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말씀 만으로 죽어 가는 자를 고치시다.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2. 12. 07:04

2026.2.12. 목요일

요한복음 4:43-54

 

- 갈릴리로 돌아오심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언하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소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오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

요한이 기록한 일곱 표적 중 두 번째 표적이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말씀으로 고치신 사건이다.

 

예수님은 이틀 동안 사마리아 수가 성에 머무셨다.

이방인같은 그들의 영접을 받았고, 함께 머물며 식사하고 말씀을 전하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 그리스도로 믿었다.

그러나 고향 갈릴리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친히 증언하셨는데 ....

그런데 본문은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들을 보았음으로 영접하였다.

예수살렘에서 행하신 일로 또 다른 기적을 볼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영접한 것인가?

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다는 구절은 없다. 

 

왕의 신하는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려는 절박한 심정에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예수님을 찾아 온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도 들었을까?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찾았을 것이다.

그에게 예수님을 믿었다는 증거는 없다. 

왕의 신하의 간청에 예수님은 느긋하시다.

표적과 기사가 없으면 믿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표적을 행하신다.

죽어가는 아들을 고치신다. 말씀으로....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아들이 나았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오던 종들을 만나 기쁜 소식을 듣는다.

아들이 나은 때와 예수님이 말씀하시던 때를 비교해 본 왕의 신하는

예수님이 말씀만으로 아들을 낫게하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고 자기와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는다. 

 

왕의 신하의 가슴이 어떠했을가!

터질 것 같은 기쁨으로 충만했을 것이다.

단지 말씀만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고치신 이 능력 많으신 분이 과연 누구인가?

하나님의 아들로, 구원자 메시아로 분명하게 믿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 능력을 보여 주는 표적이다.

말씀이신 예수님, 천하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 오셔서 오늘도 말씀하여 주시는 분이다.

 

이 새벽에 하나님의 말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앉는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고백한다.

이 살아 생명력 있는 능력의 말씀만을 붙들고 의지하며 살아갈 것이다.

 

주님

날마다 때마다 말씀으로 만나 주시고, 말씀하여 주시며, 말씀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이여 이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가르쳐 주시며 생각나게 하셔서

늘 말씀에 의지하여 살도록 은혜를 베푸소서.

휘포밈네스코, 디다스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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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보다 앞선 믿음 ]

 

예수님은 표적에 메이지 않는 믿음을 일깨우시며,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신 그 말씀 속에서 참된  구원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43-45절)

자신을 오해한 사람들의 환영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갈릴리로 가시며 "선지자는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지만,

뜻밖에도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예수님의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소외의 땅이자 폭동과 메시아 운동이 잦았던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오래 기다리던 정치적 해방자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릇된 기대에 찬 그들의 환영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찾거나 표적을 구하는 것은,

예수님을 높이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지 않고,

참된 예수님을 배우고 믿어 그분께 복종하며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예수님을 높이는 길입니다.

 

(46-50절)

표적과 기사를 보이시는 대신,

"네 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씀만 주십니다.

표적이나 기사를 보고 믿기보다 말씀을 듣고 믿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적을 쫓아다니지 말고,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1:1-3),

죽은 자를 살리는 말씀의 능력을 믿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말씀을 듣고 믿어 말씀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말씀은 없고 신비와 기적만 추구하는 신앙은 위험하고,  

아무런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신앙은 위태롭습니다.

반면, 영원한 말씀에 토대를 둔 신앙은 안전하며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온갖 체험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보지 못해도 듣고 믿는 자는 복을 누립니다(20:29).

 

(50-53절)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적과 기사를 보고 믿었지만, 

왕의 신하는 믿음으로 기적을 경험합니다.

"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씀을 믿고,

그 믿음대로 살아 있는 아들을 만나러 발걸음을 돌린 그 시각에

아들이 낫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말씀이 일으킨 새 창조를 통해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이 있어야 말씀을 믿겠다는 것은 순서가 잘못된 것입니다.

말슴 앞에서 머물고 그 말씀을 따라 한 걸음 내딛는 믿음이

세상의 허탄한 말들에 둘러싸인 우리 하루를 기적으로 살아 움직이게 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더라도 오직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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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 위에 은혜, 더욱 큰 은혜 ]
찬송가 374장 나의 믿음 약할 때

유대에서 배척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고향 갈릴리에 와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믿고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함께 지냈던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사마리아인들이 

단번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갈릴리의 대다수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마찬가지로 은혜의 사건입니다. 

이 왕의 신하 이야기를 마태복음 8장과 누가복음 7장의 백부장 이야기와 

동일한 이야기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더욱더 믿음이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가르쳐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생소하였을 이방인이 단번에 믿음에 이르게 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성경이지만, 

모든 복음서가 똑같은 이야기를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나열하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어떤 복음서는 이 면을, 다른 복음서는 저 면을 더 상세히 묘사하며 강조합니다. 

그것은 같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복음서의 각 기록자가 그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중심 주제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 요한은 사마리아 여자의 회심 이야기에 이어 

또 한 사람 은혜로 믿음을 갖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1장에서부터 강조된 ‘은혜 위에 은혜’를 되풀이해서 확인해주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일이 많은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지 못하던 제자들이 

또 어느 순간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 교회의 초석이 된 것도 은혜로 된 것입니다.

갈릴리인들은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나온 것은 단지 표적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신하는 표적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50절). 

말씀만 하셔도 그의 아들이 낳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많이 따라다닌 사람이 아닙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였음을 감안하여 볼 때,

식민지하에서 관직을 가진 이 사람은

메시아를 대망하며 이스라엘의 독립을 꿈꾸고 있던 유대인들의 눈에 ‘원수’ 같은 자였을 것입니다.

우리식으로 이해하면 '일본 관원'이거나 ‘일제의 앞잡이’인 셈인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참 믿음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은혜입니다.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참 믿음입니다.

참 믿음은 표적과 기사에 의해서 더욱 강화됩니다.

보지 않고 믿는 믿음으로 시작하면,

그 믿음은 보는 것을 통하여 더욱 단단해집니다.

그러나 보고 믿는 믿음은,

보지 않고 믿는 믿음에 이르기가 참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시는 것은

그것을 보고 믿음이 시작되기를 기대하셔서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믿음이 강화되기를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왕의 신하의 믿음은 표적을 통하여 더욱 단단하여져서,

온 가족에게로 확장되었습니다.

이 역시 은혜입니다.

믿음의 시작이 은혜입니다. 

내게 믿음이 있는 것은 성령께서 내 속에 이미 믿음을 일으키셨기 때문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독생자 주신 것도 은혜인데, 믿음조차 은혜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은혜로 주신 믿음을 더욱 단단한 믿음으로 만들어 주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은혜 위에 은혜, 그리고 더욱 큰 은혜를 끊임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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