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아테네에서 전한 복음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6. 7. 11:35

본문 : 사도행전 17장 16-34절

 

빌리보 감옥에서 풀려난 후 암비볼리아와 아볼리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했다.

빌립보에서 당한 매질로 아픈 몸을 이끌고 160km 떨어진 지역인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회당에서 세 안식일 동안 복음을 전하였다.

회심자들이 나타났으나 빌리보에서처럼 유대인들의 시기로 바울 일행을 집에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야손과 몇 사람이 고소를 하였고, 그들이 보석으로 풀려나자,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 일행을 밤에 베뢰아로 보냈다. 

 

베뢰아로 이동하였고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자 여러 사람들이 주께 돌아왔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 베뢰아까지 와서 소동을 벌이자

형제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통해 바울만 먼저 아덴(아테네)으로 보냈고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보내라는 명령을 받고 뒤돌아갔다. 

 

아덴에 혼자 남은 바울은 일행을 기다리며 아덴의 거리를 돌아다니다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격분한다. 

수상을 숭배하는 자기 백성을 보시고 발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 질투를 바울도 느낀다. 

그는 하나미의 형상인 인간이 우상을 섬기는 것,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는 영광이

우상의 차지가 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변론했다. 심지어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도 쟁론하였다. 

바울의 열정이 전해져 온다. 하나님의영광을 위한 바울의 열심이다. 이것이 그의 선교 동력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최고의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는 사람은 선교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이 전한 예수와 부활이라는 문제가 저들의 궁금증을 유발하였고

아레오바고라는 광장에서 공개 토론이 벌어진다.

 

바울의 아레오바고에서의 설교는 저희들이 만들어 놓은

'이름없는 신을 위하여'라는 제단을 언급함으로 설교를 시작한다. 

아덴사람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선교 접촉점이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 -  B.C. 6C, 시인 크노소스의 에피메니데스 글,

"우리가 다 그의 소생이다." - B.C 3C, 스토아학파의 저자 아라투스의 글 등을 인용하면서 복음을 전한다.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와 문화를 알면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이 만유의 주재이시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심을 전한다.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부활과 영생의 심판자요, 인간 이성으로 다 이해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예정된 심판을 감추지 않고 복음의 전령을 통해 땅끝가지 알리심으로,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촉구하고 계신다. 심판과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상으로 환원될 수 없고 우상에 가둘 수 없는 분이다.

섬기지 않으면 안 되는 분, 섬기지 않을 수 없는 분이시다.

 

늘 그렇듯이 복음이 전해지면 받아들이고 믿는 자와 의심하고 믿지 않는 자들로 갈라진다.

동일한 말씀을 듣고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가 동일한 반응을 보이고, 모두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카데마이와 카데오마이가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복음을 듣고, 그 하나님이 믿어지는 믿음을 허락하신 분께, 감사를 올려 드린다.

평생을 삶을 지탱하고 유지하며, 의지하고 의탁하며 살아 왔다.

남은 여생과 영생까지도 믿고 의지하며 의지할 수 있는 신실하신 구원자 하나님을 찬양한다.

 

바울의 복음 전파의 열정을 닮아 열심으로 복음을 전하며 살게하소서.

 

'2024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두고가 살아나다  (2) 2024.06.13
두란노 서원과 말씀의 흥왕  (0) 2024.06.11
구원  (0) 2024.06.05
두 반응  (0) 2024.05.30
바나바와 사울의 파송  (0) 2024.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