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재정과 새해 예산 문제
새해를 맞는 교회 경영에서 가장 신경 쓰는 일 가운데 하나는 교회의 예산 편성이다. 이는 교회 자신의 재정적 합리화요, 교회의 선교 적 사명 수행의 가시 적(可視的) 지침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한 교회의 예산편성을 보아 그 교회의 선교 적 의욕과 계획, 그리고 그 교회 구성원들의 신앙적 봉헌의 깊고 얕음까지를 잴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교회 재정은 예산의 편성에서 보이는 의욕과 더불어 그 관리와 운용의 성실성도 교회 목회에 큰 관계를 가진다. 그러므로 교회의 1년간의 회계결산은 단지 숫자의 정확을 가늠하는 것만 아니라 그것 속에서 온 교우들과 재정 관리자와 목회자가 표한 봉헌과 봉사와 관리의 진실성 여하가 검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목회자는 새해를 시작하는 때 교회 재정의 회계 결산과 예산 편성에서 보이는 교회 상을 점검하고 교회의 선교 적 지표를 설정하며 이를 위한 청지기로서의 관리 사명까지를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교회 재정에 있어서 우선 수입원을 생각해 보자. 물론 교인들의 헌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교회 재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헌금의 신앙적 동기와 그 규준이다.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모든 것의 10의 1을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 헌금 규정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십일조 헌금 규정의 기본적이요, 신앙적 의미로 보면 10의 10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전적인 봉헌의 의미가 있었다. 그 까닭은 바치면 그만큼 복(福)을 받을 것이란 상업적 보상 심리적 기복 사상에서가 아니라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창조 신앙에 근거하여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뿐이라는 소유권의 주권적 기본이념에서였다. 인간은 다만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의 직분뿐이라는 고백에서였다.
그러므로 유목민으로 살 때에는 모든 유축의 처음 난 것, 흠 없는 것으로 바치는 규례였다면, 농경 사회에 들어와서는 또 밭에서 난 모든 소산의 처음 열매로서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규례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바쳐진 물건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봉사하는 레위 지파와 또 제사장들의 생계와 또 제단에서 제물로 바치는 제물로 공급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성별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신앙의 고백 10의 10이 모두 창조주의 것이라는 고백의 신앙적 모티베이션(motivation)이 후기에 이르러 점점 얕아져서 10의 9는 자기 것이요 10의 1만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10의 1조차도 내 것인데 하는 경제관념으로 바뀌어져서 십일조를 바치는 일을 게을리 했고 또 무시하기도 했던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가 야비하리만큼 "너희들이 하나님의 성물(聖物)을 도적질 해 먹는다. 십일조를 바쳐 보라. 복을 받나 안 받나, 시험해 보라"는 등으로 외쳤음을 보게 된다. 예수님 시대에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의 경제적 지원은 십일조 헌금에 의존했다는 증거는 별로 없으나 역시 사도들이 자발적으로 바치는 헌금으로 모든 비용을 감당했음을 잘 알 수가 있다. 가롯 유다가 회계로서 한 여인이 값진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을 때 그것의 용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라든지, 예수가 제자에게 시켜 고기를 잡아 그 입에서 나온 것으로 세금을 바치게 했던 것 등을 미루어 보든지, 빌립이 수많은 군중의 먹을 음식 걱정을 했던 일 등을 보면 그때 예수님과 그 제자 일행의 경제적 뒷바라지도 작은 일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초대 교회 사도들은 오순절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후에는 서로 앞장을 서서 가진 것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어 선교 비용에 제공되게 했고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핍절함이 없게 된 상태였다 했다. 요컨대 성서에서 일관해 보이는 바는 십일조 연보 제도의 이행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기독자가 물질에 대해 어떤 신앙적 고백을 가지는가의 문제와 거기에 따른 경제관이 무엇이냐가 기본 문제였다.
즉,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요, 내가 먹고 입고 쓰고 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라는 신앙의 고백이 선행해야 하며, 그러므로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10의 10을 모두 바쳐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10의 1은 10의 10을 바치는 것의 봉헌의 상징으로 드린다는 성서적 경제적 윤리가 확인되어져야 한다는 문제다.
