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2. 17. 08:21

2026. 2. 17. 화요일

요한복음 6장 16-29절

 

-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었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를

이르시되 니 두려워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곡 그들이 가려된 땅에 이르렀더라.

 

- 예수님을 찾아다닌 사람들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을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 인자가 주는 양식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 하나님의 일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게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후 사건이다.

 

파도가 이는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기뻐서 배로 영접하자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도착했다.

타 복음서에서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과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이야기도 소개하지만

요한 저자는 사람이 예수님을 기쁘게 영접하면 원하는 그 곳 천국에 이를 수 있다는

영적 의미를 더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를 자기들의 왕으로 삼고 싶었던 무리들이

예수를 찾아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찾아온다.

찾아온 무리를 향하여 그들의 속셈을 아시고 육의 양식이 아닌 영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하신다.

이 양식을 자신이 주시겠다고 하시며, 인자는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라 하신다.

그러자 그들이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하신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 거창한 것을 먼저 떠올린다.

오늘 주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인치신 그 주님이 영의 양식을 주실 것이다.

삶의 가장 우선 순위, 영의 양식을 위하여 오늘도 이 아침에 말씀을 묵상한다.

육의 양식보다 영의 양식으로 하루를 열게 하시니 감사하다.

 

주님

말씀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기쁘게 영접할 때 천국에 이를 줄을 압니다.

날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영의 양식으로 시작하게 하소서.

성령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믿고 따르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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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 속에 오신 주님 ]

 

어둔 밤 제자들이 폭풍 속에서 두려워할 때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오십니다.

또한 무리에게는 기적의 떡이 아닌 생명의 떡을 찾아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16-21절)

폭풍의 한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십니다.

제자들이 칠흑같은 밤바다에서 힘겹게 노를 젓고 있을 때,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 그들 곁으로 오셨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그 한 마디는

폭풍을 잠재우고, 무너진 마음에 평화를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은 멀리서 바라보시지 않고 우리 인생의 풍랑 속으로 직접 들어오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배가 무사히 '소망의 항구'(시 107:29-30)에 이를 수 있도록 

오늘도 풍랑이 이는 우리 삶으로 찾아오십니다.

 

(28-29절)

사람들이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인지 묻자,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답하십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해야'만 하나님께 인정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이 이미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완성된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행하고 싶다면,

먼저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과 사역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22-24절)

무리는 예수님을 다시 찾기 위해 갈릴리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들의 발길은 신실한 믿음이 아니라, 기적의 흥분을 다시 경험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표적은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표적이 가리키는 분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신앙의 여정은 놀라운 사건을 수집하는 길이 아니라,

사건 너머의 주님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는 표적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분이 주신 기적만을 좇고 있습니까?

 

(25-27절)

예수님을 마땅히 따라야 하지만, 왜 따르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온 무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라고 말씀하셨씁니다.

떡을 바라고 따라온 그들의 동기가 잘못됐다는 지적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바랄 것은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즉 예수님의 말씀과 존재 자체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의 표적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게 하시고 믿음으로 주님의 뜻에 참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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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 살아야 예수도 믿지...? ]
찬송가 198장 주 예수 해변서

열광하며 따라오는 자들을 예수님이 피하십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겠다는 자들을 떠나십니다.

왜 떠나셨냐고 묻는 자들에게

‘믿음의 일’을 하지 않고 ‘썩을 양식을 위한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따라다니는 것이 ‘믿음의 일’ 아닌가요?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는 것이 썩을 양식을 위한 일이 될 수도 있나요?

예, 그럴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 열심히 따라다니고, 

예수님 이름 소리 높여 부르고, 

심지어 ‘예수 우리 왕이여’를 외쳐 불러도, 

예수님 믿는 것 아닐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지 않으면 예수님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들에게서 예수님은 떠나버리십니다. 

그래서 정작 예수님은 계시지도 않는 곳에서, 

예수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필요에 의해서 예수님을 찾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자기들을 지지해 줄 거라고 착각합니다. 

아니, 예수님이 자기들의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강청의 기도를 합니다. 구국기도회를 엽니다. 나라의 위기를 해결해 주셔야 한다고 떼를 씁니다.

언젠가 목사님들의 카톡방 모임에서 어떤 목사님이 

‘나라가 있어야 교회도 있다’고 하는 것을, 

그건 아니지 않냐고 반박했다가 공격을 많이 당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사실 확인이 되지도 않은 유언비어성 글들을 계속 올리시길래, 우려가 되어 권했습니다

(카톡으로 옮기는 정치적인 이야기의 대부분이 사실관계가 명백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이거나 유언비어성 소문입니다).

“목사가 사실로 확정되지 않은 정치적인 견해 표명을 자주 하면 목사의 신뢰성에 흠이 생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사명 수행에 손해가 많으니 좀 자제합시다.”라고 했더니, 

“나라가 있어야 교회도 있지요.”라고 응수하신 것입니다.

자신은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니 교회와 복음에 좀 손해가 있어도 괜찮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분이 말씀하신 ‘나라’는 세상의 나라였습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 나라를 두고 한 말이면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복음은 함께 가는 것이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유익한데 교회와 복음에는 손해가 가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의 나라, 대한민국을 염두에 두고서 

‘나라가 있어야 교회도 있다’고 말하는 목사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가치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인 차이를 가집니다. 

세상 나라의 존폐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 세워지고 유지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던 나라 이스라엘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가차 없이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그루터기 위에 교회를 세워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초를 삼으셨습니다. 

하물며 이방 나라에 불과한 대한민국이 뭐라고 하나님의 교회에 우선하는 가치를 가진다는 말입니까?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먹고 살아야 예수도 믿지.”

육체의 생명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구원의 기회는 육체의 생명이 유지되는 기간에 한정되어 주어집니다. 

그 후에는 다시 기회가 없고 오직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살아 있어야 복음을 들을 기회가 있으니, 

우리는 불신자들도 구제하여 최소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에 이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어야 예수도 믿지’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불신자들의 경우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경험하여 

이미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그분에게만 생명이 있음을 고백한 자들에게, 

이 말은 결코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예수님 믿는 일을 유보한다거나 

예수님 믿는 일보다 먹고 사는 일이 더 앞선다면, 

믿음의 재점검이 필요합니다. 

어떤 일보다도 믿음의 일, 영원한 생명의 일이 먼저입니다. 

육신의 생명은 없어져도 영원한 생명에 아무 손해를 끼치지 못하지만, 

영원한 생명에서 끊어지면 육신의 생명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질 아침 안개와 같게 됩니다.

교회가 없다면 이 땅 나라의 부강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땅 나라의 흥망과 교회의 흥망에는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오히려 이 땅의 나라를 망하게 하시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멸망시키셔서, 

그들의 믿음을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시기도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에 방해가 된다 여기실 때는 

과감히 육체의 양식을 끊어버리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일이 아닌 것을 우선적 가치로 삼은 상태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예수님은 마음이 상하십니다. 

오병이어 사건 때처럼 잠시 우리를 외면하실지도 모릅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울고 불며 강청의 기도를 드리기보다, 

재빨리 눈치를 채고 내 일의 우선순위를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도우미로 여기는 태도를 재빨리 고치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대해야 하겠습니다. 

“주여 말씀하시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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