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글 모음

벌초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1. 9. 7. 17:05

가을 장마가 꽤 오래간다.
이렇게 가을 장마가 오래간 적이 있었던가 싶다.
지금까지 매우 드물게 경험하였고 일상적이지 않던 일들이 이제는 비일비제하다.
앞으로는 이런 일들을 자주 경험하게 되는 삶이 일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침에도 비가 내려 우산을 들고 왔는데 점심시간에는 멈추었다.
어제는 우산을 가지고 귀가해야 하는데 깜빡했다.
외래 진료실에 우산이 세개나 있다.

점심 시간에 부지런히 운동복 복장으로 갈아 입고 병원 문을 나선다.
하늘은 흐리지만 다행히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어서 좋다.


태풍 때문에 부유물이 수북하게 쌓였던 강둑은 이제 거의 정상화 되었다.
여러 대의 포크레인과 여러 분들이 며칠을 작업했다.

살수차들도 물로 씻어 냈다.
치우지 않으면 깨끗한 환경을 유지할 수 없다.

시원한 강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하니
걷는 걸음이 빨라진다.
콩에서 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온통 가을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들로 선곡을 했나보다.

장마 탓인가?
때 이른 벛꽃 나무 낙엽 몇 개가 뒹굴고 있다.

지난 토요일 벌초로
뭉친 팔 근육과 요통이 아직 남아 있지만
열심히 팔을 휘젖고 걷다보니 많이 풀려서

이제 파스를 안붙혀도 될 것 같다.

벌초 ᆢ
언제까지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작은 형님도 나이가 드니 힘들어 하셨다.

나 또한 그렇다.

토요일 진료가 없는 날을 선택하여 왕복 일곱 시간 이상 운전을 하고
대여섯 시간 벌초를 하다보면 녹초가 된다.

그래도 올 해는 큰 조카 내외와 조카사위가 함께하여 큰 도움이 되었다.

저들도 새벽 1시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내려와서

아침 7시 부터 벌초 작업을 하고

오후 2시 경에 또 장거리 운전을 하여 올라갔다.


잡초는 얼마나 잘 자라는지 ᆢ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풀들이
봉분들을 뒤덮어 버렸다.

벌초를 하고 돌아 오면서 생각한다.
우리 세대가 지나면 벌초를 할까?
지금도 벌초 대행업을 하는 분들이 있지만
비용도 만만찮다. 봉분 하나에 10만원 정도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안할텐데ᆢ
묘지가 관리되지 않으면 봉분은 낮아지고 허물어져버릴 것이다.
벌초라는 말도 사라지겠지ᆢ

일가친척들이 모여 명절을 앞두고 하는 이 벌초 문화도 사라지겠지.

그래도 벌초 핑게로 힘들지만 가족들이 모여

서로 얼굴도 보고, 조상들 생각도 하고 고향도 찾아가고, 뿌리를 잊지 않는 좋은 점도 있는데 말이다.  

 

장례문화로 까지 생각은 확장되어간다.

매장 문화 보다는 화장, 수목장으로 변하고

개인 묘지 보다는 공우너 묘지나 낙골 공원 등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언젠가는 가족묘지도 사라질 것이다.

영적 깨달음도 있다.
잡초들을 관리하지 않으면 엄청난 속도로 자라서
잔디의 성장을 방해하고 죽게 만든다.
알곡보다 가라지가 더 잘 자란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악은 관리하지 않으면 무서운 속도로 자라서
선한 기운을 방해하고 타락하게 만들어 버린다.

우리의 신앙도
코로나 핑게로 방치한다면
세속적인 것들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지배하고 말 것이다.
벌초를 해야한다.
관리가 필요하다.
방치하면 잡초만 무성해진다.

땀 흘리며 운동해야 건강을 유지하듯이
우리의 신앙도 예배, 기도, 말씀, 교제 없이는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유지하기도 힘들다.

조상들의 묘를 매년 관리하듯
우리의 신앙도 잘 관리하는
한가위 명절, 가을이길 소망해본다.

 

벌초 정의

조상 산소의 잡풀을 베어 내어 묘를 깨끗이 하는 풍습.