둘째, 그러므로 교회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헌금에 대한 이 기본적인 신앙적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는 점차로 이 기독교의 기본적 경제 윤리를 완전히 외면하고 인간 개인의 소유욕의 충족과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불사하는 자본주의적 심리 조장으로만 성장해 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앞으로 파멸을 한다고 하면 바로 그 경제 윤리의 기조가 성서적 경제적 윤리를 떠난 데 기인했다 할 것이며 바로 이 점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위험선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역자는 교회의 당면한 재정 조달을 위해 연보를 강조한다는 따위의 얕은 방법을 버리고 기독자들의 본질적인 경제관의 신앙적 기초를 튼튼히 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사도행전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비극적 이야기는 이 면에 가장 좋은 교훈을 준다. 이 내외는 있는 것을 팔아 그 반(半)을 교회에 헌금했다. 요새 같으면 아마도 교회신문은 물론 일반사회 신문에까지도 이름이 나타날 미담으로서 칭송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분은 사도의 책망을 받고 벌을 받아 죽었다. 이 사건이 말하는 교훈은 첫째 하나님께 신성한 약속으로 팔아서 전부 바치겠다는 공약을 위배했다는 것과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이 교회를 통하여 필요하니 전부 바쳐야 한다는 지상 명령을 어기고 물건을 자기 것으로 알았다는 경제관의 문제에 귀착된다. 초대 교회 사람들이 모두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하는 자가 없었다는 사도행전의 기록이 바로 그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기독자라면 자기 재산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록 그 절반을 바친다 해도 결과는 하나님 것을 자기 것으로 둔갑시킨 죄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개인소유의 절대권을 고집하는 고전적인 자본주의 개념과는 정반대가 되는 생각이다. 바로 이것이 이 시점에서 특히 한국 교회에서 깊이 생각할 문제다. 최근 자본주의 경제 구조일지라도 차츰 개인 소유자의 절대화 경향이 변천되어 가고 있는 일은 흥미 있는 경향이요 교회는 이 점을 신학적으로 중시해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땅에 대해 과연 개인의 소유권을 절대화할 수 있을까 하는 법률문제 이전에 사회 윤리적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이 점은 국토의 면적이 그 인구에 비해 작은 나라는 이미 어느 정도의 제약을 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물건의 소유는 사회 공동체의 공유(共有)라는 경제 철학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역시 하나님의 소유권을 찬탈하는 비 신앙적 발상으로 보인다. 거기서도 물건을 통한 인간과 하나님의 인격적 관계, 즉 감사의 축복, 은혜와 보답의 윤리적 관계는 지어질 수 없으니 궁극적으로 경제 윤리가 성립되지 못한다. 특히 오늘날 우리나라의 남북의 대립이나 세계적인 동서(東西) 냉전의 대립, 혹은 남북(南北)의 대결은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투쟁으로도 요약할 수 있다. 즉 두 개의 다른 형태의 소유권 주장, 즉 경제관이 충돌하는 것인데 이 경우에 가소로운 것은 실상 이 모든 것의 소유는 개인도 아니고 공동체도 아닌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외면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교역자들은 바로 교인들의 연보 행위를 기본적인 성서적 경제관, 기독자의 경제 윤리의 신앙적 확립에서부터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전제되지 않으면 교회의 연보 행위의 권장은 실로 성직자의 양식 구걸이요, 교회 경영은 푼돈을 끌어 모아 가족들의 연명을 돕는 것으로 가계를 삼는 비루한 구걸 행위에서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 경우에 연보 잘 거둬들이는 목사란 부자 교인에게 간지러운 아첨을 잘하는 재주를 가진다거나, 그와 반대로 돈을 안내면 지옥 간다고 협박과 공갈을 극적으로 잘 표현할 줄 아는 사기사적 재능을 가진 자일 것이다. 요컨대 교역자는 교인들의 연보가 그들의 신앙적 봉헌으로 성서적 경제관의 기본 윤리의 발로가 되게 하는 데까지 이끌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오늘날 한국 교회 일반에서의 연보 제도는 일정한 규범에 의하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주정 헌금, 월정 헌금 등의 기본적 헌금 제도를 채용하고 있으며 거기에 덧붙여 각종 감사 헌금과 십일조 헌금 등으로 구분되어진 헌금이다. 오늘날 경제생활의 단위가 농경 사회의 경제 구조와 달라 매우 복합적이 되어 있는 경우 십일조 헌금을 어떤 규범으로 시행하는가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여기서 문제점이라 함은 일률적으로 규범화시키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저소득, 즉 생계비의 소득도 어려운 경우의 십일조와 넉넉한 생계비 이외의 이익 분에 대한 십일조와는 그 헌금 지불의 내용에 있어서도 다르려니와 그 영향은 더욱 큰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십일조 헌금을 권장할 수 있어도 강요할 수 있도록 규범화시키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최근 교회 연보의 경향을 보면 각종 감사 헌금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꼭 일정한 규범은 아니나 경. 조간에, 혹은 영. 육간에 받은 은혜의 감격을 마음과 뜻으로도 물론이지만 연보로서 그 봉헌의 표를 삼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유 헌금 제도, 즉 십일조 헌금까지 합한 자유 헌금 제도가 순수한 신앙적 표현이란 점에서는 비교적 순수하고 바람직하지만 동시에 교회 경영이란 면에서 보면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즉 교회 경영을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교회 사업을 책임적으로 지속 발전시킬 수 있는 보증력이 약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교회의 현재 사정으로 보면 가장 합리적인 연보 제도는 교인들의 주정 연보제로 보인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점으로 서다.
