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산책] 라브리 강의를 마쳤다.
시원섭섭하다.
나의 기대와 참여자들의 반응은 일치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질문도 관심도 부족해 보인다.
물론 시간적 제한이 있었고 장소적인 문제도 토의할 시간을 가질 수 없었던 아쉬움도 남는다.
의무감처럼 11번의 강의를 마쳤다.
아쉬움에 누구를 탓하겠는가? 나의 부족한 강의였는데 ...
그래도 부족한 나의 강의를 들어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강의의 댓가도 없는데 왜 이렇게 열심을 내고 누구를 하는지 모르겠다.
나름 준비한다고 했으나 시간 등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제는 다시는 라브리 강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한없이 부족한데도 겁없이 달려들었다.
성경교사가 된다는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나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낀 시간이기도 하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것처럼 거짓 교사들에 대한 책망의 말씀을 기억한다.
아무나 교사가 되는 것을 경고하셨다.
조심스럽다. 더 준비하고 어느 정도 수준이 되었을 때 기회가 된다면 가르칠 생각이다.
열정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었었다.
그래도 강의는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강의했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요한계시록에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스캇 맥라이트를 통해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다.
단지 본문만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보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적용이다.
우리는 단지 지식적으로만 성경공부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알기는 많이 알아도
삶에 적용하고, 체화하고,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데는 부족함이 많다.
당분간은 '요한계시록'은 뒤로 밀릴 것이다.
어제 저녁에는 서재의 책들을 훓어 보았다.
참 많이도 읽었다. 그냥 구입하여 꼽아둔 책은 한 권도 없다.
손 때가 묻지 않은 책은 한 권도 없다.
그래도 오백 여권 넘는 기독교 서적들이 책꽃이에 꽂혀 있다.
책들을 바라볼 때는 조금은 흐믓하다.
쌓여가는 책들 때문에 아내는 늘 불평이다.
읽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았던 책들이다.
독서하는 그 시간들이 내 삶을 이끌어 온 순간들이다.
독서와 내 삶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이 책들이다.
이 책들이 나의 멘토들이다. 아니 그 책들의 저자들이, 휼륭한 나의 스승들이다.
일면식도 없지만 책으로 만난 내 인생의 좋은 스승들이다.
감사의 마음이 밀려온다.
나를 지켜주었던 책들, 오늘 이 자리에 있기 까지 나를 인도해 주었던 책들이다.
그래서 또 다시 책을 집어 든다.
나를 살리는 것이 책이다.
다시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시간이 계속될 것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