 먼저 그리스도로 영접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배신자라고 여기며 상종도 하지 않던 사마리아인들이
어떤 유대인들보다도 먼저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이것은 뜻밖의 수확이었습니다.
열심히 심었던 유대에서는 수확을 얻지 못하고,
엉뚱한 사마리아에서 결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참 기쁨이 넘칩니다.
참 기쁨은 모두가 동시에 한 마음으로 즐거워하는 기쁨입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가 넘쳐서 일어나는 기쁨만이 그런 기쁨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 가족의 기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한 몸 된 자들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36절의 ‘함께’는 ‘동일한 장소 또는 시간에’의 뜻입니다.
내 몫과 내 지분. 내 영광 때문에 일어나는 기쁨은
모두가 동시에 기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런 경우에 동시적으로는
누군가는 적게 받고 누군가는 덜 영광스러운 상황이 반드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우리 모두를 동시에 기쁘고 즐겁게 만듭니다.
심지 아니한 자가 거두게 되는 것이 전도의 원리입니다.
심은 자도, 거둔 자도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심은 자의 지분이 크겠습니까, 거두는 자의 지분이 크겠습니까?
당연히 심은 자입니다.
심기 위한 노력이 거두는 노력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이 심은 자가, 노력한 자가 결실을 거두었다면
당연히 자기 노력의 댓가로 여길 것입니다.
은혜로 여기며 감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구원을 은혜의 선물로 알고 감사의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심지 않은 자가 결실을 거두게 하십니다.
[4:37-38] 37.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전도는 다른 누군가가 심은 것을 거두러 가는 것입니다.
전도는 다른 누군가가 거둘 것을 기대하며 심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내가 참여하여 쓰임 받았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결실이 많다고 해서 의기양양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전도의 결실이 없다고 해서 의기소침하지도 말아야겠습니다.
뜻밖의 수확을 두고, 심은 자를 생각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함께 영광을 돌리는 기쁨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주님, 우리에게도 이런 결실의 기쁨, 뜻밖의 수확의 기쁨을 주옵소서.
주님이 예비하시고 먼저 심은 자들에 의해 준비된,
상한 심령을 찾게 하시고 만나게 하시고 추수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가 수확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누군가에 의해 거두어지는 은혜의 때를 기대하며 심을 수 있게 만드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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