그 하나는 교인들이 주일날 때에는 대예배에 자기의 작정하여 준비한 헌금이 예배 속에서 봉헌의 제물로 바쳐져서 연보가 곧 예배의 일부분이 되게 하는 신앙상의 효과요, 다음으로는 교회의 유지 경영에 있어서 재정적 윤활을 기하기에 가장 알맞다는 점이다. 즉 교회의 유지 경영이 교인의 연보에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는 실정에서는 매주일 예상된 헌금 수입으로써만이 계획된 교회 경영과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월정 연보 제도의 경우도 예산 집행 면에서는 수입원으로서 주정 연보 제도와 비슷한 장점이 있으나 이 경우에는 매주 예배 시에 예배 행위로서 봉헌하는 연보와 월정 헌금을 병행시키기에 난점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이중적 헌금 행위가 되기 쉽다. 따라서 연보는 그 바치는 자의 신앙적 봉헌의 표현으로써 보다 교회 유지비용의 분납 적 갹출의 인상으로 헌금의 신앙적 의의를 하락시킬 위험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만일 교회가 그 헌금 제도로서 주정 헌금 제도를 채택하였을 경우 그 주정 헌금 총액이 전체 예산의 몇 퍼센트가 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선이겠는가의 문제가 있다. 물론 교인들의 경제 수준과 또 교회가 서 있는 지역적 경제 사정의 특성 등에 따라 일률적일 수는 없겠으나 대체로 주정 헌금 총액이 교회의 1년 간 총예산액의 3분의 2를 상회하는 선에 있어야만 건전한 재정운영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교회의 주정 헌금이 최소한 교회 유지를 위한 재정지원은 책임지는 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유지비란 교역자의 생활비용 일체와 교회의 정상적 관리비용 등은 정기적으로 고정된 주정 헌금 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일 교회 유지의 기본 재정을 불안정한 각종 특별 헌금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 교역자와 교회 관리는 결국 돈 있는 사람의 호주머니를 쳐다보고 거기에 매이는 역사태의 시험을 받을 위험이 크다.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업의 지속성 있는 추진이 항상 불안한 가운데 있게 된다.
교회의 건전 재정의 선이란 교회재정이 인건비 등을 포함한 교회 유지비가 교회의 각종 사업비와의 대비(對比)에서 각각 50%선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경우를 두고 말한다. 그러니 신 개척 교회의 경우 거의 100%의 재정이 교역자의 생활비와 약간의 교회 유지비로만 충당되는 것이 통례다. 그렇다고 그 교회는 사업이 없는 교회가 아니다. 교회 사업의 본 대종(大宗)은 역시 선교 사업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100%의 사업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자립하는 교회의 경우 이상적인 안정선이라면 재정 면에서 위에서 말한 교회 유지 관리비와 각종 사업비가 반반(半半)을 가늠하게 되는 경우나 이것은 교회가 크면 클수록 재정 능력이 상승되면 그 대비(對比)는 반대로 되는 것이다. 즉 사업비가 70프로를 넘고 인건비와 유지비가 30프로를 하회하는 경우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이러한 규모의 교회는 비대해진 몇몇의 교회에 국한되는 경우다.
여기서 또 하나 고려할 점은 교인들의 경제력의 내용이다. 지금 우리나라 신교회는 거의 절대다수가 중산층의 중(中)과 하(下)에 있는 계층에 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위에서 논한 바의 헌금의 내용은 대체로 이러한 계층의 경제적 수준과 그 구조적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러나 영세 농촌이나 어촌, 그리고 급격히 증가하는 공장 노동자 계층의 교회일 경우 교인 헌금이 교회재정의 기간을 이룬다 하는 경우 자립 교회란 오직 교회 유지비와 교역자 봉급을 지불하는 정도를 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점은 일부 경제적으로 부유한 선진제국의 교회들의 경우도 같은 형편에 있다. 즉 농어촌 교회의 영세성과 노동자 지구 교회의 재정적 영세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그 유지로 급급하여 수 개 처의 교회를 한 교역자의 목회구로 삼는다든지, 다른 교회의 재정 지원으로 충당해 간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금후 우리나라 농업이 기계화가 촉진되는 경우 꼭 같은 농지 면적에 농업 인구는 적어도 과거 70, 80프로에서 20이나 25프로 선까지로 줄어들 것이 예견된다. 선진 국가들의 경우를 보면 그 국가의 경제의 기간이 농업인 경우에도 농업 인구는 전 인구의 10퍼센트를 전후하는 선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공업화의 촉진으로 농업 인구는 앞으로도 계속 축소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비록 농촌 경제 수준이 높아간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농촌 교회의 재정 자립 능력이 증가하는 결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재정적 경영면으로 보면 각 교회 단위보다 앞으로 개 교단이 교회 재정 운영의 새로운 개발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에 차츰 이르고 있다 함을 알아야 하겠다.
넷째, 이제 교회의 재정 예산에서 지출의 배분을 어떻게 함이 가장 합리적이겠는가. 두 가지 면을 관심하면 좋겠다.
