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비가 내린다.
운전하면서 외이퍼를 한 번씩 작동한다.
그러다 동천강변을 들어서자
눈이 쌓인 앞 산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아! 하는 작은 탄성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직접 영상이 아닌 육안으로 보는 올 겨울 첫눈이다.
어린 시절에는 눈이 많이 내리던 지리산 자락에서 자랐다.
겨울이면 마루와 방문 앞까지 눈이 쌓이고
초가집 지붕은 하얀 도화지를 뒤집어 썼으며
처마 밑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일어나면 마당에 쌓인 눈을 쓸고 리어카에 실어서 강변에 버리곤 했었다.
온 천지가 하얐던 기억이 새롭다.
울산에 내려와서는 눈 구경을 하고 싶을 정도로 눈이 귀하다.
올 겨울은 눈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나 했는데 눈이 볼 수 있어 행복하다.
가지산 자락의 산이나 계곡에는 며칠 전에도 눈이 많이 쌓여지만
직접 가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그림의 떡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눈사람을 만들고 친구들과 눈싸움하던 기억들
얼어버린 경사진 골목에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던 일
눈이 내린 후 따뜻한 햇살에 처마 밑에 달린 고들름이 녹아 뚝뚝 떨어지면
마당에는 작은 구멍들이 만들어지고 작은 파문이 일어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기억들
고드름을 따서 빨아먹기도 하고 친구들과 칼싸움을 하던 일
눈이 오고 눈이 쌓인 정겨운 모습은
사람들을 아름다운 정서와 낭만의 세계로 이끄는 마법이 있었다.
군대에서 날마다 눈을 치워야하는 병사들에게는
눈이 싫고 내리지 않기를 바라겠지만
설원을 달리는 스키어들에게는 고마울 따름이다.
군 제대후에 무주 스키장에서 처음 스키를 배우고 야간 스키를 탈 때 느꼈던
그때의 황홀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스키를 보관하고 덕유산 정상으로 올라가던 길에 본
눈꽃들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
울산에 내려와서는 한 해는 정말 눈이 많이 왔다.
울산 시내가 차가 다닐 수가 없어 모두 걸어 다녔다.
1시간 넘게 걸어서 교회를 갔던 날도 있었다.
눈은 아직도 아름다운 기억들과 낭만의 세계로 이끈다.
눈 내리는 날
산에 오르고 싶다.
온 몸으로 눈을 느껴보고 싶다.
온난화로 눈오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남쪽이라 눈 구경 하기도 갈수록 어려워짐을 느낀다.
무엇이 행복일까?
가난하고 부족했지만 이런 낭만과 아름다움이 있던 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다.
'2023년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료기관 평가 인증 조사 (0) | 2023.02.21 |
---|---|
사랑한다는 것 (0) | 2023.02.20 |
고난이 유익이라 (0) | 2023.02.13 |
비오는 날에 (0) | 2023.02.10 |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인생 (0) | 2023.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