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기자는 '산 개과 죽은 사자보다 낳다.'고 말하고,
욥이나 잠언의 기록에는
이 땅에서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난 아침에 일어나 식사 기도를 할 때면
'어제 밤에도 단잠을 주시고 오늘 새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한다.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선물로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내 인생의 길이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진실은 영원하지 않고 유한하다는 것이리라.
진리는 나에게도 죽음은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오늘 전도사 기자는 주어진 삶에서 즐겁게 먹고 마시며 최선을 다하고
함께하는 가족, 동료, 이웃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지극히 현실주의적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이 땅의 삶이 전부인양 마음대로 제멋대로 살아가라는 것은 아니다.
죽음 너머의 영원한 세상이 있고, 영존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며
이 땅의 삶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고
이후에 천국과 지옥의 판결이 주어질 것을 기억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천국만 바라보고 이 땅의 삶을 대충, 소흘히 살아도 않되고
사후의 세계를 불신하고 이 땅의 삶이 전부인양 살아도 않될 것이다.
유한성을 인정하며 영원 속으로 나아가는
길을 걷는 인간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Homo viator)임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이다. 지혜자의 삶이다.
자족하며, 청지기 신분임을 기억하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충성을 다하는 예수님의 종으로서의 삶
그것이 그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이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주로 섬기며 사랑의 관계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 아닌가!
오늘도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쁘하며 ,행복하게 살기로 다짐하며 출근한다.
어떤 환우들을 만나고 진료할 지 모르고, 무슨 일들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주님과 동행하면서 오늘도 행복하고 싶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되 오늘 삶에 충실하는 것이 지혜자의 삶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