그 첫째는 교회의 기용할 수 있는 총 예산을 그 교회가 세워져서 하려고 하는 사업, 즉 그리스도의 현존체(現存體)로서의 교회가 교회됨의 선교 적 증언을 하려는 의욕과 의도를 어떻게 하면 예산과 그 예산의 집행 면에서 실제화 시킬 것인가의 문제요, 둘째로는 교회 재정 관리의 책임을 어떻게 하여 성실히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다 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예산 배분(配分)의 경우 우리나라 교회의 평균치의 교회 재정 운용을 보면 예산을 통(通)한 사업 항목으로서는 교회의 관리 운용비, 인건비, 교육 사업비, 전도 사업비, 사회봉사 사업비, 그리고 상회 비, 의전 예배비 등으로 구분되는 것이 통례다. 물론 그 항목 배분의 호칭은 일정하지 않지만 그 내용은 대동소이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 배분의 비율로서 적어 도 위에서 말한 교회 유지 운용(인건비 포함)과 사업비의 비율의 반반(半半)정도의 배분을 가지려면 도시와 농촌 교회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현재로서 보면 교회의 1년 총 예산액이 7백만 원으로 천만 원을 상회하는 선에 이르러서야 겨우 가능한 정도가 된다. 이 경우에서도 교회가 교회 관리 유지비용이 그 교회 건물과 운용 방식에 따라 사치성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시대와 환경을 일부러 역행하여 자기 집에서는 현대식 양옥 생활을 하면서 교회당은 헛간 같이 하고 있으라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당과 그 시설이 분에 넘치도록 사치하면 그 운용과 유지에 막대한 재정이 소모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비 중에서도 그 교회가 그 해에 특히 어느 부분의 사업을 중점적으로 전개할 것인가, 즉 교인들의 훈련과 교육이 더욱 요청되는가, 혹은 교인 배가 운동 등 대내적인 전도 운동이 특히 요구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외부적인 선교 운동일까? 혹은 사회봉사 사업에 역점을 둘 것인가에 따라 예산의 배분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부분을 약화시킨다는 것은 아니나 사업의 중점적 노력은 어느 경우에도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배분 비율의 결정은 교회 사업의 정책 결정이 앞서면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들의 대부분은 새해의 예산 편성에 있어서의 이 정책 결정 과정을 매우 소홀히 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사실 예산 편성에 있어서 계수의 조정 작업은 한 두 실무자에게 맡겨도 무방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교회의 교역자는 당회 원과 더불어 새해의 교회 사업의 정책적 지침을 작성하는 작업에 신경을 쏟아야 한다. 예산 위원회를 구성하되 시기적으로 전년도 늦어도 1개월 전에 구성하고 그 구성 요원은 교회 각 부서와 기관에서 재정 관리를 맡은 실무자는 물론 그 부서 책임자와 또 교회 재정의 전반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관찰 검토할 수 있는 이를 신도들 중에서 선정하여 조직하고 교역자는 수입원의 자료가 되는 교인들의 경제생활 동태와 신앙적 봉헌의 자세 동정과 지난해의 교회 전반 사업 진행의 분석 평가 등의 참고 자료를 거기에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보통 예산위원장은 전년도의 재무부장이 담당하는 것이 실제상으로 가장 효과적이며 그가 1년 간 교회 재정을 운용하면서 순수 재정 관리 면에 참고자료로 또한 이 예산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러한 참고 자료를 놓고 예산위원회는 먼저 새해 교회 사업의 방향과 중점 사업을 결정하고 거기에 따라 예산의 배분 비율을 결정하면 큰 모순 없이 진행할 수 있다. 대체로 총예산 규모는 교회에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전년도 결산 액에 일반적 물가 상승 액 비율을 감안하여 책정하면 별로 무리가 없게 된다.
또 하나의 면으로 위에서 말한 재정 운용과 효과적 관리 문제다. 이 면에서 과거 한국교회는 적지 아니한 시련을 겪은 일이 많았다. 재정 관리를 책임진 책임자의 재무 관리의 불성실, 혹은 그의 개인적 파산과 경제 곤궁 등 사건으로 교회 재정이 직접 간접으로 피해를 보게 된 일, 혹은 재정 관리자가 그 재정 관리권을 이용하여 교회 행정까지를 전단하려 들며 심지어는 교역자의 생계까지 위협하는 등 악질적 처사까지도 간혹 있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교회 재정 운용도 차츰 과학화되어 가기 때문에 이러한 원시적 폐단들은 많이 시정되고 있다. 그러나 교회 재정 관리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가룟 유다에서 이미 불행한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룟 유다는 어느 점에서 모든 교회 재정 관리자들에게 역설적으로 교훈을 주고 있다고 본다.
교회 재정 관리와 효율적 운용의 비결은 재정 관리는 재정 관리의 방법대로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은혜로 말없이 덕이 되게 한다는 것 때문에 교회 재정 관리에서 곧 시험이 생기고 문제가 생긴다. 나는 어느 때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당의 하나를 건축하신다는 목사님이 그 교회당을 건축하는 도중 저를 찾아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중, 자기는 건축 책임자를 잘못 만나 약 5천만 원쯤 손해를 보았다고 하는데 그 목사님의 표현이 5천만 원의 거액의 손해를 마치 몇 백 원 잊어버린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고 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후 모름지기 그 교인들의 헌금 5천만 원 속에는 가난한 과부의 엽전 두 푼 같은 돈이 절대 다수의 액수일 텐데 어느 협잡꾼에게 몽땅 넣고도 어떻게 그리 태연할 수 있을까 싶어 아연했던 일이 있었다. 사실 돈이란 도적 같은 자의 손에 있는 것이라면 5천만 원이 아니라 5억 원이라도 대수로울 것이 없지만 하나님의 제단 앞에 바쳐져서 성별된 이후의 돈은 돈이 아니라 희생의 제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재정은 그 금액의 다과로서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돈에도 거기 담겨진 성도들의 정성과 그것을 성별하여 주신 성령의 권위가 박혀 있기에 그 무거움은 그지없이 크다.
