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3. 19. 06:58

2026. 3. 19. 목요일

요한복으 14:1-14

 

-거처를 예비하시는 예수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에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개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신 예수님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오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 집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 아버지를 보이신 예수님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는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 믿는 자의 사명과 약속

내가 진실로 진질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

 

......................................................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이런 것이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삼위일체 한 분이심을 정확히 알았더라면 

도마와 빌립처러럼 질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않았더라면 

예수님이 준비하시는 거처가 무엇이고, 어디인지 묻지 않았을 것이다.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이신 예수님에게 그 길이 어디냐고 묻지 않을 것이고

진리와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질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마처럼 많은 사람들이 영생에 이르는 길을 묻는다.

자기 소견대로 길을 찾고 구도의 길을 걷는다.

그 길이 바른 길인지, 영생에 이르는 길인지 확신하지도못하면서 

아니 맹신하면서, 장님의 인도를 따라 걸어 간다.

 

빌립처럼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싶어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하면서, 보여주면 믿겠다고 억지를 부린다.

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알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는데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으신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써야 한다. 

구약에 '우리가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는 선지자의 음성이 들린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존재론적 동질성으로 한 분 하나님, 기능론적 종속성으로 다른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삼위일체에 대한 지식이 있었더라면 빌립처럼 질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께 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해야 한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려 함이라 말씀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께 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셨기 때문이다.

 

주님

삼위일체 하나님을 더 바르게 이해하고 깨닫도록 지혜를 주옵소서.

날마다 하나님을 더 알고 가까워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하옵소서.  

주님이 길이요, 진리이시며, 영생이심을 믿나이다.

주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영원토록 살아가도록 은혜를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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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남으로 열리는 길 ]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한 거처를 준비하기 위해 떠나실 것과

자신이 하나님게 이르는 길, 진리, 생명임을 밝히십니다.

또 자기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에 응답을 약속하십니다.

 

(1-4절)

예수님의 떠나심(십자가, 부활, 승천)은 제자들을 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거처를 준비하시는 구원의 여정이었습니다.

그 거처는 하늘 어딘가의 공간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내실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 세워질 세로운 성전, 새로운 백성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겠다"는 말씀은

마지막 날의 귀환 이전에,

예수님이 지금 우리 삶 속에 영으로 함게하시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성령으로 주의 말씀을 사모하고 순종하는 우리가 바로 그 약속의 성취인 하나님의 거처입니다.

 

(5-7절)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길을 묻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시며,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통로가 오직 자신 안에 있음을 밝히십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을 넘어

그분을 통해 아버지를 만나고 그 생명에 참여하는 관계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종교적 열심으로 하나님께 이를 수 없고,

예수님 안에 거할 때 하나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신 예수님을 신뢰하며 그분 안에서 길을 찾고 있습니까?

 

( 8-11절)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빌립의 요청에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의 말과 행하신 모든 일이 아버지의 역사임을 밝히십니다.

하나님을 알려고 한다면 예수님의 삶과 말씀 속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막연한 관념 속에 계시지 않고,

몸을 입고 이 땅에서 사랑과 순종의 삶을 사신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계십니다.

 

(12-14절)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입니다.

부활 이후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오시면,

그들은 주님이 가시지 못한 만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파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영광받으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예수님이 친히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을 입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며

온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임재와 뜻 안에 머무는 삶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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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 지우고 예수님 이름 쓰기 ]
찬송가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예수님이 십자가를 향하여 가시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기 위함이었습니다.

3절의 거처에 대한 말씀은 성전 되신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시는 표현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의 성전 되심을 완성하십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19)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는 곳을, 거처를 마련하시는 작업이었습니다.

‘성전’은 단순히 거룩한 곳이 아니라

죄인이 거룩한 하나님께 용납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죄인을 거룩하게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만이, 예수 이름만이

하나님 아버지께 통하는 이름이요 죄인을 거룩하게 해 주는 참 성전입니다.

2절을 오해하여 천국에 맨션 아파트가 많다는 뜻으로 알아듣는 분들이 있습니다. 

거처를 예비한 후 다시 와서 우리도 그곳에 있게 하겠다는 

3절의 말씀과 함께 2절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지금은 그들이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올 수 없다고 하시면서 

나중에는 오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3:36).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아예 올 수 없다고 선언하기도 하셨습니다(8:21, 13:33). 

내 아버지 집의 거처’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만 이를 수 있는 곳,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뜻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렇게 영광스러워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직통으로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우리 이름을 지우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이름을 써 넣는다면, 

우리의 기도는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직통으로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막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문제는 내가 내 이름을 정말 지우고, 

그 자리에 예수님 이름을 썼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미련없이 지울 만큼, 

예수님의 이름을 신뢰하고 자랑스러워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미련 없이 지울 만큼,

나 자신에게는 조금의 소망을 두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의 자존심을 조금도 내세우지 않을 만큼,

그렇게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리에게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5:43)고 책망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예수님 이름을 빙자했지만, 실상은 자기  이름을 내세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이름을 지우지 않고, 자기 이름 옆에 예수님 이름을 적어 넣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이름은 전시용으로만 적어 놓고 자기 이름을 자꾸 덧칠하여,

가면 갈수록 자기 이름이 예수님 이름보다 더 짙고 굵어집니다.

내 이름 지우지 않으면, 예수님 이름 쓴 것 아닙니다. 

내 이름 옆에 예수님 이름 쓴 것은 예수님 믿는 것 아닙니다. 

자기 부인 없이는 예수님 믿을 수 없습니다.

내 이름을 지운 자리에 예수님의 이름을 써넣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히 믿을 때 가능합니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분명히 믿을 때 가능합니다.

이 일이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 이름이 한 번에 지워지지 않습니다.

한 번 지우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름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쓴 것으로 시작입니다.

또 지우고 또 지워야 합니다. 또 쓰고 또 써야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내 이름이 점점 지워지고 예수님의 이름이 점점 진해집니다.

마침내 내 이름은 완전히 지워지고 예수님 이름만 뚜렷하게 남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의 이름만 뚜렷하게 남을 때,

그 영광은 예수님 자신의 영광과 다름없을 것이라 하십니다(12-14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전을, 거처를 만들어 주신 목적이 이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예수님을 더 알기 원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듣기 원하고, 

그분 앞에 머물러 있는 기도의 시간을 귀하게 여기는 가운데 

우리 안에 예수님의 이름이 점점 뚜렷해집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많이 애쓰십니다. 

한편으로 제자들의 실패와 추락을 허용하십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시며 반복 확인하여 주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온전히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믿음에 이르기를 

바라고 바라시며 그렇게 하십니다.

주님,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아직도 온전히 하지 못한, 내 이름 지우는 일을 주님의 열심으로 이루어 주옵소서. 

나의 잘난 이름도 지우시고 나의 못난 이름도 지워 주옵소서. 

그렇게 내 이름이 지워진 자리에 예수님의 이름을 굵고 짙게 써 주시옵소서.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께서 하신 일을 나도 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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