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이라는 단어는 모든 인간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단어이고 로망이다.
그래서 만사형통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애용되고 소원하고 바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형통은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되어 감을 말한다.
亨通, go well, turn out well, prove successful
오늘 아침 말씀 본문은 시편 73편 1-28편이었다.
머리로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배우고 말씀을 읽고 들어서 알고 있지만
당장 눈 앞에서 펼쳐지는 악인의 형통 앞에서 부러움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 진심이다.
100% 조금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눈 돌리지 않으며, 초연하다고 할 수 없다.
말은 하지 않으나, 태연한 척 하지만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또한 왜 의인은 고통을 당하여만 하는 것인가?
왜 의인은 형통하면 않되는 것인가?
물론 의인이 형통한 경우도 많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사실 몇 가지를 빼면 그들의 인생이 비교적 형통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만사 형통이다.
물론 영원한 삶, 영생의 관점에서 볼 때 무엇이 진정한 형통인지 판단하고 동의하며 기대하며 살아가지만
현실의 형통함에서 바라볼 때 의인도 고통 앞에서 힘이 든다.
그것이 인간의 죄성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 세상이 다 형통하도록 창조하셨지 않은가?
그러나 인간의 범죄함으로 형통에 문제가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날마다, 순간마다 만사의 형통을 그리워하고 꿈을 꾼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을 그리워 하듯이 ...
진정한 형통은 무엇인가?
당연히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영원히 주와 함께 사는 삶이다.
이 세상 짧은 나그네 인생길의 형통만이 전부가 아니기에 진정한 형통을 바라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도 인내할 수 있고 영원한 진정한 형통을 믿으며 소망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의인의 삶이기에 ...
언제쯤 내 마음에서 악인의 형통에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의연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왜 하나님은 의인에게 고통을 주시는 것일까?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다. 어렴풋이 그 뜻을 알아갈 뿐...
그 고통이 영원한 형통의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그 고통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오늘도 모든 인간은 만사형통을 원한다.
고난이 유익이라고 말하지만 고통을 원하여 사서 고통을 당하는 자는 많지 않다, 아니 없다.
물론 고난이 주는 유익이 많음을 인정하고 경험도 했었다.
그렇지만 또 고통을 겪어야한다고 하면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일평생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경험하다가 가는 것일까?
인생 그 자체가 고행이라고 한 불가의 말이 떠오른다.
백팔번뇌의 인생은 고통에서 헤메이다가 삶을 마치는 것일까?
태어나면서 부터 죽을 때 까지 울면서 태어나고, 울음을 들으면서 죽는다.
에덴에서 추방 당한 후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삶은 고통이 되었다.
이런 고통 앞에서 초연해질 수는 없을까? 해탈, 담담하고 담대해지고 ...
수많은 지혜자들이 많은 교훈으로 가르치고 가르침을 주었다.
알면 무엇하리... 현실의 고통은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마음 편하게 힘들지 않게 그 고통을 감당할 뿐이다.
반면에 악인의 형통도 이해할 수 없는 미스테리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인간이 신에게 끝없이 던지는 질문이 아니던가?
찰라 같은 인생이라고 하지만, 이 땅에서 악의 형통을 바라보는 인간은 불편하다.
최종적인 선의 승리, 권선지악, ....
이루어질 수 없기에 소원을 담아 노래하고 글을 쓰는 것인가?
양심에 털이 난 자들은 이 현세의 형통에 목숨을 건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양 이 땅에 올인을 한다.
악인의 형통의 결국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
정말 악인의 형통에 목숨 걸어도 되는 것인가?
모르기에 목숨 걸고 불나방 처럼 달려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형통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불법으로 형통을 이룰 수도 있다. 그것이 현대에 돈이 아닌가?
돈이다 다 된다는 의식 말이다. 정말 많은 것을 형통케 할 수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서 돈이 우상이 되어 버렸다.
어찌 돈 뿐인가? 인본주의자들에게는 인간이 모든 것을 형통케 할 수 있다고 노래한다.
과착 만능주의자들은 과학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러한가...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궁극적인 의미의 형통은 무엇인가?
그것을 묵상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주장에 악인의 형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 둘을 구별할 줄 알고, 달게 의인의 고통을 견디는 자여, 그대 복이 있으라.
진리와 영생의 길이, 진실로 참 형통이 무엇인지를 묻고 또 물으며 참고 또 참아 내기를 ...
영원의 시간에 빗대어 찰라 같은 순간의 이 땅에서의 고통을 인내하기를 ...
아무리 많은 말을 쏟아내어도 의인의 고통이 달가워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고 나 또한 형통하지 못함에 비참해 한다.
누군가가 부러워하면 진다고 했는데 ...
하나님이여!
악인의 형통의 결말을 깨닫고, 의인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과 용기와 믿음을 주옵소서.
내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형통하리이다.