그러므로 교회의 재정 관리는 냉정해야 하고 또 철저히 과학화된 일반 회계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또 교회의 재정 관리는 언제나 공개주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나의 경험으로 보면 교회 재정 관리자가 그 관리에 있어서 교인들에게 공신력을 잃으면 교인들의 헌금 열이 저하되고, 그 관리자의 관리가 공신력을 얻으면 헌금 열이 현저히 증가되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 교회 재정 관리의 방법은 당회 원 중에서 재무부장과 실제 회계 사무를 담당하기 위해 집사 중에서 한 분의 회계를 뽑고 또 몇 분의 부 회계를 뽑아 재정 관리를 맡겨 회계 관리의 체계를 복수화하며 재정 위원회를 두어 재정 계획 심의, 검토, 자문 등에 임하게 하고 별도로 감사단을 두어 매달 혹은 연 2,3차의 정기 감사를 시행하여 제직회와 교회에 보고하게 하며 회계는 회계 보고를 매달 정기 제직회에 보고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교회 재정 운용의 정확을 기하기 위하여서는 그 제도를 과학화하고 기계화함으로써 기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 재정운용과 효과적인 관리는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즉 재원이 교인들의 헌금에 의존하기 때문에 교인들로 하여금 각기 자기 분수만큼의 연보를 꼭 바치게 권고하는 일과 또 그 연보를 바침으로써 그 자신에게 큰 기쁨이 되게 하는 일 등은 그 자신의 신앙과도 연결되지만 재정 관리자들이 교인들에게 보이는 신앙적 정열과 봉헌의 순수성과 은혜의 감격 등에 크게 관계된다. 그러므로 교회 재정 관리자는 그 자신이 온 교우들이 볼 때에도 그 있는 것, 가진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전적인 봉헌자라는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때로 재정 관리자는 자기의 마땅히 바칠 능력과 분량은 100인데 10도 바치지 않고 가난한 교우의 10의 10을 바친 연보를 쳐들고 교인들에게 헌금을 요청하는 예가 있다. 실로 이러한 자는 교인들의 헌금 열을 가로막는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재정 관리자는 모든 교인들을 선행하여 봉헌의 선봉에 선 모범 신앙을 가진 자여야 한다. 예수의 직제자 가룟 유다까지라도 그 재정 관리에서 착하고 신실한 청지기 사명을 다했으면 그는 큰 축복과 상급을 받을 만하다. 교회는 이러한 일꾼을 배나 더 존경할 것이다.
교회회계의 투명성과 내부통제제도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그 모임을 제도화한 현실 교회는 부동산, 수익용 재산, 수입 등의 물질적 기반에 바탕을 두고 전문가 집단에 의해 운영되는 종교단체로서 세상의 경제와 맞물려 있다. 교회의 재정 운영은 세상 안에 있는 종교단체가 그 본분에 충실한가를 짐작하게 하는 요소이고, 교회에 대한 신도들과 시민사회의 신뢰성을 얻는 기회이다. 그러나 교회의 재정 운영은 교회에 큰 시련이 되기도 한다.
많은 지 교회들에서 교회 재정 운영을 둘러싼 추문이 끊이지 않는다. 2017년 5월 대법원은 여의도 순복음교회 원로목사 조 용기 씨의 배임 및 조세 포탈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의 확정 판결을 내렸는데, 이 판결에서 보듯이, 교회 재정 운영을 둘러싼 담임목사들의 범죄도 심심치 않게 불거지고 있다. 이로 인하여 교회 재정 운영에 대한 신도들의 불신이 커지고, 교회의 사회적 신인도는 걷잡을 수 없이 떨어졌다. 개신교에서 신도 이탈이 가속화되고, 젊은 세대의 교회 가입이 크게 둔화된 것은 교회의 사회적 신인도 하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회의 사회적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교회의 본분과 과제에 부합하게끔 교회의 재정을 투명하고 신뢰성 있게 운영하는 방안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관련해서 필자는 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의 원칙들 가운데 ‘참여’의 원칙과 ‘정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교회 회계기준을 수립하고, 교회 재정 운영에 대한 내부통제제도를 확립하고, 교회 재무제표의 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싶다.
교회 회계의 필요성
재정 운영의 측면에서 볼 때, 교회는 예배, 친교, 교육, 선교, 봉사 등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신도들이 낸 헌금과 기부를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 단체이다. 교회는 이 수입원을 지출하여 교회의 고유한 과제들을 수행하고, 그 과제들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확보하고, 기금이나 적립금 등을 활용하여 교회의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 교회를 치리하도록 성별된 교역자들과 장로들은 교회의 지도부를 구성하여 하나님께 봉헌된 헌물을 맡은 청지기로서 그 봉헌물의 보관과 사용과 처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선한 관리자의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교회의 수입과 지출을 망라한 모든 재정 운영은 하나님과의 관계, 교회 구성원들에 대한 관계, 세상과의 관계에서 그 적정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교회의 재정 운영은 무엇보다도 하나님보시기에 적절하여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교회의 재정이 효과적으로 충분히 사용되었는가를 놓고 판단할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일은 예배, 친교, 교육, 선교, 봉사 등으로 이해되어 왔고,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의 봉사 개념이 정립되어 있는 오늘날에는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실현하기 위해 펼치는 다양한 활동들과 특히 작은 사람들 편에 서서 수행하는 봉사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 교우들의 헌금이 교회의 성공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교회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는, 헌물을 바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헌물이 사용되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하고, 그 헌물의 사용과 처분이 투명하게, 공신력 있게 이루어졌음을 확신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과의 관계에서 교회는 세상을 섬기는 하나님의 도구로서 작은 사람들 편에서 정의와 봉사를 실천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세상의 경제와 맞물려 있는 교회의 재정이 투명성, 신뢰성, 공익성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음을 입증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교회의 재정이 세상에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재정 운영이 하나님, 교회 구성원, 세상과의 관계에서 적정하게 이루어졌는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교회 재정 운영에 대한 회계 처리가 교회 구성원들과 세상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준에 따라 정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가 종교단체로서 세상의 경제와 맞물려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한에서 교회 회계는 불가피하다.
