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14. 토요일
요한복음 5장 16-30절
-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인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 아버지의 아들의 관계
그러므로 에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시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 생명을 주는 아들의 권한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히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 심판하는 아들의 권한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
...................................................
요한은 예수님이 유대인으로부터 핍박받는 이유 두 가지를 명확히 한다.
첫째는 안식일을 범함이요,
둘째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여 하나님과 동등한 자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어 예수님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로 설명하신다.
그리고 아버지가 하신 일들(기적)을 보았고 자신도 따라서 하고 있으며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셔서 더 큰 일들을 보여 주셨다고 하신다.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임을 선포하시고 안식일의 참 의미를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이 구원에 필요한 모든 권한을 아들에게 주셨다.
아들 안에 생명이 있어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으며
또한 심판의 권세도 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을 믿고 공경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고 공경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논지를 펴신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기름부은 자, 그리스도이시에 그렇다.
따라서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시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다고 하신다.
이것이 구원의 핵심이요, 예수님만을 믿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 복음이 들려지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다고 하신다.
이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이 음성을 듣고 선한 일을 하는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하는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일이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권위를 앞세우신다.
복음과 구원의 내용이 오늘 본문 안에 다 들어 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참 안식에 들어가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구원을 받았으며 영생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판의 권세가 아들에게 주어졌고
모든 사람은 죽어서 심판을 받을 것인데, 그 심판 결과에 따라서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로 나뉘어 질 것이라고 구분하신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뚯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신다.
즉 구원은 성부 하나님의 계획 하에서 이루어지며
예수님은 그 구원 계획을 실행하시는 분이심을 명확히 밝히신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 메시아시고
하나님이 주님께 모든 권한을 주시고 구원을 이루어가게 하심을 믿습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영생을 허락하시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셨다는 것과
주님이 생명의 주, 구원의 주로 오셨고, 다시 심판주로 오실 것도 믿습니다.
주님이 나의 주와 그리스도 되심을 고백합니다.
이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며 믿고 날마다 고백하며 살게 하소서.
더불어 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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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심판의 권세 ]
안식일 논쟁 속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관계'와 '생명과 심판의 권세'를 드러내시며,
아들을 믿는 믿음이 구원의 길임을 보여 주십니다.
(17-20절)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그대로 하십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일을 두고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하자,
예수님은 하나님이 안식일에도 창조세계를 돌보시는 것처럼
자신 역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안식일의 본래 의도대로 참된 쉼을 주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은 아버지의 일과 일치하며,
이로써 예수님은 자신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고백하는 우리는
오늘 아버지의 일에 어떻게 동참하고 있습니까?
누군가에게 참된 쉼과 생명을 전하는 일,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21-23절)
하나님이 가지신 생명과 심판의 권한을 동일하게 지니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생명을 주실 권세와 심판하실 권세가 함께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거부하는 일 자체가 심판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24-30절)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아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심판에서 건져내고 부활의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만 참된 생명과 영원한 구원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은 자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으며, 다시는 정죄함에 이르지 않습니다.
믿는 자의 구원과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확보되었습니다.
(16절)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모든 일을 멈추고,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언약을 기억하며
그 안에서 쉼과 회복을 누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그들의 열심은
점차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안식일의 참된 의보다 형식과 규율을 더 중요시하고,
결국 그 범위를 오해하여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선한 일조차 금지하는 모순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도 신앙의 특정 형식에만 매여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셨던 주님처럼, 저도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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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하게 하는 일의 전권을 위임받으신 예수님 ]
찬송가 43장 즐겁게 안식할 날
안식일 논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계명의 세부적인 실천 사항을
‘미쉬나’라는 생활규범(장로들의 유전)에 담아두었는데,
여기에는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에 속하는 39가지가 들어 있었고,
그중 하나가 안식일에 물건을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38년 된 병자가 병이 나아 자기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에서 발단하였습니다.
이날은 안식일이었고, 이 병자가 그렇게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이
단순히 부주의 중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자기를 낫게 해 준 분이 명하신 것을 따른 것이라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나중에 이를 문제 삼을 때 이 사람이 한 대답을 보면,
이 사람은 미쉬나 안식일 규례의 권위보다 예수님의 권위를 더 존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과의 안식일 논쟁에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고 하심으로써 이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논쟁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불러일으키셨습니다.
