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자비의 집에 자비를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2. 13. 07:06

2026.2.13. 금요일

요한복음 5장 1-15절

 

-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이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 안식일의 치료를 문제 삼은 사람들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 의도적으로 38년된 병자를 찾아 가셨다.

38년은 출애굽 백성들이 광야를 헤매된 기간이다.

이는 불신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광야를 유랑하던 것을 상징한다..

병자는 율법의 굴레에 눌려 살아가는 자들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병자나 출애굽 백성이나 나의 모습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이 표적은 요한이 기록한 세번째 표적이다.

갈릴리에서 두 번의 표적

(1.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표적,

  2.가버나움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을 기록하고,

예루살렘에서 첫 번째 그리고 요한복음의 세 번째 표적이다.

 

이 표적은 오래 병들었던 자를 고치신 사건이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런데 이는 공교롭게도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으로 유대인들이 시비를 걸게 되는 빌미가 되었다.

왜 예수님은 자리를 들고 가라고 지시하셨을까?

왜 구지 안식일에 베데스다를 찾아 병자를 고치셨을까?

요한은 예수님의 의도하심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진정한 안식일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자 하심이다.

 

병자의 병고침에 함께 기뻐하지 않고 안식일 규례를 범한 것에만 추궁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본다.

일의 본질을 보기 보다 부차적인 문제들에 관심과 이목이 집중된 안타까운 모습이다.

신앙의 본질, 교회의 본질, 교회 사명의 본질, 구원의 본질....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볼 것을 보고, 들을 것을 듣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

 

38년된 병자의 모습은 참으로 과관이다.

예수님이 낫고자 하고 물으시는데 못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들어 불평,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자신을 고쳐주신 분에게 감사하는 것이 상식인데 그런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다시 예수님을 만나 자신을 고쳐주신 분이 예수님임을 알자 유대인에게 고자질한다.

 

병자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

상황과 형편에 불평불만으로 지내지 말자.

구원받은 것 하나만으로 만족하고 나그네 인생길 걸어가자

구원받았으니 이 구원 잃어버리지 않도록 이 믿음 단단히 붙잡고 거룩하게 살아가자.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질문하실 것 같다.

"낫고자 하느냐"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일어나 걸러가라"

 

주님은 못하실 일이 없으시다.

병고침의 희망이 사라진 소망없는 자를 찾아 가셨다.

38년된 병자는 고침 받을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주님이 찾아가시고 고쳐 주신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주님

38년된 병자와 하등 다를 것 없는 죄 많은 저를 찾아와 주시고 구원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 수 없는 인생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육적인 고침을 받았으니 죄 짖지 말라하시는 주님의 당부의 말씀처럼

하나님 말씀 붙들고 정결하게, 거룩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성령님 나를 온전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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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데스다에서 생긴 일 ]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가신 예수님은

베데스다를 찾아가시고 그곳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십니다.

 

(1-6절)

자비 없는 세상 속으로 자비를 품고 찾아오십니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라는 이름과 달리 자비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병자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며 서로 먼저 들어가야 산다고 믿었습니다.

자비 없는 경쟁이 지배하는 그곳에 방치된 38년 된  병자는

구원받지 못한 인간의 무력함을 상징합니다.

그에게 다가오신 예수님의 첫 질문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였습니다.

절망 속에서 희미해진 의지를 다시 일깨우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비정한 세상에서 허덕이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자비하신 주님의 품으로 초대하십니다.

 

(7-9절)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도 우리를 붙잡고 일으키십니다.

창조의 말씀(1:1)이 눈앞에 계신데도 병자는 "나를 연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며,

예수님을 고작 물에 들어가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 정도로 기대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부족한 믿음을 무시하시고 일방적인 말씀으로 그를 일으키십니다.

연약한 믿음일지라도 매일 성경을 놓지 않으면, 말씀이 먼저 우리를 붙들고 살게 할 것입니다.

 

(10-13절)

율법의 형식을 넘어 생명을 살리십니다.

안식일에 치유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유대인들이 분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은

율법을 깨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참된 안식을 회복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안식일은 멈춤의 날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새창조를 이루시는 날입니다.

