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영광의 최고봉, 사랑의 최고봉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3. 18. 07:05

2026.3.18. 수요일

요한복음 13: 31-38

 

- 죽음 예언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 승천 예언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 새 계명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

유다의 행동으로 십자가 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죽음이 영광임을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승천을 말씀하셔도 깨닫거나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한 번도 보지 못하였고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죽어야 사는 십자가의 신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결정판,

십자가의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은 없다.

전무후무한 영광의 최고봉, 사랑의 최고봉,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이 모든 것을 믿게 해주시고, 믿음으로 따르게 하셔서 감사, 또 감사합니다.   

 

죽음과 승천을 이야기 하시다가 갑자기 새 계명을 말씀하신다.

사랑,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만이 예수님을 따른다는 제자됨의 증거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증거는 이 사랑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이 사랑 배우고 닮아가고 실천할 수 있기를 간구한다.

 

베드로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인간의 다짐이나 결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미약한 것인가

계집 종 말 한마디에도 3년이나 따르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만다.

그것도 연거푸 3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한다.

 

이 모든 것을 아시고 미리 말씀하여 주신 주님을 생각하면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시는 주님임을 기억해야 한다.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 내 인생의 주관자 예수님을 기억하고

주님보다 앞서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베드로에게 이 사건은 평생에 아픈 가시요 쓰라린 상처며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어떤 다짐이나 결심을 할 때마다 이 일이 떠올라 괴로웠을 것이다. 

부활 후 갈릴리 호수에 찾아 오셔서 상처를 회복시켜 주셨지만 

인간의 한 번 받은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기억으로 남는다.

하얀 백지에 쓰여진 글이나 그림은 지워도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실수, 실패, 죄와 허물은 예수님의 보혈로 씻김과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실수하지 않고 죄를 짖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위해 깨어 있어야 하고 말씀을 붙들고 무장하고 싸워 이겨야 한다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한다. 방심은 그물이다. 

인간은 한없이 연약하고 넘어지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나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가능하다.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의지해야 한다.

두 손 들고 주께 나올 때 도와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다.

 

주님

늘 깨어 말씀을 붙들고 시시각각 밀려오는 유혹과 시험과 어둠의 세력들을 물리치도록

성령님께서 힘과 믿음과 지혜와 능력을 주시옵소서.

아니 내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주님의 보호 아래 거하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하기를 소원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안전한 길일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어떤 것으로부터도 나를 지켜 보호하여 주실 능력의 주이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에게 붙어있겠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저 죽음의 요단강도 주님의 손 잡고 건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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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으심과 새 계명 ]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야 할 것을 아시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십니다.

주님을 따르겠다는 베드로에게는 그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31-32절)

가룟 유다가 밖으로 나가자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셨다"고 선언하십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유다의 이탈은 배신과 죽음의 서막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는이 순간을 '영광'이라고 정의하십니다.

십자가야말로 아들이 아버지께 전적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완벽하게 드러내는 결정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게 높아지고 성공하고 박수받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알려 주신 영광은 내 뜻이 꺾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고난과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난다면, 그것이 영광입니다.

우리의 고난 속에서도 주님은 이 방식으로 영광을 이루십니다.

 

(33-35절)

떠나실 것을 예고하시며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십니다.

구약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였으나,

예수님의 새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사랑의 기준이 '자기애'에서 '예수님의 희생'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을 실천할 때 비로소 세상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신분증은 십자가 목걸이나 직분이 아니라,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품어 내는 사랑 그 자체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저들은 정말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는 모습인지 돌아봅시다.  

우리가 세상에 보여 줘야 할 것은 화려함이나 웅장함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36-38절)

배반 예고에 유다는 잠잠했고, 부인 예고에 베드로는 장담합니다.

목숨을 따라 따르겠다고, 어디든 가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뿐입니다.  

그의 의욕은 진심이었지만, 십자가는 의욕으로 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께 도움을 청하는 일이었습니다.

'자기 부정'을 하지 못하면 '예수 부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의욕만으로 갈 수 없고 오직 기도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 주신 그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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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의 영광, 우리의 영광 ]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십자가에서 영광이 나타납니다. 

상대방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내어주는 지극한 사랑과 신뢰를

주님은 영광이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십자가행을 확정 지으실 때 

영광의 광채, 지극한 사랑의 광채가 흘러나왔습니다.

이 영광은 예수님만의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의 영광은 예수님의 영광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이기도 했습니다(31절).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이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한 분이시므로 예수님의 사랑은 곧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아들의 십자가행을 확정지으시는 하나님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지극한 희생과 사랑의 광채가 흘러나왔습니다.

사람의 부모도 자식의 아픔을 보며,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하며 안타까워하는데, 

사랑의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십자가 고난을 보며 얼마나 더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십자가의 고난은 예수님만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하나님의 고난이기도 하였습니다. 

온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신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의 사랑은, 십자가의 영광은, 

주 예수님의 사랑과 영광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은 두 분이 하나이신 것 때문에, 

또 두 분이 너무나 서로 사랑하는 관계이신 것 때문에 서로 교환되고 교감 됩니다.

그 영광의 자리에 제자들은 아직 감히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이면 반드시 그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할 수 있으니 명령하셨고(34절), 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36절).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복음 14:20)고 하셨습니다.

주를 위하여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수 있는 사랑,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랑, 

그것이 우리에게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이 가신 그 길을, 그 곳을 우리도 따라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닭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겁쟁이 베드로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얼마든지 욕심내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죄인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죄인을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그 영광스러운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그 영광을 감히 욕심내게(?)하는 담대함의 원인입니다.

주님, 명령하시고 약속하셨으니 이루어 주옵소서. 

속히 이루어 주옵소서. 

우리가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서로를 사랑하는 

영광의 날, 그날이 속히 오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