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성일기

다섯째 나팔 재앙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7. 13. 06:48

보눈 : 요한계시록 9장 1-12절

 

하늘에서 떨어진 별과 황충에 의한 심판이 주어지고

이어 황충의 형상과 권세, 황충증의 왕인 아볼루온에 대한 이야기이다.

 

네 가지 재앙이 자연계를 향한 것이었다면,

다섯째 나팔 재앙은 사람에게 내리는 재앙이다.

황충은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다섯 달 동안 괴롭힌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1:18)를 가지고 사탄의 영역을 궁극적으로 통제하고 계신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 천사)은 무저갱의 열쇠를 하나님께 '받고' 

항충도 전갈의 권세를 '받아' 하나님이 허락하신 정도와 범위 에서만 심판을 수행한다.

지금도 사탄과 사망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한 사람도 손댈 수 없다.

성도의 생사가 오직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믿고,

신앙을 포기하도록 위협하는 상황 앞에서도 담대해야 한다.

 

출애굽의 흑암(2절 어두워지며)과 메뚜기(3절, 황충) 재앙 때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셨던 것처럼, 

인침을 받은 백성(속량받은 그리스도인들) 도 환난 가운데 보호하신다.

출애굽이 재앙 때 바로가 더 완악해졌듯, 계시록의 재앙 때도 사람들은 끝까지 회개를 거부할 것이다(20-21).

이것이 바로 주께서 무저갱을 열어 놓으신 이유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을 구별하기 위함이다.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교회가 포위와 위협을 당하는 것 같아도,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

두려워하지도, 염려하지도, 소망의 끈을 놓지도 말고 그 통치 앞에서 엎드리자.

무엇이 나를 위협하고 내 앞을 가로막는가? 하나님을 경험할 기회로 삼아라.

 

황충의 생김새는 갑옷으로 무장한 군인의 모습에 종종 비유되는데,

여기서의 황충 역시 곤충이 아닌 괴물로, 사탄의 군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인침을 받지 않은 자들은 황충의 공격을 받아 다섯 달 동안 큰 괴로움을 겪지만, 

뼈아픈 고통과 통증이 참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변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징계와 재앙을 거두실 거라고 헛되이 기대하고 있지는 않는가?

 

'멸망'(아바돈, 아볼리온)의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탄은 황충들의 대장에 불과하고

하나님이 무저갱의 문을 여신 동안 잠시 나와 있을 뿐이다.

로마 황제가 자신을 아폴로(아볼리온)로 칭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실체도 잠시 활개를 치는 사탄의 졸개에 불과하다.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게 하시고, 사탄의 위협에 주눅 들지 않게 하소서.

 

그렇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자.

현실이 전갈처럼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그 고난과 환란은 잠시 뿐임을 기억하자.

다섯 달 동안이라고 언급하듯이 범위와 기한과, 세기와 한계를 정해 주셨다.

사탄은 하늘에서 영적 전쟁에서 패하고 쫏겨난 존재임을 안다면

이미 주님이 승리 하셨음을 안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승리의 하루를 보내자.

 

후원하는 미자립 교회인 합천 은광교회를 구역원들과 함께 다녀오려고 한다.

오고 가는 길에 안전 운전과 구역원들간의 아름다운 교제가 있고

은광교회 성도들과의 행복한 만남과 은혜로운 예배가 되기를 기도한다. 

 

============

[ 적당히 하지 않으시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
​찬송가 399장 어린 양들아 두려워 말아라

일곱인의 재앙, 일곱 나팔의 재앙, 일곱 대접의 재앙의 집행자가 천사(혹은 하나님의 사자)라는 점은

다시 한번 우리가 이 재앙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또한 극심한 재앙은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오래 참으시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인애가 드러납니다. 

8:13절에서 공중의 독수리를 통해 선포되었듯이 진짜 화는 다섯째 재앙부터입니다(12절). 