교회 회계는 ‘교회 경영’을 위한 판단자료일 수 없다
교회 회계는 교회의 재정 운영을 건전하게 하는데 꼭 필요하지만, 교회 회계의 여러 정보들을 활용하여 효율적인 ‘교회 경영’을 하겠다고 나서서는 안 된다. 필자는 이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교회 회계를 바로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본시 회계는 영리 활동을 하는 기업의 손익을 판단하고, 기업의 자산과 자본의 증감을 파악하고, 현금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인식하는 등 기업 경영의 성패를 가늠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교회가 이러한 의미의 회계를 필요로 하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교회의 성공과 실패는 기업의 성패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다. 기업의 성패를 판단하는 가장 분명한 지표는 이윤이고,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기업 경영자는 매출을 늘리고 비용을 절감하고, 시장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기업저축을 투입하는 결정 등등을 하여야 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시계열상의 회계 분석 자료들을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교회는 기업과 같은 영리 활동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교회 경영’은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경영 마인드’를 갖고서 교회를 운영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지만, 그 주장은 자본의 논리나 화폐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교회를 자본과 화폐의 지배 아래 놓겠다는 의견으로 간주되기에 단호하게 배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 회계는 ‘교회 경영’을 위한 판단자료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교회 회계의 수량화된 자료들은 교회가 자신의 본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는가를 직접 판단하는 가늠자로 여겨질 수도 없다. 교회의 성패는 교회에 맡겨진 과제들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는가에 따라서 판단하여야겠지만, 교회에 맡겨진 과제들, 곧 예배, 친교, 교육, 선교, 봉사 등은 그 성과를 계량화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교회 등록 신도의 수효, 예배 출석 교인의 수효, 헌금 액수, 교회의 각종 프로그램들에 참석한 사람들의 수효 등의 양적 지표에 따라 교회의 성패를 가늠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개신교의 거의 모든 교단들에서 지교회가 노회 혹은 총회에 보고하는 교회 현황에 주로 교인 수효와 헌금 액수를 기입하도록 하는 관행에 의해 부추겨지기도 한다. 교회의 성과를 양적으로 계량화하려는 시도는 교회가 빠져 든 양적 성장의 결과이기도 하고, 양적 성장을 끝 갈 데 없이 부추기는 유인이기도 하다.
양적 성장을 목표로 설정하는 교회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이웃 교회들을 에큐메니칼 친교와 협력의 상대로 여기기는커녕 경쟁과 세력 확장의 대상으로 설정한다. 그 결과, 개 교회 중심주의와 물질주의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되고, 예배, 친교, 교육, 선교, 봉사 등 정작 교회가 수행해야 할 하나님의 일조차 양적 성장의 요구 아래서 왜곡되거나 제대로 수행되지 못한다. 개교회중심의 재정 구조가 고착되어 있는 개신교 교회에서 대부분의 교역자들은 교인 수효와 헌금 액수의 증감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당회의 압력 아래서 성장 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교인 수효와 헌금 액수의 많고 적음이 교역자들의 역량을 가늠하는 지표로 자리를 잡고 있는 풍토에서 교역자는 성장주의와 물질주의의 유혹을 떨쳐내고 자주적으로 위엄 있게 하나님의 일에 나서기 어렵다.
교회의 성공을 양적으로 측정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극단적인 폐해는 예배 처소의 거대화와 화려한 장식, 교회 부속 시설의 확보, 수양관이나 임대건물 등 부동산의 확보, 이를 위한 기금이나 적립금 확보 강박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양적인 성취는 교회 회계의 여러 자료들에 어김없이 기입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량화된 수치들이 교회의 성공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 인프라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과 신도들, 그리고 세상 앞에서 교회가 교회에 맡겨진 과제들을 교회답게 수행하였는가를 가늠하는 고도의 신학적 작업이다. 교회가 예배, 친교, 교육, 선교, 봉사 등을 수행하면서 거둔 성과는 비용 대 효과 분석을 통하여 드러나기 어렵다. 따라서 교회 회계는 교회의 성공을 가늠하는 지표로 쓰이기 어렵고, ‘교회 경영’을 위한 판단 자료로는 더더욱 쓰일 수 없다. 그렇지만, 이처럼 교회 회계의 용도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다고 해서 교회 회계의 중요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교회 회계의 쓰임새
교회 회계를 엄정한 회계 기준에 따라 작성해서 공개하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 회계는 교회 재정 운영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봉헌된 물질을 신실하게 관리하고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게 사용하는 청지기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
둘째, 교회 회계는 그 특성상 예산 회계이기에 교회 지도부가 설정하는 교역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예산 계획을 수립하고 그 집행 결과를 결산하여 교회 수지계산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돕는다.
