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무성한 무화과나무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3. 14. 11:33

본문 : 마가복음 11장 11-26절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에서 값싸고 대중적인 먹거리였으며 심고 3년이면 열매가 열렸다.

무화과나무는 매년 두 차례, 늦은 봄과 이른 가을에 굉장히 많은 열매를 맺는다.

(주로 7-9월에 열매가 열리고, 4월경 봄에도 파게가 열린다.) 

이 사건은 잎이 피기 시작하는 이른 봄에 일어났다. 무화과나무는 대개 잎이 무성할 때 자란다.

그러나 이 나무는 잎이 무성한데도 열매가 없었다. 이 나무는 유망해 보였으나 열매가 없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게 하신 거친 말씀은 이스라엘에게도 적용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겉으로만 화려할 뿐 영적 열매가 없었다.

 

이 단락에서 특별한 두 사건이 연결된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과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이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행동으로 표현된 비유로,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과 직접 연결된다.

성전은 예배해야 하는 곳이어야 했지만, 그곳에서 진정한 예배가 사라졌다.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어야 했지만 전혀 열매가 없었다. 

예수님은 알맹이 없는 종교 생활에 대한 분노를 보여 주셨다.

믿음이 있다면서 삶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다.

진짜 믿음은 큰 잠재력이 있다.

당신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라.

 

예수님은 분노하셨지만 죄를 짓지는 않으셨다.

의로운 분노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스도인이 죄와 불의에 분노하는 것은 옳으며, 그리스도인라면 죄와 불의에 맞서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신자들은 이 중요한 이슈에는 소극적이고

대신에 개인적인 모욕이나 사소한 자극에 화를 내기 일쑤다.

화를 내야 할 때에 화를 내라.

 

환전상과 상인들에게 유월절 기간은 큰 대목이었다. 

성전 화폐로만 성전세를 내고 제사용 짐승을 살 수 있었다. 

따라서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성전 화폐로 환전해야 했다.

그런데 환전상은 부풀린 환율로, 상인은 터무니없는 짐승 가격으로 자기 배를 채우기 일쑤였다.

이들은 성전에 있는 이방인의 뜰에 좌판을 벌였고,

이 때문에 비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자유롭게 예배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예수님이 분노하신 이유는 예배를 위한 하나님의 집이 갈취를 위한 자리가 되고

예배하기 원하는 이방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산을 옮기는 기도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위한 기도다.

산을 바다로 옮기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예수님은 이 예화를 활용해

하나님이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도 행하실 수 있음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지만 그 응답이 당신이 취하는 긍정적 정신 자세의 결과는 아니다. 

다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① 당신이 신자여야 한다.

②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품지 말아야 한다,

③ 당신이 구하는 시도하는 동기가 이기적이지 않아야 한다.

④ 당신이 구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유익해야 한다.

효과적으로 기도하려면 당신이 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구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기도가 거절될 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우리의 모범이신 예수님은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관심사나 바람에서 비롯되기 일쑤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관심사를 염두에 두고 기도하셨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우리의 바람을 표현할 수 있지만, 그분의 뜻이 우리의 뜻에 우선하길 원해야 한다.

당신의 기도가 자신의 관심사와 하나님의 관심사 중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추는지 점검하라.

 

용서는 힘든 일이다.

너무 힘들어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기보다 불쾌한 일로 되갚으려 한다,

그러나 원한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은 잎이 무성하지만 열매가 없는 나무와 같다.

참 믿음은 마음을 변화시킨다.

진정한 기도는 교만과 복수심을 제거하고 그 빈자리에 사랑을 채운다.

진정한 믿음은 평화를 구한다.

교회가 기도의 능력을 소유하려면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조화와 용서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상처를 떨치고 원한을 버리며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라.

 

---에브리데이 스터디 바이블에서 인용

 

열매 없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인가? 돌아본다.

잎이 무성하면 열매가 있어냐 당연한 것이 자연의 이치다.

수십년 신앙생활 했는데도 내 삶에 성령의 열매가 맺혀있지 않다면

오늘 무화과나무와 무엇이 다른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이 

신앙의 성숙과 성령의 열매 없는 나를 보신다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그런데도 우리는 무사태평하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살아간다.

심각함이 없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

그것이 진정 신앙생활일까? 아니다. 무늬만 신앙생활이다. 

 

분주한 성전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전통에 따라 흠없는 제물을 드리기 위해 환전과 제물을 사는 일에 왁자지걸하지 않았을까?

외국에서 먼길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물을 바치러 왔는데

비싼 환율과 어쩔 수 없이 흠 있는 짐승을 구입해야 하는 불쾌함이 예배할 기분이 아니다. 

조용히 기도할 자리마저 빼앗긴 상황이다. 

 

경건하게 기도하고 예배해야 할 자리가

각종 소음과 분주한 모습들로 채워져 있는 우리의 예배당과 예배 모습은 아닐까? 

거룩한 하나님을 예배하고 간구와 기도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분위기가 아니라

신자들간의 교제로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흐트려져 있다면

이 또한 성전 정화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전자 음악 소리와 합쳐진 찬양 소리, 각종 예배를 향한 진행 순서들도 한번쯤 돌아봐야 한다.

누구를 위한 예배인가?

신자들을 위한 예배인가? 하나님을 향한 예배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인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인가?

 

예수님은 성전은 만인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일러주신다.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기도의 기본이다.

우리의 기도을 들어 주시고 이루어 주실 능력이 있는 분으로 믿어야 한다.

하나님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이 기도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기도 응답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기도의 내용보다 더 선하고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자. 

불완전하고 부폐한 나의 기도 내용보다 하나님의 응답이 더 선하심을 이해해야 한다.  

 

많은 것을 묵상하게 만드는 아침이다.

성령님 이 믿음이 적은 자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무늬만 그리스도인,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진정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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