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새성전이 되신 예수님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2. 5. 06:40

2026.2.5. 목요일

요한복음 2장 13-25절

 

- 성전에서 장사꾼을 내쫓으신 예수님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라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가지고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 표적 논쟁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 참 성전이신 예수님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 사람의 속마음을 아시는 예수님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느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잇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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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고의 한계를 생각한다.

예수님은 영적인 것을 말씀하시지만, 사람들은 현세적인 것, 눈으로 보는 것을 이야기 한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 하신 후에야 

예수님의 말씀의 진의를 깨닫는다.

 

구약에서 성전의 개념은 중요하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다.

하나님께 제사하고 기도하는 곳이다.

헤롯이 46년 동안 지은 제 3의  성전인 구약의 물리적인 성전을 헐고

예수님이 새롭게 지으시는 영적 성전으로 대체하신다.

자신이 성전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교회와 성도는 이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교회와 성도들의 몸도 성전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곳이다.

교회도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는 곳이다.

우리 몸도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예배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주님

제 몸이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전임을 늘 기억하면서 살게 하소서.

거룩한 성전이 되어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충만해지며 

육체도, 삶도 거룩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은혜 베풀어 주셔서 오늘도 성전된 삶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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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성전을 헐라 ]

 

예수님은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가

거기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는 선지자적 행동을 통해

자신이 옛 성전을 대치할 새 성전임을 보이십니다.

 

(13-17절)

성전에서 장사하고 돈 바꾸는 사람들을 보시고는

그들을 내쫓고 돈을 쏟고 상을 엎으십니다.

돌발적인 행동이 아닌, '삼켜질 것'을 불사하는 종교 권력을 향한 시위입니다.

성전 '청결'이 아닌 '척결'에 더 가까운 행동입니다.

멀리서 유월절을 지키러 온 사람들은

짐승을 끌고 오기 어려웠으므로 현장에서 구입했고,

성전세를 내기 위해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로마 주화를

유대 지역에서 통용되는 두로 화폐로 환전했습니다.

문제는 종교지도자들이 수수료를 취하면서 예배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게다가 '성전 안'(14절)에서 상인들이 장사한 곳은 '이방인의 뜰'이므로,

이방인이 들어와 기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를 장터로 이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유대인끼리의 종교 백화점으로 변질된 현실에 분노하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찾아와 이 땅의 교회와 우리를 보시면 어떻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

 

(18-22절)

"너희가 성전(예수님의 몸)을 헐더라도(죽이더라도) 삼 일 동안에 일으킬(부활할)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장터로 전락한 성전을 척결하신 후 자신의 몸을 성전으로 제시하시며,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성전 예배를 예수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로 대체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46년 동안 골들여 건축한 성전은 이제 그 역할이 끝났습니다.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 새 성전이 되어

만백성을 그 안으로 불러 보으실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성전 되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도 성전이 되고 또 서로 한 성전으로 연결되어 연합하고 있습니다(엡 2:21-22).

여전히 건물 중심의 종교에 만족하면서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거처로 온전해져 가는 일에는 소흘하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23-25절)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이 말해 주지 않아도

그 믿음의 수준과 진위를 잘 아시기에

사람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십니다.

한두번의 신비적인 경험으로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을 아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내 신앙에 대해 뭐라 하든 주님이 어떻게 판단하시는지 중요할 뿐입니다.

 

욕심으로 소란스럽게 제 마음이 주님이 거하실 처소로 온전해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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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전 청결 사건의 의미 ]
찬송가 341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다 쫓아내셨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한 청년이 겁도 없이 성전을 뒤집어엎었습니다.

단순히 장사하는 꼴이 보기 싫어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장사하는 일이 거룩하지 못한 일, 비천한 일이어서 금하신 것 아닙니다. 

그것이 성전의 품위(?)를 떨어뜨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유교 전통에는 사농공상의 순으로 일의 귀천을 매기는 편견이 있어서, 

예수님의 성전 청결 작업에 대해 오해를 만들어냅니다. 

유교 전통과 상관이 없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장사는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일을 금하신 것은, 

성전의 참모습을 되찾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의 일환이었습니다. 

장사가 아닌 다른 고상한(?) 일, 예를 들면 불우이웃돕기 바자회라든지 청소년 상담 같은 것을 하고 있었어도

 예수님의 반응은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장사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장사에 몰두하였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되지 않고, 본질이 훼손되어 성전이 장사하는 집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처음 시작은 제사를 잘 드리기 위해, 제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성전에서 장사를 하게 했습니다. 

그 제사의 목적은 기도(=하나님 만남)지요.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전제는 자기 부인의 번제와 세례(물두멍의 씻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만나 주시는 유일한 조건은 회개하는 심령, 자기 부인의 겸비함입니다.

그런데 점점 변질되었습니다. 

하나님 만나러 성전에 나온 자들이 상한 심령과 겸비한 자기 부인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제사에만, 제물에만 몰두하게 된 것입니다. 

좋은 제물로 제사 잘 드리기 위해 결국 장사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노력과 정성을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상한 심령 없이, 애통과 겸비함 없이, 

잘 차려입은 옷을 입고 엄숙하고 화려하게 꾸며진 예배당에서 

웅장한 오르간의 반주와 수준 높은 성가대의 찬양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

예배 잘 드린 것으로, 은혜로운 예배 드린 것으로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전 청결 작업을 하신 것은 유월절을 맞이하여서입니다(13절). 

어린 양 앞에서 자신이 죽을 죄인임을 애통해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유월절에, 

성전에서 다들 제물을 팔고 사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돈으로 치부를 가리겠다는 것이지요. 돈으로 형벌을 면해 보겠다는 것이지요. 

중세 시대의 면벌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 본인이신 예수님께서 얼마나 실망스러우셨겠습니까?

십자가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엎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인간이 구원의 길을, 구원의 도를 스스로 닦아 보겠다고 주제넘게 나서는 것에 예수님은 제동을 거십니다. 

인간의 발버둥을 그치고 십자가 밑에 엎드리는 구원으로 나아오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건물 성전을 헐고 그리스도의 몸 성전을 세우는 구원으로 가야 한다고 소리치고 계십니다. 

다소 과격한 방법으로라도 우리의 옛사람, 옛성전을 깨뜨릴 것을 주문하고 계십니다.

성전 청결 사건을 요한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과 연결하여 기록하였고, 

마태와 마가는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과 연결하여 기록했습니다.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의 결론부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독려하십니다(막 11:22). 

가나 혼인 잔치의 표적을 보고 제자들이 믿었다고 요한이 기록하였습니다(11절). 

이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이 믿음은 저주 받은 자, 죽은 자를 새성전으로 일으키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성전 청결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옛 성전을 헐고 새 성전을 세우는 믿음을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예수님이 새성전을 세우는 분이심을 믿고(막 11:22) 

그 믿음으로 옛 성전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작업, 성전 청결 작업에 동참하라고 하십니다(22절).

요한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이 성전 청결 사건의 의미를 알고, 믿게 되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22절). 

예수님의 부활 때까지 옛 성전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처럼 우리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자기 부인의 믿음이 아직 분명치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믿으실 정도로 우리의 믿음이 충분하지는 못합니다(24절).

주님,

참된 예배, 참된 기도, 참된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 과감히 옛것을 청산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옛 성전에 속한 것들(‘나’를 세우는 것들)을 과감히 버리는 믿음에 이르게 하여 주옵소서.

2026년은 반드시 자기 부인에 승리하는 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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