유대인들이 규정에만 갇혀 있을 때, 예수님은 안식일에 생명을 불러넣으셨습니다.

교회가 세상적인 성공을 복이라 불러 주고 경쟁과 차별을 부추긴다면,

예수님이 회복하신 안식을 빼았는 곳이 되고 말 것입니다.

 

(14-15절)

치유는 끝이 아니라 새 삶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그를 만나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육체의 회복보다 영혼의 회복을 바라보셨습니다.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 치유는 또 다른 병의 시작입니다.

은혜는 일회성 기적이 아니라, 거룩한 삶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무력한 기다림의 자리에 오셔서 말씀으로 새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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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의 집 베데스다? ]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베데스다’는 집을 뜻하는 ‘벧’과 은혜를 뜻하는 ‘헤세드’가 결합된 말(벧헤스다)입니다.

‘은혜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를 기다리는 곳입니다.

물의 움직임을 기다린다고 기록하였습니다.

[  ] 안의 내용이, 보다 중요한 사본(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등)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부 사본(알렉산드리아 사본, 레기우스 사본 등)에 기록된 이 내용을 개역 개정 성경이 기록한 것은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께 하소연한 7절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함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이 은혜의 집 ‘베데스다’에서 낫고자 하는 열망이 있지만, 

나을 가망이 전혀 없는 병자에게 주목하고 다가가십니다. 

죄의 병을 앓고 있는 죄인의 모습을 그 병자에게서 보셨던 것입니다. 

죄의 병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벗어날 힘이 없는 상한 심령을 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시고, 이런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병에서 나은 사람을 다시 만나 이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 이 병자의 상황과 치유가 ‘죄’로부터의 구원을 설명하는 예화임을 알려줍니다(14절). 

병과 죄를 동일시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런 이해를 뒷받침합니다. 

38년 된 병자의 상황이 ‘죄’라는 병에 걸려 죽어가는 인간의 상황과 닮은꼴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모든 병의 원인이 죄라는 인식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은혜의 집 베데스다에서는 38년 된 병자의 병이 죄로 인한 것임을 확인하십니다. 

오직 은혜로만 치유 받을 수 있는 죄의 병을 은혜의 집에서 고쳐 주시는 것이 

메시아 되신 예수님께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임을 드러내십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에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주장하십니다.

베데스다에 이상한 미신이 퍼져 있었습니다. 

천사가 물을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미신이었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가 선착순에 의해 주어진다는 미신이었습니다. 

제일 열심히, 오래 믿은 자가 가장 복을 많이 받는다는 미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미신을 깨뜨리셨습니다. 

오직 구원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으로써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법은 은혜의 법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스스로 자기를 돌볼 수 있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예수님도 찾아가시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이 찾아와서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어도,

“아, 됐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자신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병, 

그 병명을 ‘죄’라고 하는 병에 걸려있음을 아는 자들은 실력을 내세울 수 없습니다.

 “능력에 따라 대접해 달라” 이런 이야기 못 합니다. 

능력대로, 실력대로 하면 다 죽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오직 “주여,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라는 기도밖에 할 수 없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물으셨을 때 발하여진, 

38년 된 병자의 답변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은혜의 집 베데스다는 교회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실제의 베데스다는 그 안에 은혜의 원리가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베데스다가 정말 은혜의 집이었다면, 거기에는 38년 된 병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천사가 물을 움직이게 했을 때, 

모두가 양보하여 38년 된 병자가 진즉에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병자는 ‘은혜의 집’에 무려 38년이나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배려 받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가 가장 우선적으로 보살핌을 받는 곳이 바로 은혜의 집입니다. 

그러니 베데스다는 결코 은혜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약육강식의 사회였습니다. 실력 있는 자가 우대받는, 이 세상과 똑같은 곳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 교회는 과연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는 찬송을 

진심 어린 고백으로 부르는 교회일까, 

정말 '은혜'밖에는 내게 소망이 없음을 고백하는 교회일까...

주님,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주 예수님의 은혜에 사로잡히는 길밖에 없는데도, 

자꾸 스스로의 노력으로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망상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습니다. 

내 실력과 능력으로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주께만 소망을 두고, 주님께 소원을 간절히 구하는 믿음으로만 나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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