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관련하여 기독교적 세계관의 구체적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적인 측면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에 비유할 수 있으며 네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단계: 구원받기 전 세상에서의 삶.
애굽 땅에서 떡 가마,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먹던 때의 삶이다.
이때의 삶은 오로지 애굽 생활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세상에서의 죄와 향락에 묻혀 살았다.
둘째 단계: 구원의 단계, 홍해를 건너는 단계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는 단계. 홍해를 건너는 것은 세례나 침례로서 거듭난 삶을 의미한다.
홍해로 들어가는 것은 애굽에 속한 옛 사람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홍해의 물 속을 지나 광야 저편 언덕으로 올라오는 것은 새사람의 탄생을 의미한다.
홍해를 건너는 것은 옛 생활에 대한 공식적인 포기 선언이며, 홍해를 건넌 뒤엔 애굽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
세째 단계: 구원받은 뒤 세상에서의 삶, 광야 생활이다.
광야 생활에서는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따라 전진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구름 기둥은 말씀의 인도를, 불 기둥은 성령의 인도라고 할 수 있다.
광야는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나그네와 행인으로서
본향을 사모하면서 살아간다.
네째 단계: 요단강을 건너 천국에서의 생활, 가나안에서의 생활
이 네 단계 중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둘째와 셋째 단계, 즉 구원과 그 후 천국 갈 때까지의 삶이다.
둘째 단계(구원)만 강조하고 셋째 단계(광야 생활)을 무시하면 기형적 신앙이 될 우려가 있다.
홍해를 건너는 것은 일회적, 일시적 일이지만, 광야 생활은 40여 년 간의 일인 것처럼 구원은 순간적으로 받을 수 있다 해도 그 뒤 천국 갈때까지의 삶은 멀고도 험한 길이다.
홍해를 건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홍해는 요단강이 아니다.
온전한 구원, 복음의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구원의 두 가지 측면,
즉 홍해를 건너는 것으로 비유되는 완료적 구원과 광야 생활로 비유되는 진행적 구원이 모두 강조되어야 한다.
광야에서는 온갖 거짓된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의 미혹을 받기도 하고, 내적. 외적으로 수많은 대적과 질병, 짐승과 해충, 추위와 더위의 위험에 직면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홍해를 건너는 것을 요단강을 건너는 것으로, 다시 말해 예수 믿으면 곧 천국에 온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각종 어려움에 직면하곤 한다. 예수를 믿고 난 뒤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우리가 현재 천국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넓은 의미에서 '애굽에서 가나안 복지까지'의 전과정을 다루고 있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광야 생활'에 좀 더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애굽을 떠나 광야 생활을 하는, 그러면서도 아직 가나안 복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바른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으면서 살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광야같은 나그네 인생길에서, 믿음의 순례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무장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은 광야를 어떻게 잘 통과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광야 학교를 더 연구하고 준비하여 <광야 학교> 강의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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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학교 (0) | 2021.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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