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오병이어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2. 16. 06:57

2026.2.16. 월요일

요한보음 6장 1-15절

 

- 예수님을 따른 큰 무리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큰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치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 예수님의 질문, 빌립과 안드레의 대답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아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들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 오천 명을 먹이신 표적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 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 무리를 떠나시는 예수님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

요한복음이 기록하는 4번째 표적, 오병이어의 사건이다.

 

예수님은 산에 앉으셔서 무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셨을까?

다른 복음서와 달리 큰 무리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질문하신다.

그리고 요한은 이 물음이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고 기록한다.

무엇을 시험하시는 것인가?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하시는 것인가?

빌립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안드레는 불썩 끼어 들어서

소년이 가지고 있던 오병이어를 가지고 이것으로 가능한가 질문한다.

 

우리는 이 표적을 가지고 여러가지로 해석하곤 한다.

헌신의 문제로 해석하여 작은 헌신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배고픈 무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연민하심과 배고품을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나아가 열두광주리에 떡이 남을 정도로 풍요한 밥상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부족함이 없는 나라임을 먼저 맛보게 한다고도 한다.

과연 그런가?

예수님이 이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이시느 진정한 의도이실까?

요한이 이 표적을 바라보는 시선이,그리고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이것뿐일까?  

 

오병이어의 사건은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심을 밝히는 표적이다.

빌립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무리의 숫자를 대충 계산하고

인간적인 계산으로 필요한 최소 예산을 말한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 앞에서 이렇게 인간적인 해결 방법을 찾는다.

여기에는 믿음이라는 것이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사람의 의식주와 생명이 누구 손에 달려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표적들을 보고 무리가 따른다. 빌립도 표적들을 보았다.

빌립은 예수님이 표적으로 먹이실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을까?

빌립의 믿음은 거기까지다.

아직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을 얼마를 따라 다니고 보고 배워야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평생을 신앙생활하고 예배당을 들락거려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구원자로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 

 

안드레가 예수님과 빌립의 대화에 왜 끼어 들었을까?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을까?

나름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예수님이 이걸 가지고 뭔가를 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으니,

이번에도 표적을 일으킬 재료라고 생각하고 소개하는 것일까?

빌립보다는 진일보한 생각? 믿음? 이라고 봐야 할까?

 

사복음서 공히 이 표적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기록하고 있다.

영적, 육적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한다.

과연 나는 예수님이 이 모두의 주로 인정하고 믿고 있는가?

떡은 육을 살리는 필수 재료이다.

음식은 육체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것이다.

인간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음식, 육적. 영적 음식의 공급자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는가?

양식을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분이심을 믿는가?

 

주님

오병이어의 기적 앞에서 생명을 살리는 떡을 누가 주시는지 바르게 보게 하소서.

이 표적이 단지 놀라운 사건으로만 기억하지 말게 하시고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음식을 공급하시는 분,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분이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생명임을 믿습니다.

성령님, 

예수님이 생명의 주관자 되시고 영.육의 음식을 공급하심을 깨닫고 믿어지도록 은혜를 더하소서.

어떤 상황과 순간에도 이 진리를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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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핍에서 시작되는 은혜 ]

 

예수님은 작은 헌신을 사용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심으로 많은 사람을 먹이십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하자, 홀로 산으로 물러가십니다.

 

(1-4절)

우리의 결핍 속으로 찾아오십니다.

갈릴리 호숫가에 모여든 무리는 병을 고치는 등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그들은 주리고 마음마저 황폐한 이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연민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시며 그들을 위한 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결핍이 문제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은혜의 시작점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은 때로 하나님의 자비가 흘러들어는 창문입니다.

 

(5-9절)

작은 것을 드려도 놀랍게 쓰십니다.

예수님이 어디서 떡을 사서 무리를 먹이겠느냐고 물어보셨을 때

빌립은 계산하고 포기했지만,  

안드레는 한 아이의 도시락을 내보였습니다.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가 사람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듯 보였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하나님의 일이 펼쳐질 씨앗이었습니다.

우리의 헌신이 크고 대단해야만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신뢰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작은 것을 통해 예수님은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내 눈엔 보잘것 없어 보여도, 주님의 가능성을 믿고 드릴 것은 무엇입니까?

