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빛의 자녀, 어둠의 자식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3. 17. 07:02

2026.3.17. 화요일

요한복음 13;18-30

 

- 배신자와 보냄을 받은 자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히려는 것이니라.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 배신자 예고와 당황하는 제자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리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 가롯 유다를 지목하시는 예수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가져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롯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 제자들의 오해와 유다의 나감

이 말씀은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

앞으로 벌어 질 일들을 미리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주신다.

그 일들을 보면서 그들이 따르던 분이 그리스도 메시아이심을 확실히 믿게 하려 하신다.

보내는 자와 보냄을 받는 자를 동일시 하시면서

보냄을 받은 자신을 믿는 것이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거듭 말씀하시고

제자들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그리스도로 믿을 것을 강조하신다.

 

자신을 팔 자를 증언하시고 마음에 괴로워 하신다.

사랑과 배신 사이에서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 후 지금까지도 가슴 아파 하신다.

제자의 배신을 통해 십자가의 역사를 이루어야 하는 사실이 심히 괴로우셨을 것이다.

가롯 유다에게 떡 한 조각을 주시며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재촉하신다.

 

떡을 받고 나가니 밤이라고 요한은 강조한다.

사탄의 지배를 받은 유다는 어둠의 자식이 되어 버렸다.

빛에 속하였던 빛의 자녀가 어둠의 권세 아래 어둠의 자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도 요한은 가롯 유다가 주님을 팔 자라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 들었다.

요한이, 아니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였다면 가롯 유다의 배신을 말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본문은 그들이 유다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의 믿음을 위하여 세심히 살피시고 끝가지 여러 번 말씀하신다.

요한 복음의 저자도 예수님의 이 마음을 알고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임을 알고 믿도록

많은 표적들과 예수님의 말씀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증언하고 우리들로 믿게 하기 위하여 강조하여 기록하고 있다.

 

주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 메시아 이시고 구원자 이심을

예수 그리스도 생명임을 믿습니다.

역사의 주관자 되신 주님이 구원 역사를 성취해 가고 계심을 믿습니다.

요한 사도가 주님의 마음을 알고 깨달았듯이

성령님이여 나에게 지혜를 주시어서 

나 또한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마음, 요한 사도의 마음을 깨달아 알게 하셔서

어둠의 자식이 아니라 빛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한 순간도 마음을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자임을 고백합니다.

성령이여 내 마음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선하게 인도해 주셔서

그리하여 마귀의 꿰임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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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이제 곧 닥칠 배신의 비극을 예고하십니다.

배신자 유다는 주님의 손길을 뿌리치고 영원한 어둠(밤)으로 나갑니다.  

 

(18-20절)

시편 41: 9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가까운 사람에게 배반당할 것을 예고하십니다.

이는 제자들이 이 비극을 마주할 때, 예수님이 상황에 떠밀던 실패자가 아니라 

모든 일을 주관하는 '그인 줄'("스스로 있는 자", 출 3;14) 믿게하려 함입니다.

이어서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도이니,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사명을 이어 가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사려 깉은 설명과 격려가 없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제자들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다가올 위험에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21-26절)

예수님이 배신자 유다에게 행하신 모든 일은 '끝가지 사랑'한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이 유다의 배신을 심히 괴로워하셨다는 사실은 그 사랑을 멈추지 않으셨음을 의미합니다.

찢기실 살을 상징하는 떡을 떼어,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에 적셔 주셨다는 것 또한 

배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멈추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아시면서도 발을 씻어 주셨고, 떡을 적셔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변함없고 크기 때문에 우리도 지금 말씀 앞에, 주님 안에 있습니다.

 

(21-22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는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서로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알지 못한 채 당황합니다.

주님의 경고 앞에서 우리는 쉽게 남을 먼저 의심하지만,

이 장면은 먼저 자가 자신을 돌아보라는 권면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숨은 배반이 없는지 살피라는 촉구입니다.