셋째, 위의 첫째 항과 둘째 항에서 언급한 내용과 연결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교회 재정 운영의 적정성에 관련하여 덧붙인다면, 교회 회계는 예배, 친교, 교육, 선교, 봉사 등 교회가 반드시 수행하여야 할 과제들을 위한 예산 수립과 그 집행, 그 과제들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의 확보를 위한 예산 계획과 집행, 교회의 미래를 위한 적림금과 기금의 확보 등 교회 재정 활동의 적정성에 대한 판단의 자료를 제공한다.
넷째, 교회 회계는 교회의 발전을 위한 투자 계획을 합리적으로 수립하고 그 집행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도록 판단 자료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교회 발전을 위한 무모한 부동산 매입과 교회 건축 등은 교회를 재정적 파산 상태로 이끌 수 있기에 교회 수입과 그 결산을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자본수지와 그 비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하는 회계 자료들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다섯째, 교회 회계는 교회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비용이 낭비되지 않도록 통제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예를 들면, 교회가 버스를 소유하여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리스 방식의 교회 버스 운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섯째, 교회 회계는 교회를 구성하는 신도들이 교회 예산의 수립과 편성, 그 집행과 결산 등 교회 재정 활동의 전 과정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교회를 형성하고 운영하는 책임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한다.
일곱째, 교회 회계는 그 자체가 교회 활동의 기록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교회의 발전을 평가할 수 있는 자료로서 기능한다.
여덟째, 교회 회계는 교회의 재정이 투명성, 공신력, 공익성 등의 요구에 따라 운영되고 있음을 교인들과 세상에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교회 회계가 절차에 따라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교회 회계는 ‘교회 경영’을 위한 판단 자료나 교회의 성공을 가늠하는 자료로 사용되지 않고도 매우 다양한 쓰임새를 갖고, 그 쓰임새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교회 회계 기준
「교회 회계 기준」은 198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에서 최초로 제정되었으며, 1999년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교단 차원에서 교회 회계기준을 제정한 최초의 사례이고 유일한 사례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차원에서는 2013년 「교회회계와 재무처리 기준」을 제정한 바 있다. 예장 통합 측의 기준과 NCCK의 기준은 모두 지 교회에 권고되었을 뿐 의무사항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교회 회계가 중요한 쓰임새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회계의 재무제표가 개 교회 차원에서 엄격한 회계기준에 의해 작성되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예장 통합 측의 교회 회계기준에서 교회 회계에 복식부기를 도입하였다는 것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다. 교회 회계는 현금 중심으로 수입과 지출을 단순하게 기입하는 단식부기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러한 장부 기재는 수지계산을 하는 데 그칠 뿐 자산과 부채의 변화, 자본수지 균형 등 교회 재정 운영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 이 때문에 예장 통합측은 단식부기 작성 관례를 깨고 복식부기 도입을 통하여 발생주의 원칙에 따라 교회 회계 장부를 기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설정하였다.
복식부기를 시행하게 되면, 복식부기로부터 예산수지결산서, 자금수지계산서, 대차대조표, 부속명세표 등 재무제표를 손쉽게 작성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교회 재정운영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과 자료들에 바탕을 두고 교회 운영과 사업 계획에 관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쉬워진다.
예장 통합 측 회계기준에는 잉여금처리에 관한 문서도 작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교회가 영리 기관이 아니어서 잉여금의 분배 등에 관한 관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것은 불필요한 문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소한 실수가 남아 있는 것은 어쩌면 예장 통합측 회계기준이 ‘교회경영’을 염두에 두고 회계전문가들에 의해 정교하게 가다듬어졌음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밖에 예장 통합측 회계기준에 관련해서는 고정자산의 감가상각이 배제되었기 때문에 교회 자산에 대한 실사가 어렵다는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지적되고 있으나 여기서는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NCCK가 마련한 「교회회계와 재무처리 기준」은 한국회계기준원이 작성한 「비영리조직 회계기준」 초안을 대폭 수용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 회계와 세속적인 비영리조직의 회계 사이의 간격을 좁혔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교회 회계를 세상에 공시하더라도 시민사회나 국가가 이를 파악하고 평가하기 쉽게 회계기준이 마련되었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교회의 특성에 맞는 회계 및 재무처리 지침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도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이 지침에서 언급되고 있는 ‘운영 성과 표’는 재무제표에 상세하게 기입하기 어려운 사업계획과 활동 내용을 정리한 문서이다. 따라서 교회의 성과를 가늠하는 문서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NCCK의 「교회회계와 재무처리 기준」도 발생주의 원칙에 따른 복식부기 작성을 원칙으로 삼았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그러면서도 NCCK는 이 원칙을 예산 규모 5억 원 이상의 교회에 적용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아 교회의 현실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있다. NCCK의 지침은 복식부기로부터 도출되는 재무제표를 작성할 것을 요구하고, 이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운영성과 표’와 현금 흐름 표, 주석 등을 작성할 것을 요청하였다.
예장 통합 측과 NCCK가 마련한 교회예산기준 혹은 교회 회계 및 재무 처리 기준은 교회 회계가 엄격한 회계기준에 따라 작성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담고 있다. 발생주의에 따른 복식부기는 교회 재정 운영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과 자료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만, 이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회계 지식이 필요한데다가 교회 재정이 일정한 규모에 이르렀을 때 효과적이다. 따라서 예산 규모가 적은 교회에 복식부기 작성 지침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규모가 작은 교회들에서는 현금주의 원칙에 따라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되, 교회 수입과 지출을 관항목 수준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간이 대차대조표를 작성하고, 교회 사업 계획과 집행 내역을 대차대조표의 부속 문서로 마련하거나 주석으로 기입하는 것으로 족하다.