개설

벌초()는 조상의 묘에 자란 잡초를 베고 묘 주위를 정리하는 세시풍속이다. 조상의 묘를 깨끗이 유지하기 위한 정성의 표현이라 할 수 있으며, 남자들이 주로 한다. 주로 봄가을에 하는데, 봄에는 한식을 전후해서 하고, 가을에는 7월 보름 이후부터 그믐까지 벌초를 실시한다. 벌초가 끝나면 간단한 주과포를 차려 놓고 재배한다.

연원 및 변천

언제부터 벌초가 중요한 의식으로 정착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유교, 특히 성리학에서 묘제를 중시하는 점을 고려하면 성리학이 보급된 조선시대부터 관습화되었다고 추정된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조상의 묘에 잡풀이 무성한 것 자체도 불효로 인식했다.

절차

벌초는 백중[음력 7월 15일]을 지내고 시작하여 음력 7월을 넘기지 않는 것이 오랜 관습이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음력 8월까지도 풀이 자라므로 언제부터인가 7월에 벌초하는 일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격식을 갖추는 문중에서는 벌초하는 날을 정해 두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직장인들을 배려하여 휴일을 기해 집단적으로 한다. 벌초는 남자들의 몫이었다. 산소에 도착하면 봉분의 앞쪽 아래부터 낫으로 풀을 베는데, 어른들은 봉분을 깎을 때는 꿇어앉아서 깎으라고 가르쳤다. 묘역 전체의 풀을 깎아 내고, 주변의 나무도 손질한다. 베어낸 풀은 묘역 밖에 버린다. 문중 묘역일 경우 벌초가 끝난 다음 윗대 산소부터 간단히 주과포를 차려 놓고 재배한다. 형제끼리만 갔을 경우에는 부모 산소에 먼저 인사하고 윗대 산소로 가서 절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벌초는 전국적으로 행하는 미풍양속으로 고향 근처에 사는 후손들이나 외지에 나간 후손들이 찾아와서 조상의 묘에 자란 풀을 제거하고 묘 주위를 정리한다. 일부 지역에선 금초()라 부르기도 한다. 백중이 지나 처서가 되면 풀의 성장을 멈추기 때문에 이때 벌초를 하면 비교적 오랫동안 산소가 깨끗이 보전되며 추석에 성묘를 하기 위해선 추석 전에 반드시 벌초를 끝내야 한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음력 팔월이 되면 일가()가 모여 벌초를 하는데 이를 “소분()한다”, “모듬벌초한다”라고 부른다. 모듬벌초는 음력 8월 초하루부터 왕래가 잦은 친족끼리 하나의 패를 형성하여 가제벌초를 하는데 보통 8촌 이내이다. 이는 혈족의 분파를 가지로 보고 동성()마을에서도 패가 다르면 따로 벌초를 한다. 이 벌초가 실질적으로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참석을 하는 친족 공동체의 소분()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웃대벌초라 하여 문중() 모듬벌초를 하는데 분파된 친족에서 몇 명의 어른들이 참석을 한다. 날짜가 일찍 정해져 있기에 정일벌초()라 부르기도 한다.

경기도에선 “8월에 벌초하는 사람은 자식으로 안 친다.”라고 하여 추석 전에 벌초를 미리 해놓아야 하며, 제주도에선 “추석 전이 소분 안민 자왈 썽 멩질 먹으레 온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추석 전에 소분을 안 하면 조상이 덤불을 쓰고 명절 먹으러 온다.”라는 말이다. 이 말들은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가장 중요한 명절인 추석 전에 벌초를 해야 한다는 당위론에서 나온 말들이다.

 

벌초를 하지 않은 묵은 무덤을 보고 울산 사람들은 “이 산소 후손은 장관()이라 나랏일이 바빠 묵혔다.”고 빈정거린다.

현황

벌초는 남자들의 몫이었지만 현대에 들어 여자들도 소풍 겸 따라나서며, 날짜도 추석에 임박하여 하기 일쑤다. 도구도 전에는 낫으로만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예취기()[곡식이나 풀 따위를 베는 기계]·예초기() 등을 사용한다. 고향에서 출향했거나 후손이 적어 벌초를 감당하지 못하면 대행업자에게 위탁하는데, 보통 농업협동조합이나 산림조합 또는 지방 전문 업체가 나서기도 한다.

 

 

 

 

 

'2021년 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한 10월의 첫날  (0) 2021.10.05
믿음의 유산  (0) 2021.09.29
오조준  (0) 2021.08.26
말라기  (0) 2021.08.25
영적 침체  (0) 2021.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