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에는 "네게 고난이 유익이라"는 말씀이 있다.
과연 고난을 좋아하는사람은 이 땅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누가 고난의 힘든 과정을 좋아할 것인가?
어떻게 하든지 빨리 고난을 벗어나고 싶고, 광야를 통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일부러 고행의 길을 걸어가는 소수의 수도사들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이 역설적인 내용을
시편 기자는 왜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간단하게 이해하기로는 고난 중에 얻는 깨달음이 있고 교훈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신앙을 가지지 않았다고 해도 조금만 생각하면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신앙인에게 이 말씀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광야에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광야를 잘 통과할 낙타를 타고 나참판을 보면서
아니면 배두인들을 가이드로 삼고 묵묵히 통과할 수 밖에 없다.
광야에서 인간이 발버둥친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오아시스를 만나고 로뎀나무나 싯뎀나무 같은 그늘을 만나는 행운을 바랄 수 밖에 없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고난(광야)의 종류는 다양할 것이다.
크고 작은 고난 중에 자신의 힘으로 헤쳐나온 고난도 무수히 많을 것이고
남의 도움을 받아 벗어난 고난도 많을 것이다.
남의 도움도 부족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고난 중에 자신의 한계와 맞닥드리게 된다.
평상시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다가도
고난 앞에서는 자신의 모습, 자신의 능력, 자신의 한계를 정직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유한성 앞에서 인간은 완전자, 절대자, 전능자를 묵상하고 만나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이름만 불러본 적이 있는가?
난 40대 초에 그런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다.
벌어진 상황이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신속하게 처리되는 것을 보면서,
동료 의사가 "이 일은 하나님이 개입하셨군요." 라고 하던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인간이 신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내어놓고 전능자를 바라보는 순간은
고난이라는 상황 아니고는 많지 않다.
자기중심성의 죄성을 가진 인간은 조금의 가능성만 있어도
신을 찾고,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기 보다는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진실 앞에서
인간은 드디어 신을 찾고, 만나고 ,도움을 구한다.
이런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자신의 어떠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인정하고,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때,아니 그분의 처신을 기다릴 때
하나님과 인간의 본연의 관계로 돌아가는 회복의 은총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고난이 주는 유익일 것이다.
그 고난의 내용이 어떻게 해결되든지 간에, 그 결과와는 상관이 없이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회복될 때
우리는 '고난이 나에게 유익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고백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믿음 없는 자들은 절대절명의 순간에 믿지 않는 신의 도움을 바라고 구하지만
원치 않는 모습으로 상황이 끝나게 되면 신의 부재를 선언하기도 하고, 신을 원망한다.
그들에게 고난은 유익이 아니다.
죄성을 가진 인간이 평생을 한결같이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는 것이 싶지 않다.
방향을 잃고 헤메이기도 하고, 가던 길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럴 때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이키게 하는 것은 고난 밖에 없다.
광야에서 다시 훈련을 받아야 한다.
가나안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광야를 통하여 정신을 차렸듯이 말이다.
40년 출애굽 광야도 부족하여, 70년 포로 광야를 통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이런 역사를 보면서 교훈을 삼고 바르게 살면 좋으련만
인간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죄를 짓고 마는 죄인이다.
날마다 나참판이 십자가를 향하고 있는지 점검하며 걸어가야 한다.
영원한 가나안을 향한 이 광야 같은 믿음의 순례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고난은
자신을 늘 원위치 시켜주는 나의 유익이 된다.
이 고난의 길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주어져
고난은 유익했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하고,
고난이 고난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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