교회 회계 기준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세부적인 지침들을 들여다보아야 하지만, 이 글에서는 세부적인 지침들을 상식적인 내용으로 간주하여 더 자세한 논의를 하지 않는다.
내부통제제도
교회의 재정 운영은 엄격한 교회 회계기준에 따라 통제될 수 있지만, 이러한 회계기준은 내부통제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부통제제도는 교회 재정에 관한 업무 분장과 관련되어 있다. 그 원칙은 간단하다. 우선, 재물의 보관과 재물의 사용을 분리한다. 재물을 보관하는 사람이 그 재물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둘째, 재물 보관과 그것에 대한 장부 기입을 분리하고, 재물의 사용과 그것에 대한 장부 기입도 마찬가지로 분리한다. 상호 체크가 가능해서 부정과 독직의 가능성을 없애자는 뜻이다. 이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인사 규정들을 제정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더 이상 자세하게 논하지 않는다.
셋째, 집행 계획을 수립하여 절차에 따라 승인을 받고, 그 계획을 집행할 때에도 각 단계별 집행내역을 절차에 따라 승인을 받는다. 집행 결과는 절차에 따라 보고하여 승인을 받는다. 이렇게 하는 것은 책임의 소재와 감독권 행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업무에 대한 감사와 재정에 대한 감사가 교회 재정의 업무 분장에서 독립된 위상을 갖는 기구에 의해 항시적으로 이루어지게 한다.
이러한 내부통제제도는 교회에서 제대로 확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믿고 맡긴다는 불문율이 교회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재정과 관련된 사고들은 이 불문율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물은 맘몬으로 둔갑하여 사람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쉽게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재정 운영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생명처럼 중요한 교회에서는 내부통제제도를 엄격하게 확립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런데 교회의 내부통제제도를 무너뜨리는 장본인은 교회를 세우고 발전시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담임교역자인 경우가 많다. 그러한 교역자들은 대체로 카리스마적 유형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합리성의 요구나 법이나 준칙의 규율에 매이지 않고 권위를 앞세워 자신의 뜻에 따라 교역 활동을 펼치고 교회 재정을 임의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교역자의 권위에 눌린 당회 원들과 제직들은 교역자의 전횡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협력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해서 교회 재정 운영의 최종적인 승인 자이자 감독자인 담임교역자가 앞장서서 교회재정 운영의 준칙을 무너뜨리게 되면, 교회는 복마전을 방불케 하는 재정 파탄 상태에 직면한다. 이에 염증이 난 신도들의 일부가 담임 교역자의 재정 전횡을 문제로 삼고 이를 상급 치리 기관이나 사법 기관에 고발하기에 이르게 되면, 이 불행한 사태는 결국 담임교역자의 배임과 횡령, 세금 포탈 등을 다스리는 국가형벌권을 발동시키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
교회 회계 공시의 의무화
교회의 재정 운영은 교회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도 공시되어야 한다. 교회 구성원들은 교회 재정을 조성한 당사자이기에 교회 재정에 관한 회계 보고를 받을 권리가 있다. 교회 재정 운영의 최종 책임자인 담임교역자는 절차에 따라 교회 재정에 관한 회계 보고서를 작성하여 감사를 받고, 감사 결과를 첨부한 회계보고서를 제직회를 경유하여 교인 총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회계보고서는 교회 재정에 관한 재무제표, 교회 사업 계획과 집행 내역, 부속명세표와 주석 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 문서들은 영구적으로 보관되어야 하고, 항시적으로 공시되어 누구든 이를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도 교회 회계를 공시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교회가 첫째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의 봉사 개념에 따라 세상을 섬기고 작은 사람들 편에 서서 정의를 실천하고 봉사를 펼치는 공익의 구현자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공익성은 세상을 섬기는 교회의 예산 계획과 그 집행 내역이 기록된 교회 회계의 공시를 통하여 누구나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교회는 세상의 경제에 맞물려 그 나름의 경제 활동을 하는 종교단체이고, 교회의 인건비 지출과 재화 및 서비스 소비, 그리고 교회의 수익사업은 세법의 규율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재정 운영과 회계의 정보를 있는 그대로 세무 당국에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세무 협력 의무가 교회의 회계를 세상에 공시하여야 할 중요한 이유이다.
국가는 국가 나름대로 교회 회계를 공시하도록 유도하는 법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교회 회계를 공시할 때에만 세무당국이 교회에 기부금 증명서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면, 교회의 회계 공시는 촉진될 수 있다.
맺음말
교회 쥐처럼 가난하다는 말은 교회가 세상에서 현존하는 이상적인 방식을 가장 잘 표현한다. 세상을 섬기기 위해 자신에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내어주기 때문에 교회의 곳간은 비고, 그 곳간에 사는 쥐는 배가 고프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곳간이 빈 교회는 실패한 교회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그럴까? 교회 회계는 교회의 이상적인 현존 방식을 기록하는 문서가 아니다. 그러나 그 문서는 교회의 재정 운영이 투명성, 신뢰성, 공익성의 요구에 따라 얼마나 적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정보들을 제공한다. 그 정보들은 물론 빈약하지만, 매우 중요하다.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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