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권위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3. 15. 09:43

본문 : 마가복음 11장 27-33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다가와 나름대로 고민하여 준비한 질문을 던진다. 

"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그들 생각에 예수님이 답하시기를

자신의 권위가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말씀하시면 그분을 신성모독죄로 고발할 것이고,

예수님이 자신의 권위가 자신의 권위라고 말씀하시면 그분을 광신도라며 무시할 것이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관한 질문으로 되받아치셨다. 

그들은 대답을 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체면은 세워야 하겠고 

그들은 요한을 지지하지도 않았고, 요한이 풀려나도록 애쓰지도 않았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자기들의 기득권과 이익에만 가 있었다.

그들은 교묘한 질문으로 예수를 얽어매려 하였지 사실상 대답을 원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실에 대한 바른 대답과 인정에 마음이 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기 보다 백성들을 두려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실의 이해관계에 얽혀 진실을 바로보지 못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부정한다.

 

권위의 출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한번쯤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했더라면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들을 보았고 세례 요한의 말을 기억했었다면

하나님의 권위, 하나님이 주신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했어야 한다.

 

그들도 세례 요한의 말을 전해 들었거나 직접 들어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 마태복음 3장 11절-12절

 "나는 너희로 회개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자신들의 지금 당장 기득권을 포기하고 손해를 보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골치가 아픈 문제의 인물예수만 제거하면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과 판단은 편협되고 오도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또한 진실을 보기 보다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다보면 판단력이 흐려지게 되고

자신에게 편리하고 유리한 결정을 하는 쪽으로 향하게 된다.

사람은 자기에게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자기 좋은 소견대로 행동을 하게 된다. 

 

요한복음 3:19절

: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어서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 비유를 들려주신다. 

포도원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그러나 농부들은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그들은 자신들이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싶어한다.

주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인의 권위로 파송된 종들을 핍박하고 폭행하며 죽이는 모습은

주인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권위를 무시함이요, 주인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이런 모습은 아담 이후로 지속되는 인류의 모습이 아니던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인간의 욕망이 여실히 들어나는 비유다.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 민족의 목적을 좌절시켰을 뿐 아니라 그것을 성취하려는 자들을 죽였다.

이들은 질투심과 소유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신들이 하나님게로 이끌어야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의 안녕을 무시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종교 지도자들의 계획을 폭로하시고

그 죄에 대한 벌이 있으리라고 경고하셨다. 

 

"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건축자들이 버린 모퉁이 돌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대다수 유대 지도자들에게 배척당하실 테지만 

마침내 새로운 '건축물'인 교회의 머릿돌이 되실 것이다.

모통이의 머릿돌은 건물의 돌들을 곧게 수평으로 쌓기 위한 기초로 이용되었듯이,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교회의 기초가 될 것이었다.

 

예수님의 이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킴을 그들도 알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잡아 죽이고 싶었다.

인간은 잘못을 지적 받으면  인정하고 회개하기 보다는

더 반발하고 화를 내며 상대방을 죽이려고 달려든다.

양심의 화인 맞은 자들의 모습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듭난 자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을 때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마땅하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주님의 말씀처럼 진멸 당할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는 자는

예수님의 삶과 모든 가르침과 하신 일들을 인정하게 된다.

따라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며 살아감이 마땅하다.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그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복 받는 비결이다. 

그것이 행복의 필수조건이다.

 

성령님 나로 삼위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2024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투  (0) 2024.04.03
종말  (0) 2024.03.20
무성한 무화과나무  (0) 2024.03.14
예루살렘 입성  (0) 2024.03.13
맹인  (2) 2024.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