진정한 안식이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의 진정한 의미를 이미 안식일 계명을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안식일 계명은 여러 곳에,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지만 대표적으로 십계명에 주어져 있습니다.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의 두 군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곳에서의 안식일 계명이 서로 조금 다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로 든 조건이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인 다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 하나님께서 주신 같은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두 곳에서의 차이점을 통해
안식일 계명의 본질과 정신이 무엇인지를 더욱 명확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출애굽기 20:11절에서 하나님은 안식일 계명을 주신 이유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완성하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5:15절에서는 다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낸 것을 기념하여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십니다.
이 두 가지는 문자적으로만 보면 서로 다른 이유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똑같은 이유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완성의 기념일이었습니다.
창조의 완성은 인간 구원의 완성으로 성취됩니다.
결국 안식일은 구원 완성의 기념일입니다.
구원의 핵심은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죄의 본질은 인간의 ‘자기 주장’ 곧 ‘욕심’입니다.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인간에게 안식이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불화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천지 창조를 완성하신 하나님께서 쉬신 것은
죄로부터의 구원 곧 완전한 안식을 첫 창조 속에 확정적으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단순히 물리적인 세계 창조를 기념하는 날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여 참 안식을 주는 분이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의 안식일과 출애굽기의 안식일이
동일한 안식일임을 가르치시며 이를 분명히 하십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단순히 일을 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일’을 쉬어야 했습니다(히 4:10).
안식일에 ‘자기의 일’을 쉬어야 하는 이유는
안식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노력과 열심을 접는 것,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들며 자기 일을 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히 누리는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단순히 일을 하지 않는 날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일을 쉬는 날이 안식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제사장과 레위인은 안식일에 평소보다 더 힘들게 일해야 했습니다.
자기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은 안식일에 마땅히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자아를 강화시키는 일’ 곧 ‘죄의 일’은 쉬어야 하지만
안식하게 하는 일, 곧 죄를 해결하는 일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죄의 문제를 해결(14절)하셨고,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17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우리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하게 하는 일을 아들에게 다 맡기셨습니다(20절).
아버지 하나님은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아들 예수님께
안식하게 하는 일 곧 구원과 생명, 심판에 관한 전권을 위임하셨습니다(21-22, 26-27절).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님께 일부 권한과 일부의 일만 위탁하시고
나머지는 직접 실행하시는 방식으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20절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동등하심을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라는 표현에서 헬라어 ‘필레오’를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마땅히 ‘아가파오’ 동사를 사용해야 하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이 동등한 관계임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필레오’를 사용했습니다.
필레오는 친구간의 사랑을 가리키는 동사입니다.
최고의 친밀함과 함께 위격의 구분을 표현하기 위해 아들,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뿐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는 사람의 아들과 아버지 관계와는 다르게 동등한 관계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전적으로 모든 것을 아들 예수님에게 위탁하시고
아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만 하시는 것,
이것이 성부와 성자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계획하고 실행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말씀과 하시는 일을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다른 경로로 하나님을 알고 믿는 믿음은
다 가짜요 따라서 악한 일(29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만 선한 자로 인정하십니다.
24절 말씀과 25절 말씀 그리고 29절 말씀은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한 말씀입니다.
24절에서 '나 보내신 이' 곧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25절에서는 죽은 자들이라도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난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시 29절에서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는 것 = 선한 일을 행하는 것=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악한 일을 행하는 것'(29절 하)은 그 반대가 되겠지요.
사람들이 저마다 각자의 하나님을 상상하고 그려내어, 자기 나름대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인간이 만든 미쉬나(장로들의 유전)의 안식일 규례로 감히 예수님을 핍박한 유대인들이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싫어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믿어 구원을 완성하기를 원하시기에,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의 의논하심 가운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체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어설픈 상상 가운데 헛된 하나님 섬기지 않도록,
예수님을 유일한 실체적 믿음의 대상으로 세우셨습니다
(23절, 시편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우리는 그래서 막연히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받습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의 유일한 위로와 안식은
이 땅에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께 안식과 생명의 전권이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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