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영성일기

엘리야의 영적 침체와 회복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3. 10. 21. 11:18

본문 : 열왕기상 19장 1-21절

 

갈멜산 영적전투의 승리는 엘리야에게 엄청남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자신의 기도에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을 돌아보며

이제 자신의 이 사역을 통하여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을까?

아님 조금은 기고만장했을까?

 

오랜 가뭄 뒤에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기뻐하며 이스르엘 여름 궁전을 향해 뛰어갔다. 

엘리야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아합 왕과 이세벨이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믿겠다고 고백하는 말을 들을 것으로 기대했을까? 

그러나 왠걸 분위기는 반전된다.

이 소식을 아합 왕으로 들은 이세벨은 분기탱천하여

엘리야를 당장 내일 잡아 죽이겠다고 사신을 보냈다.

엘리야의 얼굴 표정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엘리야가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얼마나 도망쳤을까? 

이스르엘에서 브엘세바까지 먼 거리다.

브엘세바는 남유다의 남족 경계선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경계선이다. 

그러나 단숨에 사환하고 브엘사바까지 온 것이다.

그곳에서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던지 사환을 남겨두고 광야로 하룻길을 걸어 들어갔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거기는 생명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은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곳, 광야이다.  

하루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땅이다. 

아니면 그곳에서 정말 죽고 싶었던 것일까?

엘리야에게 몰아닦친 엄청난 절망감과 두려움과 패배와 무기력함이

그를 짖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부르짖는다. 

"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수 없이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함을 경험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죽고 싶을 만큼 어렵고 힘든 상황과도 맞닥뜨린다. 

그럴때 우리는 그 긴 어둠의 터널, 실패의 광야를 어떻게 통과했던가?

 

오늘 여호와 하나님은 죽기를 작정하고 광야의 강한 태양 빛 아래에서

그늘 같이도 않은 로뎀나무 아래 자고 있는 엘리야를 찾아 오신다.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권한다.

어루만지며라는 이 단어가 가슴에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그래 많이 힘들었지? 얼마나 힘이 들고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냐.. 이해한다. 

먼길 온다고 힘들었을텐데 이제 일어나 좀 먹어라고 음식을 권하는 장면이

눈물겹도록 다정하고 따뜻하고 위로가 된다. 

육신의 어머니 손길같고, 하늘 아버지의 품이 이런 것이리라. 

한마디 책망의 말씀이 없다. 

쉼과 회복의 시간만이 필요하다. 

그냥 기다리시는 것도 아니다. 따스하고 다정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신다. 

그리고 몸도 마음도 탈진한 상태에 있는 엘리야에게 음식도 챙겨 주신다. 

 

머리맡에  숯불에 꾸은 떡과 물 한 병이 놓여 있다.

먹고 또 쓰러져 잠이 든다. 

많이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도 이런 상황에서는 그저 먹고 마시며 자고 쉬는 진정한 쉼이 필요하다. 

인간은 연약하다. 

긴 인생 가운데 진정한 쉼과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것이 현명하고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다. 

작년 캐나다 오로라 여행에서 경험하지 않았던가....

 

천사가 또 다시 찾아와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고 권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맞겨 주신 삶이 있고 사명이 있고 사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맡겨진 삶을 끝까지 온전히 잘 살아내야 한다.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고 포기해서는 않된다. 

한 번의 실패가 전체 인생의 실패로 이어져서는 않된다. 

우리의 실패가 곧 하나님의 실패는 아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헵에 이르리라. 

얼마큼 위로가 되고 힘을 회복하였을까?

40 주야를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이른다. 

저자는 40일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였을까?

예수님도 40일 동안 광야에서 굶주리시며 시험을 받으셨다.

출애굽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했고 훈련을 받아야 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걸었을까? 

엘리야는 일어나 왜 호렙산으로 향했을까?

지난 자신의 사역을 뒤돌아보며 상념에 잠겼을 것이다. 

육신의 회복을 넘어 진정한 회복인 영적 회복을 위해 지금 호렙산으로 가고 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그 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뵙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을 묻고 싶엇을까? 하나님의 무슨 대답을 듣고 싶었을까?

한계에 부딪혀 절망 가운데 있는 자신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묻고 싶었을까?

 

호렙산에 머물러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시고 물으신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기를 

"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아직도 엘리야는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모든 계획이 실패로 끝났고, 자기 사역도 실패했으며, 생명도 위태로운 지경,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 좌절과 낙담과 절망 가운데 놓여 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단지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할 뿐이다.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신다.

그리고 크고 강한 바람, 지진, 불이 연달아 지나가지만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는다.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들린다. 

엘리야는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여호와가 나타사셔서 동일한 질문으로 다가오신다.

엘리야도 동일한 대답으로 아뢴다. 

그러자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으로 세우고,

님시의 아들 예후를 기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며,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를 대신하는 선지자가 되게 하라는 새로운 사명을 주신다."

그리고 한 마디 덫붙이신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이 대목에 대하여 여러 번 설교를 들었다. 

하나님은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로 임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인간들은 그렇게 하나님이 임재하시기를 기대하고 기도한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시원하게 하나님의 강력한 한 방을 기대한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신다.

신앙생활 하면서 이런 우리 기대와는 다르게

대부분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용히 다가오시지 않았던가?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면서,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알려 주신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엘리야로 끝나지 않음을 알게 하신다.

엘리야는 새로운 사명을 받고 그 사역을 위해 길을 떠난다.

홀가분 했을까?  하나님의 크신 섭리과 구원 계획을 이해했을까?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다.

다만 나에게 맡겨진 사역에 충실할 뿐이다. 

 

오늘 본문은 묵상거리가 너무 많다.

 

엘리야의 회복이 크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엘리야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다정하고 따스한 손길을 묵상하는 아침이다. 

짧지 않은 인생길 걸어가면서 

수 많은 실패와 좌절과 절망을 겪으면서

함께하시고 위뢰하시며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에게 맡겨진 삶이 있다.

맡겨주신 사역 잘 감당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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