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가복음 10장 46-52절
마지막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에서 마지막 기착지인 여리고를 지나 가시고 계셨다.
어디서 애타는 음성이 들려온다.
길 가에 앉았던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는 소리친다.
"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위에서 꾸짖고 잠잠하라고 하자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외친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께서 멈추어 서서 맹인을 부르라고 말씀하시자
무리들이 그에게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자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온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니이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한 그의 믿음은 무엇인가?
① 교리적 믿음이 아닌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전적인 신뢰.
②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유일한 재산이며 생계수단인 겉옷을 내팽게치고 달려 나오는 믿음
③ 부자 청년은 감당하지 못했던 "네게 있는 것을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명령에 순종한 믿음이다.
여리고는 여호수아가 출애굽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의 첫 성읍으로 익숙하다.
여리고는 가장 오래전에 건설된 성읍이고 종려나무의 성으로 불렸다.
인간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견고한 성읍이 무너졌었다.
오늘 바디매오에게도 는을 뜰 수 있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바디메오의 부르짖음이다.
보지는 못했지만 오고 가는 사람들을 통해 나사렛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병자들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능력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도 그런 예수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직접 예수를 만나러 갈 수는 없는 형편에서 지금 그 예수가 자기 앞을 지나가고 계신 것이다.
다시 찾아오지 못할 절호의 기회, 절대절명의 순간이다.
그의 앞을 지나가는 나사렛 예수를 불러 세우는 그의 외침은 어떠 외침이었을까?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목이 터쳐라 외치고 또 외쳤을 것이다.
아무리 주위에서 방해하고 꾸짖고 야단을 처도 그의 절박함과 간절함을 감당하지 막지 못했다.
예수는 자신의 눈을 뜨게할 수 있는 분이시다는 무한신뢰가 바디매오에는 있었다.
예수가 지시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준비가 되어 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태도와 음성에서 이런 믿음을 보신 것이리라.
그래서 바디매오의 믿음을 보시고 눈을 뜨게 해 주셨다.
그러자 그는 이제는 길 가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길 위에서 예수님을 따른다.
바디매오의 심정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냥 얌전히 걷지 못햇을 것이다. 아이들처럼 뛰면서 날아 오를 듯이 기뻐 춤추며 따라갔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모습이 이래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은 기회이다.
평생을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회가 얼마나 자주 찾아올까?
복음을 접할 기회가 얼마나 자주 있을까?
하나님이 때가 되어 찾아 오셔서 나를 불러 주시고, 복음을 들려 주신 일들을 생각해본다.
나에게는 참 은혜였다. 그것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찾아오신 주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얼마나 잘한 결정인가! 최고의 선택을 했었다.
바디매오의 모습처럼 말이다.
마가는 아직도 영적 눈을 뜨지 못한 제자들과 무리들의 모습을
맹인 바디매오를 통하여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이제 눈을 뜨고 걷는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는 기쁨으로 살아간다.
구원의 신비, 부활의 신비에 감격하며,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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