그 전까지는 혼을 내는 척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첫째 화로 불리는, 진짜 재앙인 다섯째 재앙에서조차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를 받습니다. 

또한 땅의 풀이나 수목은 건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인침을 받은 자들이 믿음의 훈련을 받는 일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심지어 인침을 받지 아니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목숨은 해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5절). 

왜 목숨만은 해치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할 수만 있으면 악인도 구원받을 기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충분히 경고하십니다.

일곱 교회 곧 모든 교회를 향한 경고의 계시는 본질적으로 심판을 예고하는 계시가 아닙니다.

잘 하고 있는 부분은 장려하고 부족한 부분은 분발시키는 독려의 계시입니다.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되라는 응원의 계시입니다.

그래서 최후 심판의 때,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게 봉인되었습니다(10:4, 마 24:36).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의 완성을 향해 달려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심판의 징조들이 계속되지만, 점점 그 강도가 높아지고 분위기가 고조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최후 심판 때가 이르기 전에는 

구원받을 자들이 구원의 완성을 경주하는 것에 결코 지장이 없도록 철저히 보호하십니다.

출애굽기에서 애굽에 열 재앙이 내릴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 해가 미치지 않도록 하신 것과 같습니다. 

일곱 인의 재앙, 일곱 나팔의 재앙, 일곱 대접의 재앙의 내용이 출애굽 열 재앙과 유사한 것은 

이 재앙들의 목적이 택한 백성의 구원(=출애굽)을 위한 것임을 알리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해서, 목숨을 해하지 않는다고 해서(4-5절 상), 

이 재앙을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적어도 그 재앙이 우리의 막연한 예상보다는 무섭습니다.

무지갱의 열쇠를 가진 사탄이 우는 사자같이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1절).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여 가치관이 혼란스럽게 만듭니다(2절).

사람의 탈을 쓴 황충이 때로는 무시무시한 권세와 무력으로,

때로는 치명적인 유혹으로,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까지도 넘어뜨리려고 합니다(3절).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심할 수 있습니다. 전갈이 쏘는 것 같은 고통을 받습니다.

비록 다섯달(열 달의 반) 동안만이라고 하시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닙니다. 첫째 화가 지나갔지만 이 후에 화 둘이 더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둘 중에 먼저 일어나는 화는 삼분의 일이 죽는 전쟁입니다. 

첫째~넷째 나팔의 재앙이 주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재앙이었다면 

다섯째~일곱째 나팔의 재앙은 인간의 신체와 목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재앙입니다.

긍휼과 인애의 하나님께서, 왜 적당하게 하시지 않고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혹독한 화를 내리시는지요? 

무서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를 벗어버리기 위해 울고 불며 매달리게 됩니다. 

그래야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해야 하고, 또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두려워해야 하고, 재앙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꾸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는 싫어하지 않으면서 단지 형벌만 면하기를 원하는 자에게 

일곱 재앙들은 무서운 재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이 무서운 재앙을 겪고도 회개할 줄 모릅니다(20-21절). 

형벌만 지나가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버립니다.

성도는 이들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죄를 무서워할 때까지, 죄를 진저리치며 미워하게 될 때까지 진행하십니다. 

셋째 화 곧 일곱 대접의 재앙을 준비하십니다. 

참으시며 보호하시는 것도, 상상보다 훨씬 심각한 재앙을 주시는 것도, 모두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구원은 형벌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칭찬을 하기도 하시고 징계를 내리기도 하십니다. 

징계가 필요할 때 징계하시고 칭찬이 효과적일 때 칭찬하십니다. 

그 목적은 동일합니다. 

죄를 무서워하게 만드는 것, 죄를 싫어하고 의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칭찬도, 징계도 모두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롬 8:28). 

 

아멘입니다!

'2025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섯째 나팔 재앙  (2) 2025.07.14
합천 은광교회 방문  (3) 2025.07.13
나팔 재앙  (0) 2025.07.12
인침을 받은 자들  (3) 2025.07.11
일곱 인 재앙  (1) 2025.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