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외손자와 영상 통화를 하였다.
인우는 탁자에 여러대의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대부분 사내 아이들 처럼 자동차를 좋아한다.
어린이날이라고 할아버지거 선물로 장난감 자동차 세트를 사주셨나 보다.
아이에게 "야! 인우는 자동차가 많구나. 부자네? 자동차 부자."
그러자 인우가 "나는 부자"라고 따라서 한다.
환하게 웃으며 만족하고 행복한 표정이다.
그래서 한 마디 했다. 인우는 자동차 부자이니 할아버지 하나 줄래?
잠시 고민하더니 "아니요"! 하면서 탁자 위의 10대 가량의 각종 차를 두 팔로 가슴쪽으로 끌어당긴다.
부자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저렇게 어린 아이도 좋아하는데 ...
그러자 아이 아빠가 한 마디 한다.
"부자는 나눠 주는 사람이야!"
그러나 인우는 장난감 자동차를 가슴에 꼭 끌어 안고 줄 생각이 없다.
얼굴에는 미소를 멈추지 않으면서도 자동차는 놓지 않는다.
아내와 한참을 웃었다.
3살도 한 된 아이가 부자가 좋은가 보다.
아니 자기 것에 대한 애착과 내 것이라는 욕심이 생기나 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인간의 죄성은 이렇게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나 보다.
어쩔수 없는 인간의 성악설을 믿게 만드는 상황을 하나 씩 맞닥드리게 된다.
인간이 착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교육과 훈련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깨닫는다.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타락하고 죄악된 본성을 따라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본성을 거슬러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생각해 본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 문화의 엄청난 유혹 속에서
문화를 거슬러 반문화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이 필요한지를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 것을 움켜 쥐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더 힘껏 움켜 쥐고 내 놓지 않는다.
죽을 때도 손을 펴서 나누는 인간이 아니라 움켜 쥐고 죽어가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는가
내것인데...아까워서 놓지 못한다. 인간의 이기심이란 끝이 없다.
인우의 출생 부터 성장의 과정들을 지켜 보면서
딸을 키울 때는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씩 더 알아간다.
웃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부자가 좋은 것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고, 내것은 움켜 쥐고 나누기 싫어하는 것이 본성인가?
저 손을 펴기 위하여 얼마나 가르치고 훈련을 시켜야 하는 것인가?
머리는 공수래 공수거라고 알고 있지만
손은 안으로 향하고, 잡은 것은 놓을 줄을 모른다.
선한 청지기
내것인 것 같지만 내 것이 아닌 물질을 최선을 다해 관리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말은 참 쉽다. 그러나 실천이 참으로 힘들다.
그래서 가장 먼 인생길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발로 옮겨가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인우야 부디 베푸는 데 인색하지 않고 늘 손을 펴서 나누는 데 익숙한 사람으로 자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