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가복음 13장 1-26절
성전을 나가면서 제자들이 성전의 웅장함을 자랑하자
예수님은 성전이 무너져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무너지리라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요,신앙과 삶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그 성전이 무너져 완전히 폐허가 된다고 하니 마음이 한없이 무너졌을 것이다.
맞은 편에서 성전을 마주하고 앉으셨을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께 나아와 조용히 묻는다.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이때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종말의 징조들을 말씀하신다.
미혹, 거짓 그리스도, 전쟁, 지진, 기근, 배신, 권력자들에게 끌려가 심문 당함...
그러나 끝가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이어서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성전에 서는 사건(BC 169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과
AD 70년의 디도(티투스) 장군에 의한 스불바벨 성전 파괴의 심각함을 말씀해 주신다.
역사적으로 주전 597년 느부갓네살에 의해 솔로몬 성전이 약탈되고 파괴되었다.
주후 38년 칼리쿨라 황제가 자신의 조각상을 성전에 세우려다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리고 환란 후에 있을 천체의 변화와 인자의 임함과 택한 자들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성전 파괴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옛 예루살렘의 파괴와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건을 상징한다.
실제 헤롯 성전의 파괴와 성전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다.
성전 파괴를 말씀하실 때 주님의 심정은 어떠셨을까?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예수님이셨지만 아무것도 하시지 않으셨다.
그것이 택한 자들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 대속의 죽음이었기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종말시대에 환난을 통과해야 하는 우리의 삶도 주님의 뜻 안에서 인내하고 견디어야 한다.
환난을 통과한 자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지만 말이다.
이 부분은 소계시록이라고 불리는 부분이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세대주의자가 되고 말 것이다.
상징이나 묵시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전천년설자들의 주장처럼
7년 대환란, 예수님의 공중재림, 그리고 휴거로 이어지는 종말의 시간적 순서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은 마지막 때에 대하여 궁금하고 관심이 많다.
지금 우리가 최근에 경험하는 핵 전쟁의 위험 증가와 기후변화로 각종 천재지변을 경험하면서
지구 종말을 이야기한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그래서 그 때를 대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개인적인 종말과 역사적, 전 지구적 종말이 궁금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유한한 인간들에게 종말은 두려움의 대상이기에 그렇다.
나 또한 젊은 날에 시한부 종말론에 한 때 빠진 적이 있었다.
지난 신앙 생활의 아픈 상처이고 무지의 소산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시한부 인생의 삶에 대하여 이해도는 많아졌다.
변명하자면 약간은 염세주의적 생각을 가지고 있던 시절에
사랑하는 주님이 오신다는 것이 그렇게 좋고 기대되고 빨리 만나 뵙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니 학수고대했다. 사랑하는 연인을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만날 기한이 다가오는 것처럼 기다렸다.
그러나 중간에 그들이 주장하던 예언이 빗나가는 것을 보면서 실망하고 돌아섰다.
한편으로는 젊은 날 이런 아픈 경험이 이후에 나를 잘못된 종말론에서 지켜주는 계기가 되었고
종말론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깊어질 수 있었다.
당시에는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단지 휴거만을 듣고 생각했었다.
7년 대환란과 요한 계시록의 내용들을 문자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세대주의적 관점에 빠져 있었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상징, 예표, 전후문맥. 역사적&문화적 배경, 성령님의 인도하심 등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세대주의자가 뭔지도 모르고, 묵시적.예언적 관점과 계시적 관점에 대한 분별력도 없었다.
지금 교회에 출석하는 자들이 얼마나 종말론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 대처하고 있을까?
대부분은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다.
정말 큰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만나면 유혹을 이겨낼 능력들이 없다.
이런 상황에 부딪칠 때 신앙을 버리지 않기가 어려울 것이다.
지식이 없어 망하는 것이다.
거짓 선생들을 알아보는 기준
1. 그들의 예언이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그들은 이미 일어난 일에 맞추려고 자기 예언을 수정해야 하는가?
2. 그들의 가르침 중 하나라도 성경의 짧은 단락만을 이용하면서 전체 성경 본문은 소흘히 하지 않는가?
3. 그들의 가르침이 성경이 하나님에 관해서 증언하는 말과 모순되지 않는가?
4. 그들이 촉진하는 행위들은 가르치는 자를 영화롭게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회롭게 하는가?
5. 그들의 가르침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조장하지 않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처음과 나중 되시는 예수님이 종말을 모르실리 없다고 생각한다.
종말의 때는 성부 하나님만 아신다고 하시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자 하나님이 모르실리 없다.
다만 완전한 인간으로 계시는 동안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권한에 맡겨 놓으신 것이다.
막 13장 19절 ~ 23절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그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은 어떤 환난 중에서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라는 말씀이다.
얼마나 안심이 되고 든든하며 감사한지 모르겠다. 이 믿음을 붙들고 있으면 불안해 할 이유가 없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1. 우리는 일어날 일에 관한 혼란스런 주장이나 사변적 해석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막 13:5-6)
2.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든지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하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13:9-11)
3. 우리는 믿음으로 굳게 서며 박해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13:13)
4. 우리는 도덕적으로 깨어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나오는 삶을 위한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숙고하고 하루하루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오직 은혜를 구하고 겸비한 마음으로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지막이 준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