 

(10-13절)

넘치게 채우십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앉히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

떡과 물고기가 모든 사람에게 넉넉히 나누어지고,

모두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임한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은 단순히 배부른 식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풍요를 미리 맛보는 잔치였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빈자리를 채우시고,

남음의 은혜로 우리를 다시 일으키십니다.

 

(14-15절)

표적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 했지만,

주님은 그들의 열광을 거절하시고 산으로 홀로 물러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능력을 이용해 자기 배를 채우려 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지만, 사실 그들의 임금은 여전히 자기 욕심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이용하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기 욕심을 왕으로 삼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계실 자리가 없습니다.

 

작은 드림을 크게 써 주시고, 어떤 결핍도 풍성히 채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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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정말 주고 싶어 하시는 것 ]
찬송가 362장 주여 복을 주시기를

오병이어의 기적은 복입니다.

빈들에서 허기진 무리에게 주어진 긴급하고 중요한 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복을 주시기 전에 뭔가를 요구하십니다.

따르는 무리들-대표적으로 제자들-의 반응과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오천 명이 먹을 양식을 만들어 주시면서, 먼저 오병이어를 요구하십니다. 

빌립에게, 안드레에게 뭔가를 하라고,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떡을 나눠줄 때도, 제자들에게 주어서 나누어 주게 하십니다. 

사람들을 오십 명씩 앉히는 것도 제자들이 하게 하십니다. 

남은 떡을 거두게 하신 것은, 

앞으로도 떡을 나눠주는 일을 제자들이 맡아서 해야 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열두 명이 각각 한 바구니씩 거두었습니다. 

열두 제자가 각각 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오병이어가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이신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오천 명을 먹일 수가 없으셨던 것일까요? 

제자들의 협조와 참여가 없으면 예수님 단독으로는 이 큰 표적은 행할 수가 없으셨던 것일까요?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러실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러셨을까요? 

왜 하나님의 일에 우리를 참여시키시는 것일까요? 

왜 우리의 기도가 있어야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일까요? 

왜 우리가 구해야 이루어주겠다고 하신 것일까요?

[에스겔 36: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성경에는 조건적인 복의 약속들이 꽤 있습니다. 

마치 조건부 은혜, 조건부 상급 같아 보이는 약속과 명령들이 있습니다. 

이것 이것을 하면 너희에게 ‘복’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조건(?)을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관심은 

상급, 대가, 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있습니다.

S대에 합격하면 1천만 원을 상금으로 주겠다는 아버지의 관심은 

1천만 원에 있지 않고 S대 합격에 있습니다. 

아들의 관심은 1천만 원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여기에서 무엇이 더 가치 있고 중요한지를 판단하지 못하면 바보입니다. 

계명을 잘 지키면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관심은 

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잘 지키는 것에 있습니다. 

순종하는 ‘믿음’, 바로 이것이 자라는 것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사요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것이 진짜 가치 있는 일입니다.

병을 고쳐주시고, 먹을 것을 주시는 복을 받으면서 이것을 눈치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주고 싶어 하시는 것이, 진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제자들은 어렴풋이 눈치를 챘지만 무리는 눈치가 없습니다. 

단지 먹을 것 때문에 열광하여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는 흉계(?)를 꾸밉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떠나십니다.

눈치 없이 병 고침만 원하고, 빵에만 관심 있는 상태가 지속 되면 예수님은 잠시 떠나가십니다(15절). 

예수님보다 예수님의 손에 있는 빵에 더 집중하는 인생들을 잠시 외면해 버리십니다. 

예수님 없으면 빵도 없고, 생명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그리하십니다.

주님, 떡을 먹고 배부른 것에 취하여 구원의 은혜를 등한히 하지 않도록, 

믿음의 훈련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경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저의 관심이 떡에 있지 아니하고, 언제나 주님께 있도록 지켜주옵소서. 

계명을 지켜서 받는 칭찬과 이득보다 계명을 지키는 마음과 삶 자체가 

더욱 중요한 복, 비교할 수 없이 귀한 가치임을 분명히 알고 행하는 지혜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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