 

(27-30절)

유다가 예수님이 주신 떡 조각을 받은 후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갑니다.

사랑의 손길을 최종적으로 거절하는 순간, 사탄이 그를 완전히 장악한 것입니다.

동료들 사이에서 신임이 두터운 유다였지만, 결국 그는 어둠 속으로 떠나갑니다.

세상의 이익을 좇아 빛 되신 주님을 등지는 것은

스스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어두움에 빠지지 않고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진리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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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영혼을 향한 염려와 긍휼의 마음 ]
찬송가 500장 물 위에 생명줄 던지어라

구원 역사를 이루심에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택하지 않은 자도 보호하십니다.

그러나 택함의 보호가 아닌 수단적 보호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를 주님은 악한 자로부터 보호하시다가 때가 되어 보호막을 해제하십니다.

택한 자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미 예언된 일이기 때문입니다(18절).

주님의 보호막이 해제된 가룟 유다는

곧바로 사탄과 연합하여 본래 그가 하려던 일에 속히 나가게 됩니다(27절).

가룟 유다에 대한 보호를 거두시면서 주님의 마음이 괴로우십니다.

최후까지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려 하십니다. 

그에게 여러 번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배반을 이미 알고 있다는 표시를 내며 압박하십니다(10절, 18절, 21절, 27절).

회개하지 않을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그리하십니다. 

택하지 않은 자에 대해서도 이렇게 그 멸망을 안타까워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택한 자들에 대해서는 그 긍휼과 사랑이 어떠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것을 알아주기를 원하십니다(19절).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가룟 유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의도는 다른 제자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데에 있었습니다(18-19절). 

유다의 배반으로 심령이 괴로운 중에서도 

주님은 혹시 이 일로 다른 제자들이 낙심하게 될까, 믿음이 떨어지게 될까 염려하셨습니다. 

가룟 유다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배신(?)한 그들이 회개에 실패하게 될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족식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회개를 언제나 기다리며 도우신다는 징표를 세족식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용기를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가끔 우리가 어떤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구원을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는 중에, 

‘혹시라도 이 사람이 하나님이 택한 자가 아니면 어쩌지? 

 혹시 내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기도이면 어떡하지?’ 하는 염려를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가족이나 아주 친한 사람 중에 믿음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걱정이 많이 됩니다.

그런데 기우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긍휼의 마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을 향한 주님의 사랑과 긍휼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결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니 내게 한 영혼을 향한 염려와 긍휼의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육신적인 염려와 걱정은 우리에게서 비롯될 수 있어도,

영혼에 대한 염려와 걱정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뒤에 하나님께서 계신 것처럼, 우리 뒤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내가 누군가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게 된 것은 나의 배후에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이고,

그런 나의 마음에 누군가가 반응하게 된다면 그는 예수님의 마음에 반응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상대방이 택한 자가 아니라면, 

만약 어떤 영혼에 대한 긍휼과 안타까움이 예수님이 배후에서 일으키신 마음이 아니라면, 

우리 마음에 혹시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안타까움과 긍휼의 심정을 없애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택한 자가 아니면 소용없는데...’ 하는 걱정일랑은 붙들어 매고, 

기도하며 전도에 힘쓰면 될 것입니다. 

때가 되면 회심(회개)하게 하실 것입니다. 

베드로를 끝까지 추적하여 돌이키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주님의 안타까운 사랑의 신호를 외면하고 무시하게 되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주님은 안타까워하며 애태우시는데, 우리는 너무 늠름하고 걱정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보다 믿음이 더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배은망덕한 가룟 유다까지도 안타까워하며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 

주님의 그 사랑과 긍휼을 믿고 담대하게 회개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며

주님이 사랑하시는 다른 영혼에 대해서도 한없는 긍휼의 마음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한 영혼을 향한 염려와 긍휼의 마음이 일어날 때,

그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임을 알아

담대히 기도하며 전도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