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아람 장군 나아만의 일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9. 11. 17:06

본문 : 열왕기하 5장 1-27절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 크고 존귀한 자였다.

여호와께서 그를 통해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를 큰 용사로 만드신 의도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큰 용사에게도 아픔이 있었으니 그는 나병환자였다.

 

전쟁 포로로 자기 집에 잡혀 온 여자 아이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아이의 말을 따른다.

그가 얼마나 나병 때문에 힘들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는 왕에게 나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치료 받기를 간청한다.

왕이 나아만을 보내며 함께 보내는 선물의 정도를 보면

그가 얼마나 아람에 큰 용사이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

은 십 달란트, 금 육천 개, 의복 열 벌

아나만은 아람 왕의 글과 선물을 건넨다.

내 신하 나아만을 보내니 그의 나병을 고쳐달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왕은 무슨 저의가 있는가 싶어 당황하고 놀라며 옷을 찢는다.

"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이 소식을 듣고 엘리사가 사람을 보내 그를 자기에게로 보내라고 한다.

 

나아만이 부하들과 엘리사의 집에 도착했지만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종을 시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지시만 할 뿐이다.

일국의 큰 용사가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보다. 그는 화를 내고 돌아가려고 했다.

격에 맞는 대우와 근사한 치료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부하들의 만류로 엘리사의 말을 따라 일곱 번 몸을 담그자 어린아이처럼 피부가 깨끗해졌다. 

오로지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마지 못해서 강물에 몸을 담갔을 것이다. 

언제 몸이 변했을까? 알 수는 없다. 아마도 일곱 번 모을 담그고 몸을 일으켰을 때가 아니겠는가?

단지 물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를 반복했을 뿐인데, 그렇게도 치료할려고 모든 방법을 다해 봤지만

치료되지 않던 문둥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린 아이 피부처럼 회복되고 깨끗해지다니 ...

나아만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선지자의 말에 단지 순종했을 뿐인데 ...

 

나아만은 몸 뿐 아니라 영적인 믿음도 회복되었다.

그동안 자기 나라에서 섬기던 신에게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겠는가. 그러나 호전이 없었다.

그런데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선지자는 자기 병을 고쳤다. 

그 신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누가 참 능력의 신인지 분명히 알았다.

신중의 신이 여호와이심을 믿었을 것이다. 

그의 고백 속에서 여호와를 진실하게 믿는 믿음을 엿볼 수 있다. 

 

이 놀라운 기적의 시작에 작은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선지자 엘리사의 능력을 믿었다. 아니 그를 통해 역사하시는 참 하나님을 믿는 자였다. 

자기를 포로로 잡아 온 나라의 장군이지만 원수를 적대시 하지 않고 구원의 길을 전해준다.

복음은 나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전해야 하는 우리의 의무이다.

 

엘리사의 사역은 이스라엘을 넘어 주변 국가인 아람까지 퍼져간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확장되어야 한다. 

더불어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살아계심을? 회개와 순종만이 참 회복의 길임을?

 

아람 왕은 돈과 권력으로 나아만의 나병을 고치려고 한다.

이스라엘 왕도 권력으로 병을 고칠 수 없음을 알고 비통해 한다.

오직 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께만 있음을 알게 하신다.

하나님에게 불가능은 없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하는 고백이 거듭난 자의 고백이다. 

앞으로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결단의 고백이다. 

참 신앙의 고백이다.

아합 왕 때 오바댜의 고충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세속적인 세상에 살면서 마음만은 세상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나아만의 치료에 대한 답례를 엘리사는 강경하게 거절한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그리고 은혜에 보답하는 일은 그분을 진정으로 섬기는 일이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사환 게하시의 행동은 이 멋지고 아름다운 사역에 재를 뿌리고 만다.

거짓말로 은 두개와 옷을 받아가지고 와서는 숨키고 엘리사에게 거짓말을 한다.

결국 나아만의 문둥병이 게하시에게 옮겨가고 말았다. 

물질에 대한 욕심에 눈이 멀어 자자손손 문둥병 집안이 되고 만다. 

이방인 나아만은 충절을 다짐하는데,

게하시는 선민이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변절도 서슴치 않는다.

 

엘리사가 게하시를 책망한 것은 착복만이 아니다.

안으로는 흉년이고 밖으로는 아람과의 긴장 관계에 있는 나라 사정은 뒷전인 채

자기뱃속만 챙기고 있는 악한 '이기심',

선지자 곁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여태 보고도 탐욕에 눈이 먼 '무지몽매함'이다.

세상을 살려야 할 복음의 공공성을 거세하고, 세상이 어떻든 나만 잘 살겠다고 하는 것은

복음도,교회도, 성도도 아니다.

 

이방인 나병환자 나아만이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믿게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모든 열방 중에서 택하신 자들에게 전해져야 하고

복음이 전해지면 그들은 믿고 주께 돌아오게 된다.  

이 사역에 포로가 잡혀간 작은 소녀와 엘리사가 사역에 동참한다. 

누군가는 전해야 하고, 누군가는 가르쳐야 하고, 고치는 사역을 해야 한다.

물론 그 배후에 역사하시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우리는 그 구원 사역에 동참하고 동력해야 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아만은 나병을 고침받는데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지식을 다 내려놓고

단지 선지자의 말에 순종했을 뿐이다.

구원을 받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구원에 이르는 합당한 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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