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사명자의 삶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6. 14. 11:18

본문 : 사도행전 20장 17-27절

 

배가 잠시 밀레도에서 수화물을 싣기 위해  며칠 정박해 있는 동안

사람을 에베소에 보내 장로들을 청한다.

바울이 떠난 사이에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한 오해를 심어 주었기 때문에 해명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자신을 모함한 모든 사안에 일일이 설명하기 보다는

지난 날 자신의 사역과 삶에 대하여 회고하면서

에베소 성도들이 목격한 자기 삶을 증거로 내세워 변호한다.

진실한 삶이야말로 가장 힘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겸손과 눈물로 인내해온 시간이 있다면, 오해와 편견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말이 칼보다 예리할 때가 있지만, 삶으로 보여준 것은 백 마디 말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오해를 불식시킬 삶의 증거, 사랑과 온유와 인내가 내게 있는가?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행이라.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도 있다.

말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처럼 조이지만, 그 말을 증명하는 하는 것은 행동이다.

단회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 꾸준함이 삶이다. 

그런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겸손, 인내, 눈물, 관용, 확신 등이 요구된다.

 

바울은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이끄시는 분도,

예루살렘으로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가린다고 알려주시는 분도 성령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다소 상반된 듯 보이는 성령의 지시와 가르침에 전혀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려면 결박과 환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 도리어 고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이 이끄시는 고난을 향해 담대히 나아간다.

그것이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사명의 길인 줄 알고 기꺼이 달려간다.

복음의 길은 평탄 대로가 아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복음을 배척하는세상에서 고난 없이 복음을 증언할 방법은 없다.

오히려 세상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사람을 통해 복음의 진실성을 발견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교회의 봉사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하면서 

이렇게 충성하면 만사형통해야 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과응보의 사고가 자리잡고 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고난이나 어려움을 당하면 서운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세상과 다르고, 세상이 다 담을 수 없는 가치와 기준들이 있다. 

신앙의 성숙은 이런 것을 이해하고 뛰어 넘고 살아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간 후에 로마를 지나 서버나가지 가서 복음을 전할 것을 고대하고 있다.

그러니 예베소에 다시 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미 부족함이 없도록 있는 힘을 다해 복음을 전파했기에 

이제 누군가 심판을 받더라도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엄숙히 선언한다,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애써서 복음을 전했기에 아쉬움도,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일하는 우리 고백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을 다한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은 안다.

돌아보면 늘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것이 평범한 우리들의 지난 삶의 여정이다.

매 순간을 그렇게 살아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없도록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며 책임이다.

우리는 바울같은 삶을 살 수 없다고 일찌부터 포기해 버린다.

성령께서 주실 능력을 구하고 기대하면서, 주시는 능력으로 열심히 주어진 삶과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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